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귀신 돼도, 일본 사과 받아낼 끼라"···'위안부'의 60대 아들은 울었다
① 생존자 박필근 할머니의 곁
변소 수챗구멍으로 위안소 탈출, 고향으로
남편과 자식 7명 중 5명을 잃고 생계 책임
매주 어머니 찾아 살피는 아들 남명식씨
"어릴 때는 잔소리 많고 억척스러운 엄마"
'위안부' 피해 알고 "하늘이 무너졌다" 눈물
"엄마 돌아가시면 더 열심히 역사 알릴 것"
편집자주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이제 7명 남았습니다. 세계 곳곳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약 2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데, 국내에 신고·등록된 피해자 수는 고작 240명(2022년 기준). 대부분이 제대로 된 일본의 사과도 배상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지요. 남은 일곱 분의 할머니도 평균 나이 95.7세입니다. 긴 세월 싸워온 할머니들과 이들의 곁을 지킨 이들을 만났습니다.

"야야, (저 기자가) 뭐라카노? 내 말로 다 몬 한다."
"엄마! 엄마가 내한테 다 말해줬잖아. 그때 얘기 좀 해 봐 봐!"
올해로 97세가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박필근 할머니는 이미 귀가 어두워져 소통 자체가 쉽지 않았다. 떡과 과일을 내주며 낯선 기자를 살갑게 반겼지만 정작 질문엔 "말로 다 몬 한다"라는 답변만 반복하며 인터뷰를 어려워했다.
남명식(62)씨는 그런 박씨를 옆에서 애달프게 바라봤다. 매 주말마다 일주일 치 국거리를 싸와 박씨를 살뜰히 챙기는 그의 막내아들이었다. 남씨는 질문을 더 큰 목소리로 전달하거나 박씨의 간결한 대답을 문장으로 바꿔주며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박씨가 굽은 손가락만 내밀어도 "손가락이 상할 정도로 일을 열심히 하셨대요"라고 말해주는 식이었다.

1991년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첫 신고 이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가 알려진 지 34년이 됐다. 학계마다 해석이 다르지만 당시 일본군 병사 수를 기반으로 따져보면 세계 곳곳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약 2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국내에 신고·등록된 피해자 수는 240명(2022년 기준)에 불과하다. 이 중 2월 고 길원옥 할머니 별세 후, 생존자는 이제 7명만 남았다. 올해 이들의 평균 연령은 '95.7세'. 증언을 들을 수 있는 이는 박씨와 이용수(97) 할머니, 단 둘뿐이었다. 이옥선(98)·강일출(97)·김경애(95) 할머니는 건강 악화로 소통과 거동이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고, 나머지 둘은 신원 및 행적이 외부로 공개된 적이 없다.
한국일보는 접촉 가능한 '위안부' 생존자들과, 그 곁을 지켜온 가족·지인을 만났다. 연로한 생존자 대신 그들의 삶을 이어서 증언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엄마·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도 '위안부'의 역사는 우리 삶을 통해 이어진다"며 "피해자들이 미처 못 이룬 염원을 반드시 이룰 것"이라고 했다.
잔소리 많고 억척스러웠던 엄마... "남은 자식도 우예 될까 봐"

지난달 15일 오후 찾은 경북 포항시 북구 죽장면 박씨의 자택. 박씨 외가의 집성촌 일대인 이곳에서 그는 1928년 9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다. 하지만 15세가 되던 해 일본군에게 끌려가 약 2년간 일본에 위치한 위안소에서 감당하기 힘든 고초를 당했다. 그는 두 번의 시도 끝에 또 다른 피해자 두어 명과 함께 변소 수챗구멍에 몸을 욱여넣어 위안소를 겨우 탈출했다.
어렵게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고된 삶이 이어졌다. 위안소에서 내내 그리워했던 어머니는 딸을 잃었다는 슬픔에 몸져누워 박씨가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세상을 떠났다.
이후 박씨는 오징어잡이 배를 타는 남자를 만나 자식 7명을 낳았지만 홍역에 5명을 잃었고, 이후 아이들 아버지마저 일찍 하늘로 떠나보냈다. 박씨는 "셋째 딸이랑 막내아들만 겨우 붙들었다"고 했다.

