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지역에서 학문하기
계명대학교 여성학과가 폐지돼 사회학과로 흡수된다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대구·경북의 한 독립언론이 ‘계명대 여성학과 지키기 공동대책위원회 준비위원회’의 일방적 주장을 받아 ‘사회학 가해자’ 대 ‘여성학 피해자’ 프레임으로 보도한 것이 발단이다. 이를 이어받아 인터넷 신문·주간지 기사와 일간지 칼럼이 확산시켰다. 계명대 사회학과 학과장인 당사자로서 속사정을 알릴 필요를 느낀다.
1990년 특수대학원으로 계명대 여성학대학원이 설립됐다. 한동안 여성학은 많은 호응을 받았다. 특히 지역 여성운동 활동가가 많이 지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 모집이 어려워졌다. 2009년 말 여성학대학원 폐원이 결정됐다. 대신 2010년 3월 정책대학원 안에 여성학 석사과정이 신설됐다. 2010년과 2011년의 등록생 수가 6명과 8명이었다. 이후 3명에서 6명으로 들쭉날쭉했고 2016년 10명을 정점으로 수가 급감했다. 이민다문화사회학과 등 정책대학원 소속 다른 학과 사정도 매한가지였다. 지난 10년 동안 정책대학원을 살리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학생 수는 갈수록 줄었다. 가뜩이나 지역경제가 어려운데, 코로나19 팬데믹이 결정타였다. 2024년 10월22일 여성학과 학과장을 비롯한 정책대학원 소속 학과장들과 정책대학원장이 모여 정책대학원 모집 중지에 합의하고 공식 서명했다.
여기까지 보면 사회학과는 정책대학원 여성학과 모집 중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런데 어쩌다 사회학과는 가해자로 몰렸나? 2007년 일반대학원 안에 여성학 박사과정을 따로 개설했다. ‘학문으로서의 여성학’을 하려는 시도는 곧 난관에 부딪혔다. 개설 3년 만에 학생 수 절대 부족으로 폐과 위기에 몰렸다. 학교 당국에서 여성학을 세부 전공으로 받아줄 수 있냐고 사회학과에 물어왔다. 사회학과도 대학원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라 요청에 응했다. 사회학과 교수 5명, 여성학과 교수 2명, 일반대학원장이 모여 회의를 했다. 사회학과 세부 전공으로 여성학 석사·박사 과정을 개설하기로 합의했다. 독자적인 여성학과는 사라지지만, 사회학과라는 제도 안에서라도 여성학 학문을 살리는 게 낫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2011년 3월 처음 사회학과에서 여성학 세부 전공을 뽑았다. 석사과정은 정책대학원 안에 개설된 여성학과에 진학하도록 안내했다. 이후 매년 적을 때는 4명, 많을 때는 20명의 학생이 등록했다. 때로는 사회학 전공자가, 어떨 때는 여성학 전공자가 많았다. 힘을 합쳐 과목 개설 수를 조절하며 사회학과 대학원을 운영했다.
이러한 협력은 정책대학원 여성학과 교수가 학생 부족으로 모집 중지된 여성학과를 일반대학원으로 옮겨달라고 요청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학교 당국은 “학과 운영의 효율성 제고와 학생 수 감소에 따른 학교 정책으로 학과 통합 또는 폐지(모집 중지)가 진행 중”임을 들어 거절했다. “2010년 10월에 여성학과(박사과정)와 사회학과를 통합해 사회학과(사회학, 여성학전공) 석사 및 박사 과정으로 변경 운영 중에 있음”도 상기시켰다. 사회학과도 의견을 냈다. 정책대학원 여성학과가 모집 중지됐다고 지난 15년 동안 협력해서 잘 운영해오던 제도의 틀을 허물면 여성학은 물론 사회학도 학문하기 어렵다.
이것이 지역 학문장의 엄연한 현실이다. 여성학 학문이 지역 대학에서 거의 사라졌다. 그나마 대구의 계명대학은 오래 버티고 있다. 일반대학원에서 사회학과와 협력하면서 여성학 학문을 지켜낼 수 있었다. 비난이 아니라 응원받아 마땅하다.
이제 곧 새 정부가 세워진다. 소위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시장가치가 적다는 이유로 기초학문과 필수학문을 무차별적으로 대학에서 몰아냈다. 이를 바로잡아 ‘지역에서 학문하기’가 가능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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