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코트의 키다리 아저씨’ 김인곤 재미대한테니스협회 고문

김종석 2025. 4. 2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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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테니스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힘을 보태는 김인곤 재미대한테니스협회 고문(사진/김종석)

선수들 위해서라면 아끼지 않고 큰 손 역할
이번 방한엔 육사에도 1억원 기부

날카로운 백핸드 발리가 상대 코트 빈 자리를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결정적인 포인트를 따낸 뒤 주먹을 불끈 쥐는 그의 표정만 보면 80을 바라보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았다. 주인공은 김인곤 재미 대한테니스협회 고문(78)이다. 

이날 김 고문은 서울 송파구 JW클럽에서 대표팀 선수와 감독을 지낸 동갑내기 김문일 씨와 짝을 이뤄 두 명 모두 60대인 상대 팀과 복식경기를 해 게임 스코어 5-5로 비겼다. 경기를 마친 뒤 김 고문은 “요즘 업무가 많아 볼을 많이 못 쳤다”라면서도 “테니스가 최고의 보약이다. 라켓과 인연을 맺은 게 내 인생의 큰 축복이 아닌가 싶다”라며 웃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는 김 고문은 40년 넘게 막역한 선후배 사이로 지내는 주원홍 대한테니스협회 회장의 취임 축하와 국내 테니스계 인사들과 교류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테니스 구력은 어느덧 50년 남짓이다. “1976년 결혼을 했는데 몸무게가 쌀 한 가마니가 넘는 90㎏를 육박했다. 손위 동서의 권유로 살 빼려고 시작한 테니스가 오늘까지 이어졌다.” 


<사진> 대한테니스협회 주원홍 회장과 함께

김 고문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코트의 키다리 아저씨’로 불린다. 테니스에 심취해 1980년대 국내에서 동호인 대회를 성대하게 개최하며 생활체육 테니스의 원조가 됐다. “서울의 한 테니스장이 개장했는데 30면이 넘었다. 개장 기념으로 대회를 여는데 여기저기 스폰서를 구하고 다녀 500명 가까운 참가자들에게 풍족하게 나눠줬다.”

1980년대 중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김 고문은 교포 사회에서도 선수급 테니스 실력으로 이름을 날렸다. 테니스를 즐기는 데 전념하던 그는 주위의 권유로 재미 체육단체 회장을 맡으며 스포츠 행정가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쳐 국민생활체육회 재미 테니스회장을 오랜 세월 역임했다. 양분돼 있던 재미 대한테니스 단체의 통합을 주도해 단일화에 이르게 한 것도 김 고문이었다.

미국 H마트의 캘리포니아 진출에 맞춰 H마트배 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해 교포 사회의 친선과 교류에도 이바지했다. 김 고문이 사재까지 털어가며 지원하는 H마트배 대회는 수준과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 출전 선수 규모를 5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17회째를 맞는 올해 대회는 9월에 개최하는 데 미국 전역에서 한인 테니스 동호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외로움을 달래고 모처럼 웃고 떠드는 축제가 될 전망이다.


<사진> 양종수 전 육사 교장(대한테니스협회 부회장), 김성일 전 공군참모총장과 운동 중 휴식을 취하는 김인곤 고문

60년 가까이 요식업으로 한 우물을 파고 있는 김 고문은 이형택이 2000년 메이저대회인 US오픈에 출전했을 때는 비싼 입장료를 수십 장 구매해 유학생 응원단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런 열성적인 성원에 힘입어 이형택은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거둘 수 있었다. 한국 선수들이 미국 원정을 올 때마다 마치 친가족처럼 정성껏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주원홍 회장이 1980년대 선수 생활을 마치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미국 연수를 떠났을 때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도 김 고문이었다. 주 회장이 처음 테니스협회를 이끌게 됐을 때 기쁜 마음에 카니발 승합차 한 대를 선뜻 협회에 기증하기도 했다. 정현이 호주오픈 4강 진출의 새 역사를 썼을 때도 한국을 찾아 직접 격려했다.

