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12·3 계엄군의 ‘케이블타이’가 남긴 고문의 그림자

김한민영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이너 2025. 4. 2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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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활동가에게 케이블타이는 익숙한 도구다. 야외 간이집회 무대의 구조물을 단단히 고정할 때 이만큼 톡톡히 제 역할을 하는 것도 없다. 이걸로 사람을 ‘묶을 수’ 있다는 걸 상상이나 했을까. 내 일상 속 도구였던 케이블타이는 12·3 불법계엄 사태를 거치며 인권침해를 드러내는 상징이 됐다.

12·3 비상계엄의 밤,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이 한 취재기자를 케이블타이로 포박하려는 장면이 국회 폐쇄회로(CC)TV 영상을 통해 공개됐다. 케이블타이는 “문을 잠그기 위해 준비한 것”이라던 김현태 전 707특임단장의 헌법재판소 증언이 거짓임을 드러낸 것이다. 기자에 대한 무력 체포 시도는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행위다. 또 대한민국이 비준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 보장하는 고문 금지, 자의적 구금 금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다.

피해자인 기자는 계엄군에 강제로 연행당하는 과정에서 폭행이 있었고, 케이블타이로 여러 차례 결박 시도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극심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도 전했다. 국제인권법은 어떤 비상사태 속에서도 고문과 부당대우를 절대 금지하는 ‘비가역적 권리’를 명시한다. 유엔 인권위원회 또한 계엄령 등 국가 비상사태하에서도 기본권의 제한은 국제기준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주목할 점은 케이블타이의 국내 및 국제 법적 지위다. 12·3 계엄군이 사용한 케이블타이는 일반적인 것과 다르다. 단단하고 두꺼운 플라스틱 스트랩이 두 개의 고리로 구성돼 있어 ‘플라스틱 구속 도구’ 혹은 ‘플라스틱 수갑’으로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실제로 플라스틱 수갑은 12·3 이전에도 민간인 고문 및 부당대우에 사용된 사례들이 있다. 지난해 10월 김건희 특검법 거부에 항의하며 대통령 집무실을 찾았던 대학생들이 케이블타이에 결박당한 채 연행됐고, 2021년에는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된 모로코 국적의 난민 신청자가 이른바 ‘새우꺾기’ 가혹행위를 당하는 과정에서 케이블타이로 결박당한 사례가 보고됐다. 이것이 현행 법률상 위해성 장비로 규정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알려지지 않은 사례가 더 많을 가능성이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플라스틱 구속 도구가 현재 아무런 규제 없이 민간 시장에서도 자유롭게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확인한 바에 따르면 생활용품, 의류, 성인용품을 취급하는 국내 다수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누구나 쉽게 플라스틱 수갑을 살 수 있다. 이는 플라스틱 수갑을 동원한 계엄군의 인권침해 행위가 모두의 일상에서 쉽게 반복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2023년 유엔 고문방지특별보고관은 고문이나 학대에 쉽게 악용될 수 있는 도구들에 대한 사용과 거래 행위 전반에 국제적 규제가 필요함을 강조하며, 플라스틱 구속 도구를 명시적으로 문제 장비 목록에 포함했다. 12·3 계엄군의 ‘케이블타이’ 사용은 이러한 도구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고문 및 기타 부당대우에 쓰일 수 있으며, 심각한 인권침해에 악용될 위험이 있음에도 이 장비들에 대한 법적 규제가 부재하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국제앰네스티는 전 세계 인권단체들과 함께 유엔의 ‘고문 없는 무역 조약’ 채택을 촉구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학대적인 장비의 제조와 거래를 금지하고, 통용되는 법 집행 장비에 대해서도 인권 기반의 국제적 규제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다. 한국 정부 역시 이 흐름에 동참해 고문 도구에 대한 국제적 통제장치 도입에 기여해야 한다. 더 시급하게 필요한 조치는 국내법 개정을 통해 플라스틱 구속 도구처럼 악용 위험이 큰 장비에 대한 규제 조항을 신설하는 것이다.

국제앰네스티는 고문 도구 규제를 요구하는 온라인 탄원 캠페인(amnesty.or.kr/onlineaction/132268/)을 진행하고 있다.

김한민영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이너

김한민영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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