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1위 천재교과서 퇴직 압박 논란…“거부하면 창고 발령에 폰 금지”
‘AI교과서’ 관련 경영실패 책임 전가 지적
교과서 시장 점유율 1위인 천재교과서가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퇴직을 거부하는 직원들을 물류 창고 등으로 배치하려 시도하고, 이를 거부한 이들에게 대기발령을 예고하며 휴대폰 사용이 금지된다고 압박한 것으로 확인됐다. 회사는 정부의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정책 변경에 따른 불가피한 조처라고 설명했지만, 경영 실패를 직원들에게 떠넘기며 무리한 방식으로 퇴직을 압박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천재교육 관계사인 천재교과서는 지난달 21일부터 대규모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내부에서는 전체 직원 1400여명 중 절반가량이 구조조정 대상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천재교과서 쪽은 “전체 인원의 18% 수준”이라고 밝혔다. 주로 온라인 학습 플랫폼 밀크티(T) 관련 부서 소속이다. 천재교과서는 천재교육 창업주 최용준 전 회장의 장남인 최정민 회장이 소유한 에이피컴퍼니의 자회사다.
회사 쪽은 인공지능 교과서 정책이 ‘전면 도입’에서 ‘자율 선택’으로 바뀌며 손실이 커졌고, 밀크티 부문도 학령인구 감소와 경쟁 심화로 실적이 나빠져 인력 감축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한다. 천재교과서 관계자는 “올해도 AI교과서 검정이 예정돼 있어 투자를 멈출 수 없는 상황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구조조정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천재교과서는 2024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71억원 줄은 118억원으로 여전히 흑자다. 그러나 인공지능 교과서 개발로 인한 차입금이 2023년 993억원에서 2024년 1425억원으로 증가했고, 밀크티 부문은 2024년 당기순손실이 204억원이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 회사 쪽 설명이다.
그러나 직원들은 코로나19 시기 비대면 교육 특수를 노리고 무리하게 키운 밀크티 부문을 축소하기 위해 인공지능 교과서 핑계를 대고 있다고 반발한다. 천재교과서 퇴직자 ㄱ씨는 “AI교과서와 관련한 정부 지침이 바뀌었다고 해도, 애초에 회사가 밀크티 부문에 무리한 투자를 한 것이 문제 아니냐”며 “그러고선 ‘연차를 많이 썼다’는 식의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사직을 권고했다”고 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회사의 강압적 태도도 논란이다. 복수의 천재교과서 전·현직자는 본부장 및 인사팀과의 면담에서 지난 4월11일까지 권고사직을 수용하지 않으면 각종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압박을 받았다고 했다. 퇴직자 ㄴ씨는 “무려 열 차례나 면담하는 과정에서 사직서를 내지 않으면 실업급여 같은 ‘보상’이 없을 것이라는 식의 말을 들었다”며 “회사에 남더라도 다른 직무에 배치될 것이기 때문에 향후 이직할 때 이력서에 기존 직무 경력을 쓰면 허위 사실 기재가 된다고 압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결국 상당수가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이를 거부한 직원은 물류창고, 인쇄공장 근무 및 판촉영업 등 기존 업무와 무관한 직무 배치 대상자가 됐다. 또한 근무지가 주거지와 멀리 배치돼있거나, 야간 근무 등을 포함하고 있어 받아들이기 어려운 직무였다. 직원 ㄷ씨는 “4시간 동안 진행된 직무 전환 교육에서는 ‘물류 업무 중 지게차에 치여 죽지 않게 조심하라’는 식의 이야기를 듣고, 이후 진행된 시험에서 일정 점수 이하를 받으면 인사 평가에 반영하겠다고도 했다”고 말했다.
또한 회사는 면담에서 직무 전환을 거부하면 대기발령 조처가 내려지고, 이 경우 피시(PC)와 휴대폰 사용이 금지된다고 안내했다. 관련 언론 보도가 나오자 회사는 “오해”라며 말을 바꿨지만, 지난 17일부터 대기 발령된 10여명의 직원들은 업무용 피시·전화를 지급받지 못했고, 근태 관련 경고가 누적되면 인사위원회에 회부된다는 공지 때문에 휴대폰 사용과 자리 이석도 자제하고 있다. 이들이 사내에서 대기 발령을 하고 있음에도 자택 대기에 해당하는 ‘평균임금의 70%’를 지급하겠다는 예고도 있었다.
이러한 회사 쪽의 대응은 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진솔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퇴사를 거부한 직원에게 불이익 조처를 예고하며 사실상 협박에 가까운 방식으로 사직을 종용했다면 부당해고에 해당할 수 있다”고 했다. 박정준 노무법인 약속 노무사는 “보복성 대기발령도 문제지만, 피시와 휴대폰도 사용하지 못한 채로 8시간씩 회사에 붙잡아 놓겠다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천재교과서 쪽은 “대기 시간 중 소란하게 하거나 잠을 자는 것 외에는 제재하고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한편 천재교과서에는 이날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그간 천재교과서에는 노조가 없어 직원들이 회사의 일방적인 구조조정 대상자 선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전국언론노조 천재교과서지부 설립준비위원회는 설립총회 개최 사실을 알리며 “조합원에 대한 불법적인 구조조정 시도를 중단시키기 위해 단체교섭을 요구한다. 현재의 폭력적인 대기발령과 사측에 의한 괴롭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고, 부당한 발령 등을 원상복구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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