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통상협의 D-2…“서두르면 손해, 제조업 무기로 양보 얻어내야”
한국과 미국의 경제·통상 담당 수장들이 24일 미국 워싱턴에서 ‘2+2 고위급 통상 협의’에 나선다. 상호관세 등을 둘러싼 밀고 당기기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한겨레는 최근 역대 정부에서 통상 문제를 책임진 전직 통상교섭본부장들과 잇따라 대면·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은 대화에는 성실히 임하되 협상을 서두르지 말 것과 받을 것은 받아낸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시간은 트럼프가 아닌 우리 편…서두르지 말아야”
전직 통상교섭본부장들은 협상이나 협상 타결을 서두르는 것은 패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랜 통상 관료 경험을 지닌 여한구 전 본부장(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국 및 국내 상황을 볼 때 서두를 경우 우리의 협상력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여 전 본부장은 “사안 하나하나가 향후 수년간 정치, 경제, 재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새 정부에서 타결을 목표로 하는 게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 정부의 대미 접촉을 협상팀이 “본협상을 위한 준비 단계 정도”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속도전을 강조하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는 온도 차를 보이고 있는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태도와 일맥상통하는 시각이다.
이런 인식은 세계를 상대로 ‘관세 전쟁’을 벌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을 상대로 급하게 성과를 내려는 상황에 잘못 휘말리면 국익을 해치고 국내적 논란이 커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2012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마무리와 발효를 관장한 박태호 전 본부장(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도 유사한 의견을 내놨다. 박 전 본부장은 “현 정부에서 협상해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행 부담은 다음 정부가 져야 한다”며 “우리가 빨리 하자고 하면 오히려 우리의 협상 스탠스가 약해진다”고 지적했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이끈 유명희 전 본부장(서울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도 “협상 방향, 결과, 내용에 대한 국민적 컨센서스(합의)가 없으면 협상하는 사람들은 훨씬 더 큰 부담을 지게 된다. 결과에 대해서도 대내 설득과 국회 비준 등에 엄청난 에너지를 써야 한다”며 ‘대행 체제’의 한계를 짚었다.
방어적 차원뿐 아니라, 금융시장 등에서 역풍을 만난 트럼프 행정부가 처한 상황을 이용하기 위해서라도 시간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여 전 본부장은 “미국 정치 상황을 보면 트럼프가 굉장히 몰리고 있다”며 “관세 유예 기간을 90일이라고 했기 때문에 데드라인(기한)에 가까워질수록 트럼프의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원하는 관세 철폐를 일거에 이루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진단도 나왔다. 최근 워싱턴을 다녀온 박 전 본부장은 “트럼프 쪽은 이번 전략을 하루아침에 만든 게 아니다”라며, 미국은 각국과 협상을 거치면서 상호관세를 없애거나 다시 유예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에 부과한 기본관세 10%는 유지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동차·철강 등에 매긴 25% 품목별 관세도 오래갈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한국의 경우 미국이 산정한 상호관세율 25%에 기본관세 명목의 10%가 포함돼 있다.
“때론 무엇을 받아낼지도 고민해야”
전직 통상 수장들은 방어적 태도에 그치지 말고 받을 것은 받아낸다는 태도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여 전 본부장은 “다른 나라들도 다 관세를 맞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보다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면 성공한 협상이 된다”고 했다. 또 군함 등 선박의 나라 밖 건조를 금지하는 미국 법령의 적용 예외 등을 얻어내는 것도 추진할 만하다고 조언했다. 유 전 본부장은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와 반도체(관세 부과를 위한 조사 진행 중) 등에 대한 품목별 관세도 의제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제조업 협력을 하기에 우리만큼 좋은 상대가 없다”며 ‘제조업 부활’을 외치는 트럼프 행정부에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무기로 협력 강화와 양보를 얻어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들은 미국의 관세정책 방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며 경험에 기반한 조언도 했다. 유 전 본부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 협상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면서, 당시 트럼프가 중간선거를 앞두고 중국·멕시코·캐나다 등과 벌인 무역 갈등이 해결되지 않아 고전하던 중 한국의 제안이 효과를 배가시키며 적절한 시점에 타결됐다고 설명했다.
여 전 본부장은 “일본이 어떻게 하는지를 참조해야 한다. 일본은 우리보다 더 준비된 상태”라며 “한·일은 자동차와 철강 등의 품목별 관세 부과 피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사업 참여 검토, 안보 문제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박 전 본부장은 과거 한-미 자유무역협정 국회 비준 뒤에도 미국은 이행 협의 과정에서 하나라도 더 얻어내려고 해 시간이 두달 걸렸다며 “미국 쪽은 아주 집요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겉으로는 미국 소비자 쪽 영향력이 커 보이지만 협상 단계에서는 생산자 단체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력하다는 점이 드러난다고도 덧붙였다.
24일 2+2 회담 시작…기재부 “의제 확정 아직 안 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21일 최상목 부총리와 안덕근 산업부 장관이 24일 밤 9시(한국시각)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 및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2+2’ 회담을 한다고 밝혔다. 이날 강영규 기재부 대변인은 “(회담) 의제가 확정이 됐는지 모르겠다”며 아직 한-미 간 의견 조율 중임을 밝혔다. 그는 “주요 주제가 통상인데 (어떤 의제를 올릴지) 미국 쪽의 시각이 있을 거고 저희가 생각하는 시각이 있을 거다. 지금 상호 간에 의견을 조율하며 얘기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본영 선임기자, 박종오 기자,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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