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옵티칼 노동자에게 갑시다, 26일 희망버스를 탑시다 [왜냐면]


김진숙 |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이 글을 쓰는 카페 옆자리에 앉은, 30대 후반 혹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두 사람의 수다에 저절로 귀가 쏠린다. “저번에 소개팅했다 했자나. 근데 머스마가 입을 안 띠는 거라. 와~ 진짜, 내가 누구처럼 소개팅 나가서 끝말잇기 할 뻔했다 아이가.” 하하호호. 군항제 갔는데 벚꽃이 진짜 환상이더란 이야기.
박정혜 소현숙 또래의 사람이 해야 하는 사람 사는 이야기. 사람이 해야 하는 이야기. 바람 소리 땜에 무서워서 한잠도 못 잤어요, 바람 땜에 천막이 너덜거리고 화장실로 쓰던 작은 거는 아예 날아갔어요, 하는 신산스런 얘기 말고. 엄마가 많이 아프신데 이러고 있으니까 집에 전화도 잘 못 하겠어요, 이런 막막한 얘기 말고. 캄보디아 오지마을보다 우물이 필요한 건 옵티칼이다. 캄보디아보다 국민소득이 18배가 높다는 선진국 대한민국의 오지마을, 경북 구미시 4공단로7길 53-29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물도 안 나오고 전기도 끊어진 공장. 가장 서럽게 버려진 채 21세기에 18세기를 사는 사람들. 불탄 공장은 폐허로 버려져 바람이 불면 미처 떨어지지 못한 채 매달려 있던 잔해들이 괴성을 지르며 흔들려 부딪치고, 버티다 힘이 다한 것들은 마지막 비명을 남긴 채 떨어져 박살이 난다.
노랫소리도 사람의 말소리도 아닌 파괴와 소멸의 소리들만 들으며 467일. 나는 이제 저들의 신체건강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을 더 우려하게 된다. 머리를 감을 땐 밧줄로 물을 끌어올려야 하고 비눗물을 다시 내려야 하니, 머리 감는 것도 날을 잡아야 하고 목욕은 꿈도 못 꾼다. 그 공간에 다시 여름이 계엄군처럼 다가온다.
크레인 위에서 내가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온몸이 환장하게 가려운 것이었다. 고공의 봄은 꽃도 봄바람도 아닌 가려움이 가장 먼저 실실 웃으며 오더라. 용접봉을 옷 사이로 넣어 온몸을 긁어 피딱지가 앉고 피딱지를 용접봉으로 다시 긁어 속옷이 피로 젖던, 꽃 한송이 피지 않던, 어디서도 뿌리를 내리는 민들레 씨앗 한톨 날아들지 않던 봄.
그 봄을 두번째 보내는 사람들. 그리고 얼린 생수통을 종일 껴안고 허덕거리며 보냈다는 공포의 여름을 다시 맞는 사람들. 처음은 멋모르고 당할 수 있지만 두번째 겪는 고통은 공포다. 손바닥만 한 그늘도 없는 고공. 연간 기온 차 66도의 나라에서 고공의 체감 기온 차는 150도쯤 되지 않을까.
무플보단 악플이 낫다 했던가. 한진중공업이 악플이었다면 옵티칼은 무플이다. 한진은 끊임없이 침략하고 도발했다. 공권력 투입하고 특공대 투입하고 용역 깡패 투입하고, 용역 깡패들이 점거한 공장에서 용역들은 밤낮으로 크레인으로 뛰어 올라오고, 희망버스 승객들에게 페인트 섞인 물대포 쏘고 최루액 쏘고 연행하고, 몇년씩 재판받고, 송경동 정진우는 구속되고, 실제로 경찰들 동원해 악플 달고. 진짜 별짓을 다 했다. 분노가 투쟁의 동력이 됨을 모르던 자들.
그런데 니토덴코는 단전·단수해놓고 조합원들 통장과 주택에 압류 걸어놓고 무대응이다. 생산하는 공장이 아니니 경제적 손실도 없고 땅도 공짜였으니 공장 임대료가 나가는 것도 아니고 세금이 나가는 것도 아니니 내버려두면 지쳐 내려오겠지. 흉포한 날씨가 우리에겐 공포지만 저들에겐 희망이다.
노동자들에게 일본말로 사과문을 쓰라 했다는 니토덴코에게 한국은 여전히 식민지다. 회사의 배려를 감사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노사관계를 악화시킬 경우 공장을 철수한다는 일본기업 니토덴코에게 한국 노동자들은 아직 조센징이다. 그러므로 소현숙 박정혜가 467일째 초지일관 요구하는 고용승계는 더 이상 멸시당하지 않겠다는 인간선언이다. 니들이 쓰레기처럼 다 버리고 간 사무집기들, 작업복들, 볼펜들처럼 우리는 그렇게 버려질 수 없다는 존엄함의 절규.
오늘로 467일. 고공농성의 초인들은 한국에만 존재하며 국내에서 끊임없이 기록을 경신 중이다. “어떻게 두분이 고공농성을 하겠다고 결단했어요?” “결단은 아니고, 남은 조합원 중에 결혼 안 한 사람이 우리 둘밖에 없더라고예. 공장을 지키긴 해야겠고 서로 치다 보다가 우리가 올라가께예 한 거지예.” 467일을 버티기엔 너무 빈곤한 이유지만 그만큼 믿음이 컸던 회사가 돌려준 배신감이 컸던 거다.
5월21일이면 500일이다. 이 사회가 과연 정상인가를 매일 의심하게 되는 숫자. 이 나라에 과연 정치가 있고 자존심이 있는가를 매일 되묻게 되는 날짜. 바싹 말라가는 고공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 요구를 걸고 4월26일 희망버스가 박정혜 소현숙에게로 간다. 한사람이라도 더 탑승해주시라.
7명을 해고하고 156명을 신규 채용한 니토덴코. 니토덴코의 탐욕과 노동자의 간절한 희망이 맞서는 공장. 한국옵티칼은 여전히 불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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