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훈표 제주형 건강주치의 ‘예산 0원’...예견된 좌초, 미련 못버린 道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직접 주도해 온 '제주형 건강주치의 제도'가 예산 심의 과정에서 결국 좌초됐다. 사업의 첫 걸음도 떼지 못했지만, 추후 차기 정부의 정책 의지와 제2회 추가경정예산안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는 23일 오후 제437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2025년도 제1회 제주도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이번 추경예산안은 7조7977억원 규모로, 7조5783억원인 올해 본예산에서 2194억원 가량 증액된 수준이다.
각 상임위원회 계수 조정에서 72억원,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계수조정에서 버스 준공영제 운영비 15억원, 15분 도시 시범지구 기능 활성화 사업 10억원 등 총 145억6000만원이 감액됐다.
감액분은 모두 내부유보금으로 편성됐다. 증액 예산이 없기 때문에 본회의를 통과한 예산안은 제주도의 동의 여부를 묻지 않고 곧바로 확정됐다.
특히 가장 주목된 '제주형 건강주치의 제도' 시범사업 예산은 한 푼도 건지지 못하고 전액 삭감됐다.
이 사업은 도내 의료 소외지역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노인과 아동을 대상으로 포괄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으로, 사업지역 내 주치의 의료기관을 방문해 1명의 주치의를 선택하면 건강위험 평가, 만성질환 관리, 건강검진, 예방접종, 건강교육, 전화상담, 방문진료 등의 서비스를 받는 개념을 담고 있다.
오 지사가 '의료개혁'의 일환으로 역점 추진하며 이번 추경안에 18억원의 예산은 편성했지만, 보건복지위원회 계수조정에서 8억원 가량으로 반토막 났고, 예결위에서 다시 '0원'으로 칼질 당했다.
관련 예산 삭감은 예견된 결과였다는 의견도 뒤따른다. 필수적으로 거쳤어야 할 정부 협의조차 거치지 않은 채 급하게 추진됐다는 지적이다.
사회보장기본법 제26조 제2항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장이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하는 경우 영향 및 운영방안 등에 대해 보건복지부 장관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
이 협의에서 복지부는 해당 사업의 계획이 구체적이지 못해 기존 국가의료서비스 및 건강보험 사업 등과 차별성이 낮고 유사·중복성이 크다며 '재협의'를 통보했다. 등록관리 환자에 대한 주치의 건강관리 방안 등 구체적 시행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공교롭게도 복지부의 '재협의' 통보가 내려온 것은 예산 심의가 한창이었던 지난 16일이다. 제주도는 추후 정부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 해명했지만, 정작 도의회를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제주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사업의 타당성을 충분히 설명했고, 정부 협의에도 자신이 있었음에도 사업이 멈춰선 것에 대해 적잖은 아쉬움을 피력했다.
이와 관련 강성의 제주도의회 예결위원장은 "건강주치의 사업의 타당성에는 동의하지만, 사회보장협의 뿐만 아니라 지원 기구를 만들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며 "우선 협의가 선행되지 않고 관련 절차가 진행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예산 삭감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2019년 제정된 도민건강기본조례 등에도 건강주치의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됐는데, 어떤 형태로 어떤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화가 필요하다"며 근거 조례가 개정된 이후에 추진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을 수용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예산 삭감이 사업 추진을 원천 차단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삭감 예산을 내부유보금으로 돌려놓은 만큼 필요에 따라 제2회 추경안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강 위원장은 "이미 정부 추경안이 제출된 상황이고, 6월에 대선이 끝나면 원포인트 추경 가능성도 남아있다"며 "민생이나 경제가 너무 어렵다보니 제주의 경우도 7~8월쯤 다시 추경을 추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결국 복지부와의 협의, 정부 추경안의 규모 등 차기 정부의 정책의지가 건강주치의 사업 회생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제주도는 차기 대선 공약에도 건강주치의 공약을 반영해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우선 시범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했는데 의회와 이견이 있었던 점은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아직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부 협의에 잘 임해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