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조국에 바친 심장, 가족에 남은 슬픔

2025. 4. 2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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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양근환, 단검으로 민원식 처단하다 딸아! 너의 울음 누구에게 닿을까

빛이 밝을수록 어둠은 짙은 법이다. '독립운동가'라는 빛나는 이름 뒤에는 '가족'이라는 슬픔이 숨어 있다. 1921년 2월 일본 도쿄에서 민원식(閔元植)을 암살한 독립운동가 양근환(梁槿煥)씨의 가정을 방문한 기자의 방문기가 1925년 4월 조선일보에 실렸다. 그 이야기를 한번 찾아가 보자.

"동경호텔 한구석에서 문제의 인물 민원식을 암살한 사건으로 세상의 이목을 놀래이던 양근환(32), 자기의 생명을 초개(草芥)같이 여기고 가슴에 타는 불을 기어이 그대로 행한 후 마침내 그의 일생을 동경 형무소에 내던진 지도 벌써 5년 전 옛일이다. 청춘의 산 같은 희망을 버리고 꽃 같은 아내와 어린 자녀를 두고 들어간 그의 옥중 생활이 얼마나 쓰라리랴?" (1925년 4월 15일자 조선일보)

양근환이 암살한 민원식은 누구인가? 민원식은 국민협회(國民協會) 회장을 맡아 일본 정부에 조선인 참정권을 청원하던 인물이었다. 그는 1921년 2월 참정권 청원 활동 차 도쿄에 왔고, 16일 도쿄의 철도호텔 14호실에서 양근환의 단도에 찔려 사망했다.

1921년 2월 17일자 매일신보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조선인 참정권을 청원하기 위하여 동경에 가 있던 국민협회장 민원식은 2월 16일 오전 9시 30분에 동경 정거장 철도호텔 제14호실에서 단도에 맞아 10분 사이에 사망하였는데, 범인은 16일 아침에 민원식씨를 방문한 자인 듯한데, 아직 체포하지는 못하였더라."

1921년 3월 2일자 매일신보는 체포 소식을 전한다. "2월 24일 오후 1시에 나가사키항(長崎港)에서 기선을 타고 상해로 향하려고 하는 양근환(28)의 거동이 수상하였으므로, 나가사키 수상경찰서에서 체포하여 조사한 결과, 원적은 황해도 지방인데 진짜 범인인 것이 판명되었더라."

양근환의 가정을 방문한 기자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자. "기자는 1925년 4월 10일 늦은 저녁 때 그의 모친과 그의 딸을 적선동으로 찾아갔다. 신산(辛酸)스러운 살림살이, 몇 안 되는 세간은 여기저기 흐트러졌고 한 간(間)도 안 되는 좁은 방안은 슬픔의 기분이 말없이 떠도는 듯하다. 동무들과 밖에서 놀고 있던 정자는 할머니의 부름을 듣고 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처음 대하는 기자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아주머니' 소리를 지른다.

5년 전에 정자가 그 아우 애자(愛子)와 더불어 박순천(朴順天) 여사의 품에 안겨 고국에 돌아오던 그때에 비하여 키도 물론 크고 말도 잘하려니와, 속일려도 속일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 애자는 조선에 나온 지 두 달이 못 되어 어린 가슴에 철천(徹天)의 한을 품고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황천의 객이 되고 말았다. 양근환의 어머니는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그 아이 형제만이라도 무사히 자랐으면 좋을걸. 모두가 조물(造物)의 시기(猜忌)이니 어찌하겠소. 정자가 금년 나이 8살인 즉 학교에 입학도 시켜야 될 터인데 그조차 뜻대로 되지 못합니다'하며 한숨을 내쉬더니 아들에게서 온 편지를 내어다 보인다.

순 한문으로 친구의 소식과 세상의 형편을 궁금히 여기는 하소연이 빈틈없이 채워놓았더라. 근환의 아내인 일본인 석정승자(石井勝子·27). 사랑하는 딸을 조선에 보내고 옥중에 있는 남편의 건강을 빌면서 동경 어떤 병원 간호부로 직업을 구하여 돈벌이를 하며 장차 얼마간이라도 금전의 여유가 생기는 대로 조선으로 나오겠다는 뜻을 표한 편지가 왔더라 한다."

슬픈 이야기는 이어진다. "같은 동경 안에 있는 남편의 얼굴을 자유로 보지 못하는 그의 심정은 얼마나 애달프랴? 그가 남편을 사모하고 딸을 그리는 마음도 물론 간절하려니와 정자가 어머니, 아버지를 그리며 때때로 찾는 모양은 목석(木石)이 아닌 이상 차마 그대로 볼 수 없다 한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으며 '오가아상(어머니)'하고 '으악' 소리를 내어 우는 때가 많다 한다. 정자의 할머니는 '아이가 너무 이상해서 누가 저의 어미, 아비 이야기만 해도 울고 사진만 보아도 웁니다. 철모를 때에 떼어 왔건만 그대로 천륜(天倫)이란 할 수 없는가 봅디다'하고 눈물겨운 목소리로 말함을 들었다. 천우신조(天佑神助)하여 옥중의 가련한 생활을 면하고 어머니 슬하에 돌아와 사랑하는 처자로 더불어 복 있는 생활을 하기나 빌 뿐이다."

'독립운동가의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고통과 눈물은 오랫동안 잊혀졌다. 그러나 그들의 슬픔 또한 기억되어야 할 역사다. 어둠이 있기에 빛이 더욱 밝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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