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간 4100㎞를 걸어 집으로…개들의 놀라운 귀소본능

김지숙 기자 2025. 4. 2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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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권혁호 수의사의 반려랩
1924년 미국 오리건에 살던 개 ‘보비’는 가족과 여행에 떠났다가 길을 잃은 뒤 6개월간 장장 4100㎞를 달려 집을 찾아왔다. 오리건역사학회 누리집 갈무리

말 못하는 작은 가족 반려동물, 어떻게 하면 잘 보살필 수 있을까요.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국내 여러 동물병원에서 멍냥이를 만나온 권혁호 수의사에게 반려동물의 건강, 생활, 영양에 대해 묻습니다. 매주 화요일 오후 2시 권혁호 수의사의 반려랩과 댕기자의 애피랩이 번갈아 연재됩니다. 궁금한 점은 언제든 animalpeople@hani.co.kr로 보내주세요!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Q. 개들은 뛰어난 귀소본능으로 유명하잖아요. 먼 곳으로 보내졌거나 실수로 길을 잃어버렸다가도 집으로 찾아왔다는 사연을 들으면 기특하면서도 신기하더라고요. 개들은 먼 거리에서도 어떻게 집을 찾아오는 걸까요?

A. 아마 많은 분이 ‘돌아온 백구’ 이야기를 알고 계실 것 같아요. 1993년 전남 진도에서 대전으로 팔려간 진돗개 백구가 300여㎞를 헤매다가 천신만고 끝에 원래 주인이 살고 있는 진도까지 다시 돌아왔다는 사연이죠. 이 사연이 알려지며 백구는 크게 주목을 받았고, 백구를 모델로 한 티브이 광고나 게임이 만들어지기까지 했어요. 진도군은 돌아온 백구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일화를 기리기 위해 기념비와 동상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길을 잃어버린 개들이 먼 길을 되돌아왔다는 소식이 종종 전해집니다. 지난 2024년에는 대전에 사는 진돗개 ‘손홍민’이 20㎞를 걸어 집을 찾아온 사연이 전해졌습니다. 반려동물 박람회장에서 보호자와 헤어진 뒤 41일 만에 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손홍민은 온몸에 진드기와 벌레가 붙어있었지만, 꼬리를 흔들며 보호자를 반겼다고 합니다.

지난 2024년 대전에 사는 진돗개 ‘손홍민’은 박람회장에서 보호자와 헤어진 뒤 41일 만에 20㎞를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보호자 제공

‘레전드’는 단연 장장 4100㎞의 여정을 거쳐 집에 돌아온 미국의 ‘보비’가 아닐까 합니다. 보비는 1923년 가족들과 자동차 여행을 함께하던 중 인디애나주 올콧에서 길을 잃게 됩니다. 그런데 6개월 뒤인 1924년 2월, 지저분하고 앙상한 모습으로 가족들이 살고 있는 오리건주 실버톤의 집까지 돌아온 것인데요, 얼마나 험난한 여정을 거쳤던지 발톱이 모두 갈려 없었다고 합니다.

과연 이 개들은 어떻게 먼 거리에서 길을 잃지 않고 집까지 돌아올 수 있었을까요.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집에 대한 강한 귀소본능과 예민한 감각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또 전문가들은 개들이 실제 지도를 볼 수는 없지만, 내면에 ‘정신적인 지도’를 구축할 능력이 있다고 추정합니다. 먼저 뛰어난 후각능력을 활용해 냄새의 흔적을 따라 이동 방향을 잡고, 지형지물의 생김새 등 시각적 특징과 주변의 소리 등을 종합적인 단서로 활용해 최종 목적지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이렇게 감각을 활용할 때는, 최단 경로가 아닌 단서들을 쫓아 이동하게 됩니다.

다만 이러한 감각 단서들은 가까운 거리를 찾아갈 때는 유용할 수 있지만, 개들이 처음 방문한 장소나 먼 거리에서 집을 찾아가야 할 때는 효용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수십~수백㎞를 돌아온 백구와 보비, 손홍민은 어떻게 집을 찾았을까요. 놀랍게도 이런 상황에서 개들의 감각 영역은 좀 더 확장됩니다. 바로 지구의 자기장을 감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동물이 지구가 방출하는 자기장을 감지해 방향이나 고도, 위치를 파악하는 능력을 ‘자기수용’(Magnetoreception)이라고 부르는데요, 개뿐 아니라 철새나 연어, 바다거북, 고래와 같은 동물들이 먼 거리를 이동할 때 이 감각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떻게 생물들이 자기수용 감각을 지니게 되었는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주로 두 가지 메커니즘으로 설명이 됩니다. 하나는 동물의 세포 내에 극소량의 자성 물질이 있어서 지구의 자기장에 반응한다는 것이고요, 다른 하나는 망막의 단백질이 자기장의 변화에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설을 입증하듯 최근에는 사람의 눈에서도 자기수용이 가능한 단백질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2020년 체코 생명과학대 연구진은 사냥개 27마리에게 초소형 광각 캠코더와 위성추적장치를 부착한 뒤 3년 동안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 제공

일종의 내비게이션 능력을 탑재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개들의 내비게이션은 얼마나 뛰어날까요. 2020년 체코 생명과학대 연구진은 사냥개 27마리에게 초소형 광각 캠코더와 위성추적장치를 부착한 뒤 3년 동안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개들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울창한 숲에 데려간 뒤 어떻게 숲 밖의 보호자를 찾아오는지 600여 차례에 걸쳐 관찰한 것입니다.

실험 결과, 약 60%의 개들은 그들이 걸어들어온 발자국이나 냄새 같은 감각 단서들을 추적하면서 반려인에게 돌아갔지만, 나머지 40%의 개들에게서는 좀 더 흥미로운 행동이 관찰됐습니다. 자신이 있는 위치를 둘러본 뒤 보호자의 위치와 관계없이 남북 방향으로 20m쯤 달리다가 방향을 틀어서 최단거리로 보호자를 찾아간 것입니다. 마치 나침반이 남쪽과 북쪽을 감지하는 것처럼 방향을 파악한 뒤 목적지를 향해 달린 겁니다. 연구진은 개의 이러한 행동에 ‘나침반 달리기’(Compass run)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러한 사례·연구들을 종합하면, 개들이 감각 단서를 활용해 ‘정신적인 지도’를 구성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기수용 감각을 결합해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도 반려견 유실 사고는 꾸준히 일어납니다. 주로 개인 주택에 거주하는 서구권과 달리 우리나라는 아파트·빌라 등 비슷하게 생긴 공동주택이 많은 점 또한 개들이 집을 찾기 어려운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는 전단을 보거나 집을 찾지 못해서 길가를 배회하는 개를 보면, 보호자의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부디 잠깐의 실수로 소중한 반려견과 영원히 헤어지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연락처를 기재한 인식표를 착용하거나 동물등록을 마치는 등의 기본적인 노력도 부탁드립니다.

권혁호 수의사 hyeokhoeq@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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