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져”
2024년 12월3일 계엄 이후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오기까지 123일 동안, 시민들은 광장을 지켰다. 수많은 시민들이 빠르게 연대할 수 있었던 건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 공지 덕분이었다. 비상행동은 매일 포스터 한 장 속에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집회 장소와 시간을 적어 안내하고 현장에서 무대와 행진을 이끌었다. 12·3 이후 비상행동이 서울에서 연 집회만 67회, 거리 행진은 60회에 달한다(4월5일 기준).
대통령 탄핵과 파면이 처음이 아니듯 비상행동 역시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비상행동의 뿌리는 2015년 9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시민단체들이 연대해 만들어진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자 탄압에 반발하며 함께 목소리를 내던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자연스럽게 2016년 11월 ‘박근혜 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이 됐다.
박근혜가 파면된 이후에는 적폐 청산 운동을 이어갔지만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결국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뒤인 2018년 5월 “문재인 정부의 개혁 100대 과제 중 진척되지 못한 과제는 39개로 농민과 빈민, 사회적 소수자 권리 보장 분야에 집중돼 있다”라고 비판하며 ‘민중공동행동’으로 조직을 전환하고, 2022년 1월에는 전국적인 조직으로 확대하며 ‘전국민중행동’으로 이름을 바꿨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윤석열정권 퇴진운동본부’와 ‘거부권을 거부하는 비상행동’ 등이 합쳐지며 2024년 12월11일, 지금의 비상행동이 출범했다.
비상행동과 함께하는 시민단체는 1700곳이 넘는다. 스펙트럼이 넓은 만큼 의견을 조율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름을 정하는 첫 단계부터 쉽지 않았다. 단기적으로는 윤석열 즉각 퇴진을, 장기적으로는 사회대개혁을 이뤄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최소의 원칙으로 최대의 연대를 한다’는 공감대 아래 혐오와 차별을 배제한다는 등의 간단한 룰이 생겼다.
비상행동 스태프는 각 단체에서 자원해 파견 온 활동가들로 꾸려졌다. 비상행동 후원 계좌 ‘카카오뱅크 7942-09-53862’의 예금주로 유명해진 심규협 사무국장과 ‘맛깔나는’ 선곡으로 이름을 날린 사회자 박민주 행진팀장도 원래는 한국진보연대 소속 활동가다. 심규협 사무국장은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때 자원봉사를 하다 활동가가 됐다. 1997년생 젊은 여성 박민주 팀장을 집회 사회자로 ‘발탁’한 것도 그다.
한국무용을 전공한, 타고난 성량과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가진 박민주 팀장은 회식이나 뒤풀이 자리에서 노래방을 가면 몇 시간 동안 혼자 열창하곤 했다. 사회자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는 2023년 3월부터 이태원 참사 추모 집회 행진 차량에 올라 사회를 봤다. 스스로 부족한 점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연습을 반복했다. 윤석열 정부의 거듭된 실책이 활동가들을 미리 단련시킨 셈이다.
그럼에도 한겨울의 넉 달은 혹독했다. “계엄도 봄에나 하지”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크고 작은 집회가 이틀에 한 번꼴로 열렸다.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토요일에는 심규협 국장을 비롯한 현장 스태프들이 새벽 4~5시에 출근했다. 사회자인 박민주 팀장은 퇴근한 뒤 금요일 밤부터 밤새 대본을 적었다. 초반에는 시나리오별로 준비하느라 열 장 넘게 준비했던 대본이 점차 집회 형식이 체계적으로 짜여가면서 이제는 다섯 장 남짓이다. 저녁에 집회를 끝내고 무대 철거, 뒷정리까지 하면 자정이 가까워진다.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현장을 지킨 심 국장은 뒤풀이 자리에서 매번 저녁도 채 다 먹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았다.
EDM이 울려 퍼지는 집회
집회가 없는 날에는 두 사람 모두 집회를 연구했다. ‘신나는 집회’가 열리면 좋겠다는 요구가 많았다. 연대하는 단체에서도 ‘사람들의 호응이 식은 지 오래됐다’ ‘피로감이 높다’는 의견을 자주 전달해줬다. 고 채 상병 사건이나 이태원 참사처럼 무거운 의제도 있기 때문에 마냥 모든 순간을 즐겁게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사람들이 호응할 요소를 넣기 위해 고심했다.
분위기를 띄우는 데 효과가 좋은 건 역시 노래였다. 어떻게 하면 입에 착 감기는 가사로 바꿀 수 있을지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다. 누군가 “가사 이렇게 하면 어때요?” 하고 제안하면 박민주 팀장이 즉석에서 휴대전화로 녹음해 음원을 만들었다. “거의 매주 신곡을 발표했다.” 박 팀장이 웃었다.
