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 마지막까지 국가폭력 희생자를 ‘부역자’로 매도하나

고경태 기자 2025. 4. 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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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9인 체제 마지막 전체위서 진도·영천사건 상정
1950년 9월 진도중학교 1학년생으로 경찰에 학살당한 허훈옥(당시 14살)의 동생 허경옥씨가 지난해 10월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진실화해위 국정감사에 참석해 진실규명이 보류된 것에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광동 위원장.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서 경찰의 사찰 기록을 이유로 2~3년째 보류됐던 한국전쟁기 진도·영천 사건 희생자들의 진실규명 안건이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마지막 전체위원회에 재상정된다. 사건을 조사한 진실화해위 조사1국은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불능’ 의견을 내어,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2일 진실화해위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날과 다음날 열리는 107차 전체위원회에는 지난해 3월12일 보류된 ‘진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진도 사건) 희생자 4명과 2023년 10월31일 보류된 ‘영천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영천 사건) 희생자 6명에 대한 진실규명 안건이 상정된다. 모두 한국전쟁기인 1950년 전후 군경에 의해 사망한 사건으로 유족들이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조사한 진실화해위 조사1국은 두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불능’ 의견을 냈다.

앞서 여당 추천 위원들은 두 사건 희생자들에 대한 과거 경찰 기록을 근거로 이들을 부역 혐의자로 보고 “민간인의 범위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도 사건의 경우 1969년 진도경찰서가 작성한 사찰기록 ‘대공’에 이들이 ‘암살대원’이라는 기록이 있고, 영천사건은 1979년 영천경찰서의 대공인적위해자조사표 처형자 명부에 ‘10.1 사건(대구항쟁)에 가담 살인·방화·약탈 등 좌익활동하다가 처형된 자’라는 기록이 있었다. 결국 여·야 추천 위원들간 공방 끝에 두 사건은 보류 조처됐다.

전임 김광동 위원장은 재임 기간 이들에 대한 재심의를 약속했으나 결국 퇴임 전까지 처리하지 못했다. 박선영 현 위원장 체제에서도 논의가 미뤄지다 9명 위원 체제의 맨 마지막 전체위에 안건으로 상정됐다.

경찰 자료의 신뢰성은 계속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1950년대 발생한 사건을 10~20여년이 지나고 반공을 국시로 한 독재정부 시절 경찰이 유족 사찰용으로 작성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진도 사건의 ‘암살대원’ 기록은 피해자가 사망한 지 19년 뒤에 작성됐고, 영천 사건의 ‘살인·방화·약탈’ 기록도 피해자가 사망한 지 29년 뒤 작성됐다. 진도경찰서 사찰기록에 암살대원이라며 19~20살로 기재된 이들의 실제 나이는 13~14살이었고, 영천경찰서 경찰 자료에는 9살짜리 아이가 ‘요인 암살·방화를 행위한 자’로 기록됐다.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두 차례나 위원들이 추천한 전문가 4명으로부터 ‘암살대원’이라는 경찰 기록에 대한 전문가 자문을 받았으나 “처형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사후 조작된 자료라고 판단된다”는 결과를 받았다. 여당 추천 쪽 전문가들도 실제 암살대원일 가능성에 대해 제대로 근거를 대지 못했다.

하지만 김광동 전 위원장과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사건을 총괄하는 이옥남 상임위원은 경찰 자료에 근거해 이들의 피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박 위원장 역시 비슷한 입장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체위를 앞두고 야당 추천 위원들 간에 의견이 엇갈린다. 이상훈 상임위원은 “이번에 진실규명이 어렵다면 조사중지로 결정해 3기 진실화해위로 넘기자”는 입장이고, 이상희 위원은 “이번에 표결해서 진실규명 여부를 가려보자”는 쪽이다. 일부 여당 추천 위원도 ‘조사 중지’ 쪽에 선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중지’로 결론이 날 경우, 5월 이후 ‘4명 체제 위원회’에서 논의할 필요 없이 새 정부에서 출범하는 3기 진실화해위로 넘어간다. 하지만 표결 끝에 진실 불능으로 결론이 나면 이후 구제 절차가 매우 까다로워질 수 있다.

진실화해위는 23일 5명 위원(이옥남·이상훈 상임위원과 차기환·이상희·오동석)이 퇴임하고, 4명의 위원이 남는다. 4명 중 박 위원장과 장영수·김웅기 위원은 대통령 지명 및 여당 추천 몫이고, 허상수 위원만 야당 추천이다. 진도·영천 사건이 4명 체제 위원회에 상정될 경우 진실규명이 어려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 ‘부역자’는 통상 1950년 인민군 점령기에 이들에게 협조한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진실화해위에서 ‘부역 혐의자’는 즉결처분 당한 희생자를, ‘부역자’는 법원 재판을 통해 부역 혐의가 확정된 주민을 가리켜왔다. 진실화해위는 2023년부터 부역자 처리지침을 만들기로 해 논란을 빚었다. 재판도 받지 못하고 즉결처분 당한 ‘부역 혐의자’ 중 누가 ‘부역자’인지 진실화해위가 판정해 진실규명 여부를 재검토하겠다는 뜻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좌익 전향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해 정부가 만든 관변단체다. 군경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들이 인민군에 동조할 것이라는 우려 속에 조직적으로 이들을 학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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