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주적론’ 꺼낸 대만의 불안…트럼프 거래 테이블 오를라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지난 3월13일 중국을 ‘외부 적대세력’으로 규정했다. 대만 지도자가 이처럼 명확하게 ‘중국 주적론’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만과 중국에 대한 정책은 모호하고 혼란스럽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전쟁’이 중국의 강력한 반격에 부딪힌 상황에서 미국의 ‘카드’가 부족해지면 결국 대만을 이용해 중국을 압박하려 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부상하고 있다.

대만 총통 선거 직후 정권 교체기에 대만해협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군용기가 추락한다. 중국은 항공기 수색과 구조 작업을 명분 삼아 대만해협을 봉쇄한다. 대만 사회는 물자 부족, 약탈, 금융 시장 마비로 혼란에 빠져든다. 중국은 소셜미디어에 대만 총통이 해외로 도망쳤다는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대만 내에 침투한 중국 세력들에 의해 거리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난다. 혼란과 공포 속에서 중국군이 대만에 상륙한다.
올해 방영 예정인 대만의 10부작 티브이 드라마 ‘제로데이’(零日攻擊)의 내용이다. 지난해 18분짜리 예고편이 공개돼 대만 사회에 큰 파문과 논란을 일으켰다.
현실도 점점 드라마를 닮아가는 듯 위태롭고 불안하다. 2022년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하자 중국인민해방군은 사상 처음으로 대만 포위 훈련을 실시했다. ‘대만 독립파’인 라이칭더 대만 총통이 지난해 5월 취임한 뒤에는 중국군의 대만 봉쇄 훈련이 더욱 위협적으로, 자주 거듭되고 있다. 지난 4월 1~2일에도 ‘해협의 천둥번개-2025A'(海峡雷霆-2025A)라는 이름의 훈련이 실시됐다. 중국군 함정과 항공기가 대만 주변을 에워싸고 장사정포 등으로 공격 태세를 갖췄고, 이와 동시에 대만 동부 서태평양에는 중국 항공모함 ‘산둥’ 함대가 작전을 벌였다. 중국군이 예고 없이 대만 주변에서 갑작스럽게 실시하는 훈련도 늘고 있다. 대만을 향해 언제든지 ‘작전’에 나설 수 있다는 위협이다.
대만의 대응도 날카로워진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지난 3월13일 중국을 ‘외부 적대세력’(境外敵對勢力)으로 규정했다. 대만 지도자가 이처럼 명확하게 ‘중국 주적론’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라이 총통은 이와 함께 ‘대만이 당면한 5대 국가안보·통일전선 위협 및 17개항 대응 전략’도 내놓았다. 중국이 대만군 내부에 간첩들을 침투시키고, ‘양안 교류’를 명목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며, 인재와 기술 탈취로 대만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면서, 정치인·학자 등의 중국 방문을 철저하게 감시하는 것은 물론, 군사법원을 부활시켜 ‘이적행위’ 처벌을 강화하고 대만인들의 중국 여행과 교류를 통제하겠다는 내용이다.
라이칭더 정부의 ‘중국 배제’ 정책은 실제로 중국의 압박과 침투가 거세지는 데 대한 대응이기도 하다. 라이칭더 총통은 “중화민국(대만)과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서로 종속되지 않는다”며 중국과 선을 그어왔고, 중국은 그를 ‘분리주의자’로 비난하며 군사·경제·정치적 압박을 높여왔다. 중국의 위협적인 대만 포위 훈련이 거듭되는 가운데, 대만의 군과 외교안보 핵심에서 ‘중국 간첩’들이 계속 적발되고 있다. 대만 국가안전국은 2020년 이후 현역·퇴역 군인 95명을 포함해 모두 159명의 중국 간첩을 기소했고, 집권당인 민진당 소속의 총통부(대통령실) 참모 등이 연루된 중국 간첩 사건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대만군 전 군사정보국장은 대만 내 잠복한 중국 간첩이 5천명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안팎의 위기는 얽히기 마련이다. 중국을 겨냥한 대만 정부의 강경 정책의 배경에는 심각한 정치 분열과 갈등이 있다. 대만 내에서 중국의 위협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지만, 동시에 라이칭더 정부가 안보 불안을 과도하게 고조시켜 야당을 ‘친중세력’으로 몰아 정치적 탄압에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라이칭더 정부의 정책들이 다수 의석을 가진 국민당에 계속 막히자, 국민당을 ‘대만을 중국에 팔아넘기려는 세력’으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라이칭더의 민진당에 친화적인 시민단체들은 국민당 입법위원(국회의원) 소환(해임 청구) 요구 국민투표 운동을 시작했고, 국민당 쪽도 같은 소환운동으로 맞서면서, 정치적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외부의 위협 앞에 분열하는 대만 정치는 한국의 상황도 돌아보게 한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이런 불길에 기름을 붓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편을 들면서,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당신은 카드가 없다”고 몰아붙이며 굴복을 요구하는 모습이 대만인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명백하다. 트럼프는 언제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대만을 넘기는 거래를 할 수 있다는 불안이 대만인들을 짓누른다. 이런 상황에서 라이칭더 총통은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려는 ‘미국 올인’ 정책으로 기울고 있다. 국방 예산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3%로 올리겠다고 발표했고, 미국산 무기를 대규모로 구매할 계획도 잇따라 밝히고 있다.
