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민 눈물·공무원 피땀 거름 삼아 울창한 숲 일구다
전국 차원 정리 사업 근거 활용
전국 최초 ‘ 화전정리 담당관’ 신설
토지·공공근로 일자리 제공 자립 지원
전담 공무원, 전입신고·각종 계약 등
이주민 안정적 정착 체계적 관리
맑은 공기·나무 가득한 옛 생활터에
이주 화전민 “산림 복구 잘된 일”
[산림녹화기록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 7. 강원도 화전정리사(史) ③
이미 거주하고 있는 화전민들을 설득해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통신도, 장비도 마땅치 않던 시절, 정부와 주민들은 산림을 살려야 한다는 의지 하나로 화전 복구에 나섰다. 강원도는 화전민들이 다시 화전생활을 하지 않도록 토지를 제공,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등 이주한 화전가구 정착에 심혈을 기울였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대한민국의 산림녹화기록물의 신화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 강원도 최초 화전정리 지역 명주군
강원도내에서 화전실태 조사의 효시는 현재 강릉 일원인 명주군이다. 박규원 한국산림녹화 유네스코 등재 추진위원에 따르면 1970년 강원도 명주군에서 이뤄진 화전실태 조사 방식은 전국 화전 정리 실태조사의 근거가 됐다.
1970년 명주군 화전민은 총 1461세대이며 면적은 1818필지에 422㏊다. 이때 국유림과 사유림을 구분해 조사했다. 박규원 추진위원은 “강릉 명주군의 사례는 최초의 화전실태 조사의 효시이고 이 조사 결과를 근거로 전국적인 화전정리 실태조사가 이뤄질 수 있었다”고 했다.
이후 전국적으로 화전정리 사업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책이 강구되면서 전국의 화전지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국의 화전 면적은 4만1132㏊ 중 산림복구는 2만5490㏊, 경작지 양성화는 1만5642㏊로 집계됐다. 화전가구는 13만5000여 호이며 이중 이주 대상은 6597호, 현지정착은 12만8220호로 조사됐다. 전국적인 화전정리사업은 1979년 마무리됐다.

■ 화전민에게 생활 기반 제공
강원도는 화전민이 생활하던 곳을 떠나서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기반을 제공했다. 이미 1차 시범사업 당시 화전민 30%가 화전으로 돌아간 아픔이 있는 강원도로서는 화전민들이 다시 산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방지하는 게 화전 사업의 성공을 좌우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이주정착민에게는 지금의 공공근로사업과 유사한 ‘마을 공동 소득 사업 취로사업’으로 노임을 제공하기로 하고 이 예산을 지방비로 편성했다. 화전민에게 자립과 자활의 기회를 제공해 다시 산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지원했다.
박규원 등재위원은 “산림을 환원시키면 화전민 입장에서는 경작지를 전부 상실하거나 적어져 생활기반을 잃게 되고 화전민이 정착에 실패해 다시 화전을 만든다면 화전정리사업은 실패로 귀결됐을 것”이라고 했다.
강원도는 화전민을 관리하기 위한 행정조직도 개편했다. 1974년 당시 21개 시·군, 283개 읍·면·동 중 산림과 연관된 186곳을 대상으로 전국에서는 최초로 도 본청에 화전정리 담당관을 신설했다. 21개 시·군 녹지산림과에 화전정리계를 두고 186개 읍·면·동에는 화전정리 전담직원과 지도원을 뒀다.
화전정리 담당 공무원들의 집념은 대단했다. 춘성군에서 경기 양평지역으로 이주한 화전민의 경우 담당 공무원이 이주지역을 함께 방문해 전입신고부터 각종 계약 등을 도왔다. 당시 정착금 40만원과 이사비용 10만원을 지급했는데 화전민들에게 현금으로 주지 않고 통장을 만들어 통장에 입금, 1년에 두번씩 이주 지역에서 통장을 사용했는지를 점검했다. 현지에 정착하지 못하면 지급된 이주비를 환수하기도 했다.
본지가 확보한 ‘이전 화전민 관리 기록 카드’를 보면 화전민의 가구수, 경제활동 인구, 신축 소요액과 이전비 지불일, 구 가옥 철거일, 입주 날짜 등이 기재됐고 신축 또는 매입 가옥의 사진도 첨부,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세대별 담당공무원도 지정됐다.

■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화전민들
더 나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는 하지만 살던 곳을 옮겨야 하는 화전민들의 고충도 상당했다. 춘천 동면에 거주하는 염순서(62)씨 역시 화전민의 아들이다. 이미 5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염순서씨는 화전생활이 어렴풋이 기억난다고 했다.
모두가 어렵던 시절이었지만 화전민들은 유독 어려웠다. 산을 일궈 살아야 하는 삶이었으니 더욱 고단할 수밖에.
염순서씨는 화전 생활하면 늘 자식에게 음식을 양보하던 아버지가 떠오른다. 그는 “밥이 조금이니 같이 일을 나가면 ‘너 먹으라’라고 하고 하루종일 굶던 아버지가 생각이 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봄이면 버들강아지를 따먹고 나무를 하러 소양강댐 근처까지 수도없이 다녀야 했다.
화전을 일구던 곳은 이제 나무로 가득 찬 산이 됐다. 염순서씨는 “어렸을 때는 큰 나무는 하나도 없고 내 키 만한, 작은 나무들 밖에 없었다”며 “공기도 맑아지고 더 살기 좋은 곳이 됐으니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 화전담당 공무원들의 고군분투
당시 공무원들도 화전정리 때의 일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산림을 살려보자는 취지에 동의하는 화전민들도 있었지만 “더이상 이 곳에서 경작을 할 수 없다”는 소리에 크게 반발했던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을 설득해 산 아래로 내려보내는 일도 담당 공무원의 역할이었다.
7대 강원도 산림국장을 지낸 권순호(89) 씨는 “그때는 전화통신도 제대로 없어서 도에서 시·군에 지시를 하려면 전화를 신청해 30분이고 1시간이고 기다려야 했다”며 “묘목을 운반하려면 어느 구간을 통제해야 하는데 각 시·군에 묘목 차를 배치하고 실어보내는 일이 아주 어려웠다”고 고충을 회상했다.
화전을 정리할 때도 지상답사는 물론이고 비행기를 타고 공중 정찰 활동도 펼쳐야 했다. 권순호 전 산림국장의 비행시간만 300시간에 달한다.
화전민과의 추억도 남아있다. 그는 “면 소재지에 갔는데 이주 화전민이라고 기둥에 적혀있어 집중적으로 관리한 적이 있었다”며 “정착한 지역에서의 생활이 어떤지를 물었는데 ‘나라에서 지원도 해주고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니 고맙다’고 말해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헐 벗은 민둥산은 화전민의 눈물, 담당 공무원들의 땀을 거름삼아 울창한 숲이 됐다.
오세현·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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