지난 넉 달 동안 사회자이자 행진팀장이자 작사가이자 연출가로 동분서주했던 그의 최고 ‘히트작’은 걸그룹 에스파의 노래 ‘위플래시’가 울려 퍼지던 순간이다.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서 어린이 EDM(전자음악) 체조 노래, 진짜 클럽에서 틀어줄 것 같은 노래, 자라 같은 패션 브랜드 매장에서 나올 것 같은 노래 등 여러 곡을 배치했는데 그중 하나가 위플래시였다. 사실 위플래시는 이전에 ‘거부권을 거부하는 비상행동’ 집회에서도 틀었던 노래인데, 그때는 아무래도 참여자 대다수가 중장년층이다 보니 별 호응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탄핵 집회에서는 노래를 틀자마자 2001년생인 비상행동 사무국 막내부터 손뼉을 치며 너무 좋아했다. 다만 그렇게 분위기가 방방 뜰 때도 탄핵에 대한 절박함이 묻히지 않도록 더 촘촘하게 멘트를 준비했다.”
그를 사회자로 추천한 심규협 국장은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12월7일 여의도에 처음으로 100만명이 모였다. 그런데 탄핵소추안 의결이 통과되지 못했다. 낙담해 있는데 오히려 시민들이 다 함께 ‘위플래시’를 부르더라. 각자 휴대전화 화면에 ‘내가 아이돌 누구 팬인데 이 노래 좀 틀어달라’는 문구를 띄워 어필하면 중계 화면이 그걸 캐치하고 바로 그 노래를 틀어주기도 했다. 분노도 재미있게, 다이내믹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실망스러운 순간에도 시민들이 좌절하는 대신 서로 소통하면서 탄핵의 장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순간 그는 확신했다. “우리 절대 안 질 것 같아. 이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져.”
이전 집회와 다른 점은 응원봉과 케이팝뿐만이 아니었다. 비상행동에서 무대 위 발언을 기록한 임민경 활동가(한국여성노동자회)는 시민들의 발언에서도 확실히 이전과 차이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때는 서로 깃발 내리라는 말을 많이 했다. 정치적 의도가 없는 ‘순수한’ 시민임을 어필해야 하니까.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에는 사람들이 직접 깃발을 만들어 오기 시작했다. 2024년 윤석열 탄핵 응원봉 집회에는 사람들이 수많은 깃발을 가지고 나온 건 물론이고 정치적 발언도 거리낌 없었다.”
‘순수하지 않은’ 시민들의 광장
임민경 활동가는 2024년 12월21일 남태령 집회 이후 생긴 ‘광장의 문법’을 설명했다. “발언자가 무대 위에 올라오면 자신의 정체성, 이를테면 성소수자라거나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소개한다. 그 정체성에 관련된 의제를 이야기하며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는 또 이 문법이 바뀌었다. 자기 정체성을 밝히는 건 똑같은데, 그것과 상관없는 의제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성소수자이지만 장애인 이동권에 관심이 많다, 모두 장애인 이동권에 관심을 좀 가져달라’고 말하는 식이다. 비록 나와 먼 일일지라도 서로 연대해야 한다는 걸 굉장히 중요하고 값지게 생각하고 있었다.” 무대 아래에서 시민들의 발언을 듣고 기록하던 그도 확신했다. “파시즘이라는 게 정말 올 수도 있겠지만, 그 파시즘에 맞설 희망이 이 사람들이구나.”
광장에 더 이상 ‘순수한’ 시민은 없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내려진 계엄령을 통해 이미 크든 작든 자신의 삶이 정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각성한 시민들은 어떤 세상을 원하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비상행동에서 엑스(X·옛 트위터) 계정을 관리하는 한 활동가도 깜짝 놀랐다. “덕질부터 시작해서 오랫동안 엑스를 해왔지만 이렇게까지 모든 사람들이, 매일매일, 정치 얘기만 하는 건 처음 봤다. 탄핵 인용 직후부터 곧바로 잡다한 이슈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으로 돌아갔지만(웃음).”
시민들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기록한 임민경 활동가는 앞으로도 시민들이 지치거나 실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광장에서 나온 시민들의 목소리를 정치권에 전달하고, 정책과 제도로 연결시키는 과정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꼭 눈에 보이는 성과가 전부는 아니다. 2008년 집회와 2016년 집회가 달랐듯이, 2016년 집회와 2024년 집회는 또 달랐다.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왔던 경험, 이토록 강렬한 연대를 경험한 이 기억은 어디로 사라지는 게 아니다.”
윤석열이 파면되고 나흘이 지난 4월8일, 비상행동은 이름에서 ‘윤석열 즉각퇴진’ 대신 ‘내란청산’을 넣었다. 박근혜를 탄핵시킨 이후 적폐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 때문이다. 심규협 국장이 말했다. “정권만 바뀌면 알아서 잘하리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파면 이후 광장이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시민들이 끝까지 광장을 놓아서는 안 된다. 광장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비상행동은 4월19일 4·19 혁명 65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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