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흑비둘기' 찾아낸 고교생 "새와 공존하는 세상 만들고파"
흑비둘기·청다리도요사촌 등 희귀새 발견
등교 전 버스 타고 탐조… 조류 500여 종 구분
"새가 부딪치지 않는 건물 짓는 건축가 될래요"
“이름처럼 깃털은 검은색인데, 흔한 집비둘기보다 몸집이 크고 머리가 작아서 눈에 띄었어요. 상대적으로 늘씬하고 길어 보이더라구요.”
비둘기라고 다 같은 비둘기가 아니었다. 지난 2월 녹색비둘기가 나타나 전국 탐조(探鳥·조류 관찰)인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든 울산에서 이번엔 천연기념물 흑비둘기가 목격됐다. 1936년 울릉도에서 잡힌 암컷 1마리 표본이 학계에 소개돼 처음 알려진 흑비둘기는 2012년 환경부 멸종위기야생생물Ⅱ급으로 지정됐다. 2개씩 알을 낳는 다른 비둘기와 달리 1개만 낳는다. 국내에는 100여 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에선 야생동물구조센터에 2012년과 2014년에 각각 1마리를 구조한 이력은 남았으나 사진으로 기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귀한 손님의 찰나를 포착한 이는 바로 울산제일고 1학년 이승현(16)군. 등교 전 새벽에 버스를 타고 탐조에 나설 정도로 새에 진심인 그는 우리나라에 도래하는 조류 500여 종 대부분을 구분할 줄 아는 ‘새 박사’다. 흑비둘기를 발견한 시각도 12일 오전 6시, 그것도 집에서 30㎞ 거리에 있는 울산 동구 해안가였다. 이군은 23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새가 가장 활발한 시간대가 아침이라 이르면 새벽 4시에 탐조를 가기도 한다”며 “그 주변에서 흑비둘기가 발견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번은 보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한창 게임이나 친구가 좋을 나이에 새의 매력에 빠진 이유는 뭘까. 3년 전쯤 태화강변을 걷던 중 우연히 참매를 보고 호기심이 생겼고, 이후 유튜브와 도감 등에서 새를 찾아보다 2023년 3월 본격적인 탐조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그는 “새는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데다 행동이 재밌고, 울음소리도 예쁘다”며 “최근에는 뜸부기 종을 눈여겨보고 있는데, 겁이 많아서 조심조심 움직이는 모습이 흥미롭다”고 자랑했다.
지난해부터는 새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모임 ‘짹짹휴게소’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탐조장비라곤 망원렌즈 없는 일명 똑딱이 카메라 하나가 전부지만, 전 세계에 1,300여 마리만 남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 ‘청다리도요사촌’을 발견하는 등 탐조 실력은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는다. 홍승민(29) 짹짹휴게소 대표는 “새를 보는 센스도 어찌 보면 재능의 영역인데, 그 재능을 타고난 것 같다”며 “서식지 보호나 환경에 대한 관심도 많아 배울 점이 많은 친구”라고 칭찬했다.
이군은 새와 사람이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게 목표다. 그래서 대학도 생물학과보단 건축학과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는 “매년 건물에 충돌해서 죽는 새들이 700만 마리가 넘는다”며 “새들에게 덜 위험하고, 사람들에겐 더 편리한 도시를 디자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울산= 박은경 기자 chang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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