12월3일 밤, 낯선 장소에 불시착한 한국을 생각하며 [새로 나온 책]

한국이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어크로스 펴냄
“나는 무엇보다도 한국을 이해해온 언어의 실패라고 생각한다.”
비상계엄 이후 재빠른 진단들이 쏟아진다. 대통령제가, 헌법이, 정당 시스템이, 언론이, 선거제도가, 교육이, 시민들의 우경화가, 혹은 좌경화가 문제라고 말한다. 문제를 알고, 원인을 알며, 그렇기에 해결책을 안다는 확신에 찬 목소리 앞에서 저자는 주저한다. 그리고 고백한다. 계엄을 계기로 수면 위에 떠오른 한국의 모습은 상당 부분 불가해하다고. 마치 다 아는 것처럼 굴다가는 다른 형태로 터져 나오는 문제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난해 12월3일 밤, 한국 사회는 낯선 장소에 불시착했다. 성공이라고 믿었던 시간 속에 실패가 쌓여갔다.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시대의 칼럼니스트’ 김영민 교수는 한국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안이한 언어와 게으른 상상력과 작별할 때가 왔다고 말한다. 여러 매체에 발표했던 글을 초고로 한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엮어냈다.

듀얼 브레인
이선 몰릭 지음, 신동숙 옮김, 상상스퀘어 펴냄
“AI는 공동 지능이다.”
챗지피티, 클로드 같은 생성형 AI 기반 챗봇을 사용해본 사람이라면 실감할 것이다. 불과 지난 1년만 돌이켜봐도 그 성능이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까’라는 질문이 난무하지만 이에 시원하게 답할 사람은 드물다. 공학뿐 아니라 산업과 경제에 대한 깊은 지식까지 갖춰야 하기 때문. 저자인 이선 몰릭이 그런 사람이다. 비즈니스 전공자일 뿐 아니라 AI 부문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다’고 꼽히는 인물이니까. 그에 따르면,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이 있다. ‘업무’ 내용은 크게 변하지만, ‘직업’ 자체는 AI와 협업으로 진화할 뿐 크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어떻게 협업하지? 무엇보다 ‘내가 할 일’과 ‘AI가 할 일’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AI와 업무를 함께 진행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마치 한 몸처럼. 다가오는 미래가 두려운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도시의 동물들
최태규 지음, 이지양 사진, 사계절 펴냄
“다짜고짜 분풀이할 방법으로 ‘민원’을 택하는 상황은 아직 정치적 권리를 갖지 못한 동물들에게 무척 불리하다.”
동물을 존중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특히 반려동물은 ‘관계’ 속에 있다. 그 지극한 돌봄 안에는 권리·자유·해방의 자리가 없거나 너무 적다. 저자는 그것이 “새로운 폭력” 아니냐고 뾰족하게 되묻는다. 내가 키우는 개와 고양이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우리는 이미 안다. 육고기를 먹지 않고 가죽 제품을 소비하지 않겠다는 다짐만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는 것도. 개와 고양이 같은 친숙한 동물부터 쥐와 해충, 넙치와 우럭까지 도시와 동물이 맺고 있는 관계를 폭넓게 살펴본다. 외면해왔던 질문이 또렷해질수록 동물과 인간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맥락이 풍성해진다.

디트랜지션, 베이비
토리 피터스 지음, 이진 옮김, 비채 펴냄
“그날 밤 에이미는 리즈의 말에 넋을 잃었다.”
트랜스젠더 여성 리즈와 에이미는 연인이다. 그러나 에이미는 성환원(Detransition·디트랜지션)을 결정하며 다시 남성 에임스로 돌아간다. 문제는 성전환 과정에서 잃은 줄 알았던 에임스의 가임 능력이 온전했다는 것. 에임스의 연인 카트리나는 임신을 하게 된다. 리즈·에임스·카트리나가 궁리 끝에 내린 결론은 무엇이었을까. 〈뉴요커〉는 이 작품을 두고 ‘소수자를 미화하지 않고 결함 있는 존재로 그려낸다’고 썼다. 작품 바깥에서 벌어진 일 역시 흥미롭다. 2021년 〈디트랜지션, 베이비〉가 트랜스젠더 작가 최초로 ‘여성문학상’ 후보에 오르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여성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문학의 땅을 넓혔다.

숲을 읽는 사람
허태임 지음, 마음산책 펴냄
“식물을 들여다볼 때마다 나는 사랑의 끈 같은 것을 생각한다. 서로를 잇고 있는 끈을.”
저자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일하는 식물분류학자다. 그의 직업을 말하면 사람들은 대개 연구실을 떠올리지만, 그의 주 일터는 험준한 산속이다. 해발고도 1300m 이상에서만 피는 바람꽃을 보기 위해 산 정상을 오르고, 때로 산에서 길을 잃어 애를 먹는다. 저자는 이 산문집을 통해 식물분류학자로서 일하는 풍경과 그 과정에서 마주친 식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라질 위기에 놓인 식물들을 추적하고 기록해 자연을 복원해나가는 여정이 그려진다. 찔레꽃, 팽나무, 붉나무, 너도밤나무 이야기를 하다가 어린 시절 식물을 향한 사랑을 일깨워준 할머니, 올괴불나무꽃 향기에 기뻐하는 엄마 등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 식물과 사람의 화음이 울림을 준다.

AI와 기후의 미래
김병권 지음, 착한책가게 펴냄
“늦었지만 한국은 2020년 그린뉴딜을 훨씬 뛰어넘는 녹색산업 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인류는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전환과 기후위기라는 생태 전환에 맞닥뜨려 있다. 저자는 생태경제학의 관점에서 두 전환을 통합해 살핀다. 먼저 인공지능이 기후에 미칠 영향을 긍정적, 중립적, 부정적 견해로 분류해 기존 논의를 종합했다. 비즈니스 쪽에서 주도하는 흐름은 인공지능의 긍정적 역할에 대해 논의한다. 디지털과 녹색을 정책적으로 적절히 조합해 선순환을 이뤄야 한다는 중립적 주장도 있다.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분석과 연구는 아직 비주류다. 다양한 글로벌 성과측정지수를 활용해 디지털-생태 매트릭스를 분포시켜보면, 한국은 ‘디지털 과잉, 생태 지체’ 국가다. 저자는 두 전환의 균형을 회복할 정책수단을 제시한다. 디지털 독점규제, 녹색산업 정책 등이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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