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명화산책] 미술 개념 바꾼 뒤샹의 레디메이드 `샘`





마르셀 뒤샹, '개념미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다 "예술은 예술가가 만드는 게 아닌 '선택'하는 것" '현대미술의 씨앗', '다다이즘의 조상'으로 평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남성용 소변기에 서명을 하고 이를 미술작품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 받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예술가가 있다. 미술의 개념을 완전히 바꾼 앙리 로베르 마르셀 뒤샹(Henri Robert Marcel Duchamp, 1887~1968년)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실재(實在)를 향해 열려있는 창문'이라는 전통적인 회화에 대한 관념을 산산히 무너뜨렸다. 마네가 금가게 하고 세잔이 깨트린 실재에 대한 환영은 뒤샹에 이르러 완전히 부서졌다. 뒤샹은 '머리로 생각하는 미술'이라는 개념미술을 창조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샘(Fountain)'이다. 뒤샹은 1917년 가게에서 산 남성 소변기에 자신의 이름 대신 'R. Mutt(리처드 버트) 1917'이라고 서명한 후 거꾸로 뒤집어 놓고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뉴욕 독립미술가협회에 출품했다. 이 작품은 "미술작품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거센 논란을 낳으며 뉴욕 미술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당시만 해도 이게 무슨 작품이냐는 소리가 많았지만 지금은 '20세기 미술의 아이콘'으로 꼽힌다. '샘'은 전시가 끝나고 얼마 후에 실종된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작품들은 모두 복제품이다.
뒤샹은 '레디메이드(Ready - made·기성품)' 작품을 창조했다. 변기 외에 병, 건조대, 자전거 바퀴, 의자, 삽, 옷걸이, 모자걸이, 엽서, 유리 등 일상 생활용품을 사서 조합한 후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그에게 예술작품은 예술가가 만들지 않고 '선택'하는 것이다. 작품 자체보다 예술가의 생각이나 선택 행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망막의 예술'이 아닌 '지성의 예술'로 이어졌다. '기성품의 미술 작품'이라는 레디메이드는 미술에 대한 개념과 관념을 완전히 뒤엎었다. 일상의 흔한 물건도 예술가가 의도를 가지고 선택해 갤러리나 미술관 같은 장소에 가져다 놓으면 의자는 더 이상 의자가 아니고, 변기도 더 이상 평범한 변기가 아니다.
뒤샹의 개념미술 작품은 이보다 4년전인 19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파리에서 활동하던 그는 조르주 브라크와 파블로 피카소 등 입체파 영향을 받은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를 독립 전시회인 '살롱 데 쟁데팡당'에 출품했지만 주최측은 입체주의에 위배된다며 전시를 거부한다. 멈춰있는 정적인 대상을 다시점(多視點)으로 분석해 하나의 화면에서 구성하는 입체주의의 원칙을 어겼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계단을 내려오는 인물을 마치 카메라로 연속 촬영한 듯한 그림이다. 입체주의에 '움직임'이라는 요소를 추가한 게 화단을 반발을 샀다. 당시 야수주의에서 입체주의로 넘어오면서 이미 '회화는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이라는 전통적 관념이 일부 깨진 상태였다. 뒤샹은 여기서 더나가 새로운 개념의 회화를 만들겠다며 '개념 만들기 놀이'로 미술을 치환한 것이다. 감정보다는 신선한 지적충격을 염두에 둔 것이다.