하지만, 라이칭더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모든 요구를 따르고 돈을 낸다고 해도 대만의 안보 불안이 사라질 수는 없다. 대만의 유명 작가·비평가이자 국민당 마잉주 정부의 문화부 장관이었던 룽잉타이는 4월1일 ‘뉴욕타임스’에 ‘대만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The Clock Is Ticking for Taiwan)는 글을 썼다. 룽잉타이는 “오늘은 우크라이나, 내일은 대만”이라는 불안이 대만인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면서, 대만인들은 ‘미국이 러시아와 친해지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중국과 친해지기 위해 우리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을까’라고 묻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미국이 필요에 따라 대만을 버려왔던 역사를 다시 소환하면서, “1978년 12월16일, 당시 대만 총통이었던 장징궈는 새벽 2시에 미국으로부터 ‘중국과 수교를 위해 대만과 단교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것을 대만인들은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의 무역 또는 지정학적 협상을 위해 대만을 젖혀둘 위험이 매우 커졌다”면서 “분명한 것은 중국을 거부하고 적대하면서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더 이상 실행 가능한 길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대만 사회의 고민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트럼프는 세계 질서를 강대국 간의 거래로 바꾸려 하고, 강대국들의 세력권이 겹치는 경계선에 있는 우크라이나, 한반도, 대만에서는 강대국 거래 대상이 되어 언제든지 ‘이용당하고 버려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중국과 미국은 대만에 대해 어떤 계산을 하고 있을까. 중국이 대만 포위 훈련을 계속하고 군사력을 급속도로 증강하고 있지만, 단시일 안에 ‘군사적 통일’에 나설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시진핑 주석은 미국을 상대로 자국이 유리한 판을 만들어 나가는 ‘지구전’ 전략을 추진한다. 시진핑이 중국군에 ‘2027년까지 대만에서 승리할 수 있는 군사적 태세를 갖추라’고 지시했지만,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관세전쟁, 중국 민생 경제 악화, 계속되는 중국군 내부 숙청 등을 고려하면 상당 기간 중국이 전쟁에 나서기는 어렵다. 대신 중국은 대만에 대한 군사적 압박과 통일전선 전술을 병행하면서 대만 내부의 균열을 깊게 하고, 라이칭더 정부에 반대하는 ‘친중’ 세력에 힘을 실어줄 전략을 펴나갈 것이다. ‘친중’ 성향의 국민당 정부 집권 가능성을 기대하면서, 한편으로는 미국 세력이 아시아에서 후퇴하는 흐름을 읽고 봉쇄나 군사적 방법으로 대만을 ‘통일’할 기회도 계속 탐색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만과 중국에 대한 정책은 모호하고 혼란스럽다. 모든 군사적 역량을 중국 견제에 집중하려는 세력도 있지만, 외부의 일에 미국의 자원을 쓸 필요가 없다는 ‘마가(MAGA) 세력’의 목소리도 강하고,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중국을 압박한 뒤 시진핑 주석과의 거래를 통해 미국의 이익을 최대화한다는 태세다. 미국의 주요 전략가들 사이에서도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경우 미국이 막대한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대만을 보호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앨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차관은 의회 인준 청문회에서 “대만은 미국에 중요하지만 실존적 이익은 아니다”라고 했다. 대만은 미국이 서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필요한 카드이지만, 중국과의 직접 충돌을 감수할 정도는 아니라는 뜻이다.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디펜스 프라이오리티스’의 제니퍼 캐버너 선임연구원과 스티븐 워트하임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이 지난 2월25일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대만 해결책(The Taiwan Fixation)도 미국 안보 전문가들의 대만에 대한 새로운 기류를 보여준다. 이들은 “미국이 대만을 방어할 것인지에 대해 모호성을 유지하라”고 촉구했다. 중국의 대만 공격이 벌어질 경우 미국은 ‘가능한 멀리서’ 대만을 지원해야 하며, 분쟁이 어떻게 마무리되든지 아시아에서 미국의 입지가 유지될 수 있도록 전략을 취해야 하지만, 반드시 대만을 지킬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모순과 불확실성을 직시해야 한다. 미국 국방 당국자들은 ‘중국 견제’를 최우선 전략 목표로 강조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이 중국 견제의 최전선에 나서 대만해협 방어에서도 더 큰 역할을 하도록 요구한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대만을 넘기는 거래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전쟁’이 중국의 강력한 반격에 부딪힌 상황에서 미국의 ‘카드’가 부족해지면 결국 대만을 이용해 중국을 압박하려 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부상하고 있다.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중국에 대해 ‘경제 카드’가 통하지 않으면 중국을 더 압박하기 위해 대만에서 ‘군사적 카드’까지 사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중국도 대만해협에서 이미 전시·평시 구분이 없이 전투기와 군함을 보내고 봉쇄 훈련을 하고 있어 여기서 한걸음만 더 나아가면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동안 ‘중국이 언제 군사적 방법으로 대만을 통일하러 나설까’ 우려해왔다면 이제는 ‘미국 강경파가 대만의 독립을 부추겨 중국을 전쟁으로 끌어들일까’도 걱정해야 하는 예측 불가의 ‘위험의 시대’가 와 버렸다.
미국과 중국 모두 ‘현상 변경 세력’이 된 시대에 한국이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대로 중국 견제에 앞장선다면 동아시아의 전쟁 위기는 더욱 고조될 것이다. 대만해협의 ‘현상 변경’에 반대하면서, 대만-한반도 연쇄 전쟁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 좁고도 어려운 길을 반드시 찾고 만들어 나가야만 한다.

박민희 |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2007~2008년 중국 인민대학교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통일외교팀장,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세계와 외교에 대해 취재하고 쓰고 있다. ‘중국 딜레마’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보이지 않는 중국’ ‘롱게임’ 등의 책을 번역했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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