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제주 역주행 통해 4·3역사 만나려 합니다”
제주인 밀항 되짚는 3부작의 첫 전시
10년 전 제주 머물며 공동 작품활동
“학살 현장서 4·3 접하고 온몸에 충격”

“10년 전 제주도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제주4·3을 접하게 돼 충격을 받았습니다. 4·3을 알수록 일본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느꼈고, 일본인이자 예술가로서 중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 끝에 이번 전시회를 열게 됐습니다.”
지난 19일 일본 오사카 이쿠노구의 코라이브즈파크(이쿠노 파크)에서 만난 후지와라 유키는 이렇게 말했다. 후지와라는 이곳에서 ‘4·3 예술 프로젝트-역주행을 통해 역사와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지난 3일부터 다음달 25일까지 4·3 전시회를 열고 있다. 그는 2016년 제주도에서 3개월 동안 제주의 예술가들과 공동으로 작품활동을 하면서 처음 4·3을 알게 됐다. 후지와라는 “제주도에 머무는 동안 학살 현장에서 4·3 이야기를 듣다 보니 온몸으로 체감했고, 충격으로 다가왔다”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그때 이후 10년의 고민 끝에 나온 프로젝트다. 독일과 스페인, 한국에서 유학과 작품 활동을 해온 후지와라는 국가와 전쟁, 민족을 주제로 입체와 설치미술을 발표하고 있다. 그는 제주인들이 많이 사는 오사카 이쿠노구를 찾아 유족과 연구자들을 만나면서 4·3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특히 당시 목숨을 걸고 일본으로 넘어온 제주인들에 주목하게 됐다.
“4·3을 전후해 살기 위해 작은 배의 밑창에 숨어 일본으로 건너온 제주도 출신들이 이쿠노구에 많다는 것을 알게 돼 놀랐어요. 그 전에는 그런 사실을 몰랐거든요.” 이쿠노구에서 1부 전시를 여는 이유이다.

그의 4·3 예술 프로젝트는 3년에 걸쳐 3부작 전시회로 전개된다. 이쿠노구의 1부 전시회에 이어 내년에는 밀항하다 붙잡힌 제주인들이 수용됐던 나가사키 오무라수용소 부근에서 2부를, 오는 2027년에는 제주도에서 3부 전시회를 연다. 4·3 당시 제주인들의 일본 밀항 경로를 거꾸로 되짚어가며 여는 전시회다. 전체 프로젝트의 제목 ‘역주행을 통해 역사와 만나다’는 그렇게 나왔다.
1부 전시회 ‘뒷면’(裏)이 열리는 이쿠노 파크는 한국에 뿌리를 둔 어린이들이 많이 다녔던 미유키모리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곳이다. 후지와라는 “그런 기억이 남는 장소에 ‘뒷면’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2개의 작품 공간을 구축했다”며 “하나는 숫자를 이용한 몰입형 설치미술이고, 또 하나는 관객이 만드는 참여형 조각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역사와 예술이 만나 그 틈새에서 생겨나는 창의성을 창출하는 시도인 셈이다.
실제 전시장으로 들어가자 캄캄한 곳의 한 벽면에 앞·뒷면을 섞어놓은 ‘194843’이라는 숫자와 함께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제주4·3과 일본의 관계성을 나타내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였다. 후지와라는 “4·3을 계기로 일본으로 도망쳐온 제주인들이 세대를 거듭해 사는 현 상황을 바탕으로 작품을 구상했다”라며 “제주에서 건너온 제주인들이 일본에 사는 뒷면이면서 동시에 앞면이라는 것이 작품의 컨셉이다”라고 설명했다.
또다시 옆 전시장으로 들어가자 이번에는 밝은 곳에 빨간색의 벽면에 ‘194843’을 섞어놓은 숫자가 보였다. 관람객들의 이름과 날짜가 하나씩 새겨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후지와라는 “관람객이 작품을 감상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참가하는 데 의미가 있다. 같이 작품을 만드는 공동작업이다”라고 말했다.

주변에는 2부와 3부의 프로젝트 방향을 보여주는 설치작품도 선보이고 있다. 거꾸로 세운 병 속에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2부 ‘역’(逆)은 4·3에 대한 생각을 일본에서 제주도로 병에 메시지를 담아 해류에 실어 보내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한국과 마주 보는 연안의 돗토리현 출신인 후지와라는 “돗토리현 바닷가에 나가보면 파도에 밀려온 표류물들이 많고, 그 가운데는 페트병이나 유리병들도 있는데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로 쓰인 것도 많다. 돗토리현 반대편 태평양 연안에 있는 오사카 등의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풍경이기도 하다”며 “해류에 병을 실어 보내려는 시도는 이렇게 나왔다”고 했다.
3부 ‘반’(反)은 제주의 예술가들과 공동작업으로 추진된다. 4·3 발발의 계기가 된 ‘반’의 역사를 상상하고, 4·3을 상징하는 동백나무를 모티브로 해 당시 미군정의 통치 상황을 암시하는 캔디(사탕)를 소재로 ‘반’을 표현한다. 전시장에는 물엿에 색깔을 입혀 동백꽃 모형에 떨어뜨린 모습이 설치돼 있다.
“4·3 당시 제주에서 밀항을 통해 곧바로 오사카로 오거나 규슈를 거쳐서 오사카로 온 사람들도 있지요. 나는 그런 제주인들을 생각하며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주행을 하려고 합니다. 오사카에서 규슈를 거쳐 제주도로 가는 것으로 역사와의 만남을 시도하려고 합니다. 올해는 이쿠노구를 무대로 한 전시를 통해 이민과 디아스포라를 고찰할 수 있는 자리가 됐으면 합니다.”
오사카/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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