뒤샹은 이후 '안티 미술'로의 길로 접어들었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미술 이론 공부에 몰두하고, 샤르트르 학교에 입학해 서지학 강의를 듣고 자신만의 '미술 개념'을 창조했다.1912년 11월 항공기 전시회를 둘러보던 그는 현대 추상조각의 선구자인 친구 브랑쿠시에 "이제 회화는 끝났다"며 손재주가 아닌 '머리로 하는 예술', '생각하는 미술' 즉 개념미술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그리고 '안티 미술'의 형태로 '조롱'을 선택했다. 그는 "예술은 모방(미메시스)"이라는 전통이론에 정면으로 도전, 예술은 모방이 아니라 창조라고 주장했다. 풍자만화가로 활동하던 시절 새겨진 '풍자와 유머' 정신을 미술에 반영했다. 이렇게 해서 1913년 부엌에서 쓰는 나무 스툴 위에 자전거 바퀴를 거꾸로 고정시킨 최초의 레디메이드 작품인 '자전거 바퀴'가 탄생하게 된다. 뒤샹은 "작품에 꼭 의미가 있으란 법이 있느냐"면서 "심심풀이로 만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한 평론가는 당시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미래주의를 조롱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뒤샹은 1887년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인 블랭빌-크레봉에서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초등학생때부터 수학을 잘하는 수재였던 그를 사업가로 성공한 할아버지 에밀 니콜이 화가의 길로 인도했다. 1904년 17세때 파리로 상경해 미술 공부를 시작한다. 형 가스통의 영향으로 풍자만화와 접하고, 3년동안 풍자만화 작가로 활동했다. 만화작가로 일하며 풍자 정신을 깊이 체득하고, 현실을 그대로 보기보다는 자신만의 시각으로 보며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키웠다. 풍자만화의 감초인 유머 감각도 이때 길러졌다. 앙리 마티스의 그림을 보며 화가로서의 꿈을 키운 그는 최전선에서 새로운 미술을 개척하겠다고 다짐하며 마침내 '개념미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해냈다.
1919년 내놓은 '수염난 모나리자'로 불리는 'L.H.O.O.Q.'도 유명한 작품이다. 거리를 걷다 프린트된 '모나리자' 그림엽서 한 장을 산 뒤샹은 모나리자 얼굴에 검정색으로 콧수염과 턱수염을 그려 넣고, 아래에 대문자로 'L.H.O.O.Q'라고 적었다. 'L.H.O.O.Q'는 프랑스어로 읽으면 "엘르(L) 아쉬(H) 오(O) 오(O) 뀌(Q)"다. 연음으로 "엘라쇼오뀌"라 읽으면 "그녀는 뜨거운 엉덩이를 가졌다"(Elle a chaud au cul)는 문장과 같은 발음이다. 동음이의를 활용한 말장난(조롱)이다. 다빈치라는 대 천재의 권위에 '똥침'을 날린 셈이다. '샘'이 산업 사회의 기성품을 전혀 다른 예술적 맥락안으로 끌어들였다면 'L.H.O.O.Q.'는 전통적 미술품을 완전히 다른 맥락으로 해석하게 만들었다. 살바도르 달리의 '모나리자로서의 자화상'(1954년)은 필립 할스만과 공동 작업한 것으로, 'L.H.O.O.Q.'의 구도를 참고한 작품이다.
'큰 유리', 이동식 작품상자, 체스판, 로즈 셀라비 연작 등의 작품을 남긴 그는 1923년, 36세의 나이에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순전히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체스 게임에 몰두하기 위해서다. 뒤샹은 15세때부터 두 형들과 체스 게임을 즐겼다. 미술보다 체스를 더 좋아했을 정도다. 1933년엔 세계 체스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할 정도로 체스 실력이 뛰어났다. 체스는 깊은 사고력과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기르게 했으며, 이는 그의 작품에 투영됐다. 1934년 다시 미술계에 복귀한 그는 20여년간 비밀리에 '에탕 도네(1 폭포, 2. 도시가스'에 매달린다.
예술가가 무언가를 선택하는 행위가 예술의 본질이라며, 반(反)예술·반(反)미학을 표방했던 그는 '현대미술의 씨앗', '다다이즘의 조상'으로 평가된다. 데이미언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등이 그의 후예들이다. 1920년에는 초현실주의적 사진 작가인 만 레이와 함께 작업했으며, 광학적 오브제와 영화 실험 작업도 했다. 이는 1960년대 팝아트와 시각적 착시효과를 이용한 옵아트(Optical Art), 움직임을 중시하는 키네틱 아트(Kinetic Art)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뒤샹은 "예술가만이 유일하게 창조행위를 완성시키는 것은 아니다. 작품을 외부 세계와 연결시켜주는 것은 관객이기 때문이다. 관객은 작품이 지닌 심오한 특성을 해독하고 해석함으로써 창조적 프로세스에 고유한 공헌을 한다"고 했다. 관객은 관찰자가 아닌 창조자라는 미학적 혁명의 선언이다. 프랑스의 시인 앙드레 브르통은 "20세기 가장 지적인 예술가"라고 했다.미술 평론가인 조원재씨는 "뒤샹은 변기를 떡밥으로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물었다"며 "그의 삶 자체가 행위예술이었다"고 전했다.
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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