박씨는 어떤 엄마였느냐고 묻자 남씨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잔소리가 무지 많았어요"라고 즉답했다. 남씨가 초등학생 때 친구들이 낚싯대를 매고 연못가에 놀러가는 걸 따라나서면 박씨는 "물에 빠져 죽는다"며 곧장 아들을 찾아왔다. 하교 후엔 자전거 페달을 빠르게 밟아 집에 일찍 도착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박씨가 아무나 붙잡고 "왜 우리 열이(당시 애칭) 안 오냐"고 묻기 때문이었다.
잔소리 많고 억척스럽기만 했던 엄마. 자식 둘 먹여 살리려 남의 밭을 매고 산나물을 캐러 다니느라 손가락이 다 굽어도 박씨는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남씨는 어느새 다 늙은 어머니를 가만히 보며 말했다. "알고 보면 자식 다 먼저 보내고 남은 자식도 우예 될까 봐 그러신 것 같애요. 내 그 엄마 마음을 이제 이해하겠더라고."
"일본 놈들 독종이데이"... 엄마의 말은 '위안부' 증언이었다

박씨는 어린 남씨를 앞에 두고 간혹 뜻 모를 말을 할 때가 있었다. "야야, 내 일본 가서 호되게 고초를 당했데이" "일본 놈들은 독종이데이". 당시 남씨는 '일본은 예의 바른 나라라고 배웠는데 왜?'라고 생각할 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가끔 엄마가 기본적인 일본어는 물론 일본 욕설까지 잘 알고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20여 년이 지나 남씨가 30세가 다 돼서야 알았다. 대구로 출가해 택배 자영업으로 생업을 꾸리느라 바빴던 남씨는 우연히 본가에 들렀다가 우편함에서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박씨가 고심 끝에 면사무소에서 등록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신고 문서였다.
"하늘이 무너졌지, 뭐."
남씨는 그때를 떠올리다 겨우 한마디를 말하곤 눈물을 터뜨렸다. 왜 진작 엄마에게 일본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묻지 못했을까. 하염없는 회한으로 오랫동안 괴로웠다고 했다. "지금 와가 이래 얘기하지, 그때는 다들 ('위안부' 피해를) 흉으로 봤다고. 친구들한테도 차마 얘기를 몬 했어요."
그날 이후 남씨는 박씨를 대구 집으로 모시는 날이면 포항에서 대구까지 고속도로를 내달리며 피해 내용을 상세히 질문했다. 아들이 물어봐 주기만을 기다렸던 걸까. 박씨는 남씨에게만큼은 위안소에서의 상황과 심정을 구체적으로 털어놨다. 그렇게 한 시간 분량이 넘는 녹음 파일 총 3개가 나왔다.
남씨는 누가 들을까 봐 녹음 파일 소리를 최저로 낮추고 혼자서 그 파일을 듣고 또 들었다고 했다. 10년이 넘는 기간을 닳도록 듣던 파일은 약 3년 전쯤 휴대폰에 난 오류로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남씨는 "돈뭉치를 잃은 것보다 더 아까웠다"고 말했다. 그때처럼 구체적인 증언을 다시 들을 기회가 더는 없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이날 인터뷰처럼 박씨가 낯선 사람 앞에서 말을 아낄 때면 남씨 마음은 더욱 쓰려진다. "엄마는 계속 '모른다' '말로 다 몬 한다' 이러는데 내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거든요. 엄마가 남들한테는 어딘가 모르게 100% 오픈을 안 하니까 내한테처럼 솔직하게 얘기해주면 좋겠다 싶지요."
아들의 사무치는 염원… "후대가 우리 엄마 역사도 알아야지요"

박씨는 혹여 '위안부' 피해 사실이 자식들에게 해가 될까 신고 이후에도 남씨가 나서는 걸 말려왔다고 한다. 남씨가 '위안부' 피해 관련 행사나 모임에 나가려 할 때마다 박씨는 "참아라" "좋은 게 좋다"며 계속 붙들었다. 남씨는 "TV에 나올 것 같으면 손으로 얼굴 가려가면서엄마 몰래 행사를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생업이 바쁜 요즘, 남씨는 매번 상경하기 어려워 유튜브로나마 수요집회를 챙겨 보곤 한다. 화면에는 수요집회뿐만 아니라 건너편에서 '위안부 가짜'를 외치는 반대 집회의 모습도 함께 비친다. 남씨에겐 차마 눈 뜨고 지켜볼 수 없는 광경이다. 그는 "뼈에 사무치고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했다.
박씨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위안부' 역사를 끝까지 알려야겠다는 결심이 더 굳어진 것도 그래서다. 남씨는 소리 높여 말했다. "정치하는 큰사람들 얘기만 역사입니까. 후대 사람들이 우리 엄마 역사도 제대로 알아야지요."
이날 박씨는 인터뷰가 어려운 와중에도 "내가 죽어 귀신이 돼도 알아서 (일본으로부터 사과받고) 해주소" "죽은 귀신이라도 알고 있을 일이다"라는 말만큼은 또렷하게 했다. 이에 남씨도 거들었다. "엄마가 '죽은 귀신이라도 알게 해 달라' 안 캅니까. 내는 엄마 돌아가시면 더 큰소리를 낼 끼라. 내 일본을 쫓아가든지 해가 떳떳하게 일본한테 보상도 사과도 받고요. 엄마 산소에 가가 '엄마, 내 사과받았다' 얘기할 낍니다."
포항= 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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