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열의 요산요설(樂山樂說)] 24. 어명(御命)을 받은 소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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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명(御命)이요." 서울 도성의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이 불에 타 전소된 지난 2008년 12월 10일,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준경묘역의 산에서 한 목수가 도끼로 아름드리 소나무 밑동을 찍으면서 "어명이요"를 세 번 외쳤다.
앞서 그해 2월 숭례문이 불타는 사상 최악의 변고를 당하자,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전국을 돌며 복원에 사용할 소나무를 수소문하고 찾아다니다가 이곳 준경묘역의 소나무를 낙점, 20그루 벌채 작업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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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명(御命)이요.” 서울 도성의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이 불에 타 전소된 지난 2008년 12월 10일,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준경묘역의 산에서 한 목수가 도끼로 아름드리 소나무 밑동을 찍으면서 “어명이요”를 세 번 외쳤다. 이날 목수가 베어 넘긴 소나무는 숭례문 복원에 사용될 토종 금강소나무였다. 앞서 그해 2월 숭례문이 불타는 사상 최악의 변고를 당하자,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전국을 돌며 복원에 사용할 소나무를 수소문하고 찾아다니다가 이곳 준경묘역의 소나무를 낙점, 20그루 벌채 작업을 진행했다. 준경묘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祖)인 ‘양무장군(陽武將軍)’의 묘소로, 500년 조선 왕조 창업 스토리를 품고 있는 길지(吉地)이니, 역사적 인연도 안성맞춤이었다.
산신제와 고유제를 지내는 등 옛 격식에 따라 까다롭게 진행된 이날 벌채 작업에서 가장 주목을 끈 것은 도끼로 소나무 밑동을 세 번 내려치면서 어명이라는 것을 외치는 것이었다. 현장의 대목수들은 이에 대해 “100년 이상을 산 소나무는 영물로 보기 때문에 나무를 베는 것을 목수들이 두려워하고, 꺼리게 되므로 임금의 명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베게 됐다는 것을 알리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삼가고 조심하면서 자연에 대한 경외의식을 가다듬는 일종의 주술 행위인 셈이다.
도끼질이 끝나면 톱을 든 목수가 나서는데, 톱을 들고 나무를 베어 넘기는 목수야말로 정말 기가 센 사람이라고 한다. 나무를 다루는 목수가 ‘이 큰 나무를 어떻게 베나’ 하는 식으로 처음부터 주눅 들어 버리면 산판의 큰 벌목 행사, 특히 궁궐용 목재 벌채는 진행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기가 센 목수가 나무를 완전히 제압해 베어 넘기는 방식으로 벌목이 이뤄지는 것이다.
금강송 산지로 유명한 동해안에는 이렇게 어명을 받은 숲과 소나무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소나무의 누런 속살을 창자에 비유해 ‘황장목(黃腸木)’이라고 부르고, 금표(禁標)를 세워 함부로 베는 것을 막았다.
강릉시 성산면 대공산성 일원 등산로에 있는 ‘어명정(御命亭)’은 이름 자체에 ‘어명’이 들어있어 더욱 이채롭다. 2007년 광화문 복원에 사용할 금강송을 베어낸 자리에 세운 정자인데, 주변에 어린 소나무를 심어 후계송을 키우려는 정성도 더했다.
어명을 받은 소나무들은 전통 건축물의 핵심 소재로 다시 천년을 산다. 송진이 가득 차 비를 맞아도 썩지 않고, 단단하기가 비할 데 없는 최고의 목재이다. 산불에 취약하다고 하지만, 소나무가 있어 우리 산이 사철 푸른 것도 더없이 고마운 일이다. 최동열 강릉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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