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이젠 하늘에서 마이크...농구 1호 장내 아나운서 염철호 씨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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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장내 아나운서 1호로 이름을 날린 염철호 씨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인은 프로농구가 출범한 1997년보다 훨씬 이전인 198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경기장에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오빠 부대가 코트에 인산인해를 이루던 농구대잔치 시절 선수 못지않은 유명세를 치른 고인은 프로농구 출범 후에는 중립 구장에서 아나운서로 활약했습니다.
관중과 호흡이 뛰어난 장내 아나운서였던 고인을 기억하는 농구 팬이 아직도 많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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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장내 아나운서 1호로 이름을 날린 염철호 씨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90세.
한국농구연맹(KBL) 친목단체인 KBL 패밀리(회장 임정명)와 대한민국농구협회는 농구 원로 염철호 씨가 22일 오랜 투병 끝에 영면에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KBL 패밀리 기형환 총무는 “몸이 편찮으셔서 한 5,6년 요양원에 계셨는데 최근 3년에는 치매 증상도 있었다”라고 전했습니다.
고인은 프로농구가 출범한 1997년보다 훨씬 이전인 198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경기장에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국내에서 농구가 ‘겨울 스포츠의 꽃’으로 최고 인기를 누리던 시절이었습니다.
해박한 농구 지식과 구수한 입담으로 경기마다 약방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게임 도중 판정 논란이라거나 까다로운 규칙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해설자로 나서 관중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기도 했습니다.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부모님 손을 잡고 월남한 실향민인 고인은 서울사대부중에서 농구를 시작해 성동고와 중앙대에서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1950년대 말 청소년 대표에 뽑혔던 그는 한때 고교에서 역사 교사로 교편을 잡다가 1968년 이화여고 농구부 감독을 시작으로 여자농구 서울은행, 신용보증기금 감독 등을 거쳤습니다. 대한농구협회 홍보이사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제2의 고향인 대전에서 농구 꿈나무를 지도한 적도 있습니다.

<사진> 농구장에서 약방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던 염철호 씨. KBL 자료
오빠 부대가 코트에 인산인해를 이루던 농구대잔치 시절 선수 못지않은 유명세를 치른 고인은 프로농구 출범 후에는 중립 구장에서 아나운서로 활약했습니다. 1999년 세계의 주목을 받은 남북통일농구대회에서도 마이크를 손에 쥐었습니다.
고인은 농구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선수에게 직접 별명을 지어주기도 하고 긴박한 승부처에서는 경기장 열기를 한껏 끌어올리는 분위기 메이커였습니다. 올 시즌 정규리그 1위 SK 나이츠 전희철 감독은 “선수 시절 한국 농구의 자존심이라고 불러주셔서 늘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허재 전 KCC 감독 역시 “선수소개 때마다 늘 ‘농구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를 언급해 주셨다. ‘허재만이 할 수 있는 플레이’라는 칭찬도 자주 하셨다”라고 회고했습니다.
한국 농구의 전설들을 초등학교, 중고교, 대학 재학 때부터 오랜 세월 지켜봤기에 누구보다 선수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풍부한 정보는 차별화된 경기 진행을 가능하게 했으리라.
고인은 생전 인터뷰에서 “하루에 관중이 1만5000명 들어찬 적도 있었다. 코트에 서면 신바람이 났다. 선수들 별명을 일일이 지어줘 활용했다. 람보 슈터 문경은이라고 불렀고 스마일 슈터 김훈, 뭐 이런 식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관중과 호흡이 뛰어난 장내 아나운서였던 고인을 기억하는 농구 팬이 아직도 많을 정도입니다. 필자 역시 농구장에서 늘 목청을 돋우던 고인의 모습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김 형 농구 인기가 예전 같지 않아 큰 일이야”라며 늘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4쿼터가 시작할 때면 고인이 늘 하던 레퍼토리가 있었습니다. “승부를 결정짓는 마지막 쿼터”. 이 한마디에 관중의 시선은 일제히 코트를 향했습니다. 또 “체육관은 교실이 아닙니다. 마음껏 소리를 지르세요”라는 말도 자주 했습니다. 함성을 통한 스트레스 해소를 유도한 겁니다.
90세를 일기로 눈을 감은 고인의 목소리와 제스처는 이제 농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하지만 천상의 코트에서 다시 마이크를 잡을 것만 같습니다.
KBL 패밀리(회장 임정명)와 대한민국농구협회에 따르면 빈소는 대전 건양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025년 4월 24일 오전 7시 20분. 장지는 대전추모공원입니다.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글= 김종석 기자(tennis@tenni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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