김인곤 회장은 이번 방한 때는 남다른 기부로 주위의 찬사를 들었다. 육군사관학교의 육군박물관에서 추진하는 2025년 특별전 ‘6.25 전쟁과 육사생도 1기(10기)•2기’ 행사에 예산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1억 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이번 사업을 주도한 양종수 전 육사 교장(예비역 중장)에 따르면 육사생도 1기와 2기는 1949년 7월 15일과 1950년 6월 1일 각각 입교한 뒤 6•25전쟁 발발에 따라 바로 참전해 국가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육사는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 추모 감사하는 의미를 담아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 양종수 전 교장에게 이런 사연을 전해 들은 김 고문은 “만리타향에서 오래 살다 보니 국가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군인의 사명과 사관생도의 정체성을 각인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좋은 취지에 동참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는 6월 육사 기념관 지하 1층에서 열릴 계획이다.


<사진> 한국시니어테니스연맹 김문일 고문과 함께

김 고문은 자신을 ‘절반은 테니스인’이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한국 테니스 발전에도 지대한 관심이 있다. 김 고문은 “대한민국에서 좋은 선수가 많이 배출됐으면 좋겠다. 나 역시 작은 도움이라도 주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지난 8년 가까이 테니스협회가 제 기능을 못 하면서 오히려 뒷걸음질한 꼴이 됐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다 할 꿈나무도 잘 보이지 않는다. 주원홍 회장이 지도자 시절 우수한 선수를 다수 배출한 만큼 기대가 크다. 그렇다고 대형 선수가 하루아침에 나오진 않을 것이다. 주 회장이 어렵게 다시 협회를 맡은 만큼 4년 임기 동안 (선수 육성) 기초라도 다지면 좋겠다. 주 회장 본인이 원한다면 연임해서 세계적인 선수를 배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라고 덕담을 했다. 

그는 테니스 문화의 선진화도 언급했다. 김 고문은 “테니스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엘리트 선수에 대한 인기와 함께 생활체육 동호인들도 급증하고 있다. 아마추어 선수들이 성적에만 매달려 룰 위반을 한다거나 매너를 경시하는 풍조 등은 지양해야 한다. 상대를 배려하고 품위를 지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78세의 나이에도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 역시 테니스다. “70대에 접어들어도 1주일에 네 번 이상 테니스를 쳤다. 그러기 위해 평소 근력, 특히 하체를 단련하는 운동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있다.” 김 고문은 1년에 서너 번 귀국할 때마다 대전고 후배인 연세대 의대 출신 정인선 대한소프트테니스협회 회장과 안계훈 신경외과전문의가 원장으로 있는 연세아이미스템의원에서 꾸준히 무릎 관절 등 관리를 받는 것도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테니스와 함께 김 고문은 본업인 사업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조만간 새로운 사업체를 정식으로 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풀리고 몸과 마음이 젊어지는 것 같다.”

김 고문은 재미교포 선수단을 이끌고 국내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에도 해마다 출전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대한체육회의 차별에 가까운 대우에 맞서 적극적인 주장으로 해결책을 마련했다. 해외 교포 선수단은 깍두기 취급을 받는 들러리 신세였던 것. 해외 교포 부문을 따로 만들어 진정한 경합이 이뤄지도록 유도했다. 김 고문은 “체전에 나와보니 간부는 비싼 갈비탕 먹고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설렁탕만 먹도록 체육회 규정이 돼 있더라. 진짜 뛸 선수에게 배고픔을 줘서는 되겠냐고 항의했다. 결국 선수단 식비 규정을 공정하게 개선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온기가 골고루 퍼져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는 김인곤 회장. 그 따뜻한 테니스 코트 사랑이 태평양을 넘나들며 한국과 미국에 널리 스며들고 있다.

글= 김종석 기자(tennis@tenni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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