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분산시킬 때인가, 집중시킬 때인가 [왜냐면]

한겨레 2025. 4. 2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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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회의장 모습. 연합뉴스

이성로 | 국립경국대(옛 안동대) 명예교수

윤석열이 파면되자 개헌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개헌문제는 정국의 향방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장래가 걸린 중대한 문제로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중대한 문제다. 만일 개헌을 한다면 개헌의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하고 시작해야 할 것이다. 섣부른 개헌은 환자의 병을 잘못 진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멀쩡한 사람만 잡을 것이다.

우리는 냉철하게 물어야 한다. 윤석열이 대통령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파면당한 것이, 그래서 조기 대선을 다시 치러야만 하는 것이 권력 집중의 결과인가? 그것이 헌법을 잘못 만들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헌법이 더 이상 현실에 맞지 않아서인가? 대통령 중심제를 폐기하고 권력분산을 목표로 하는 법과 제도를 추진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까? 혹시 자질이 안 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사람들과 선거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최근의 개헌론은 권력분산론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는 대통령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평가받는 지나친 권력 집중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권력 집중을 유지함으로써 얻는 이득은 그렇지 않을 경우보다 수십배 크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권력분산론은 과거 절대군주시대 봉건영주와 절대군주의 속박과 억압, 권력남용으로부터 시민의 생명과 재산, 자유를 지키기 위한 자유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자유주의는 사회계약론, 천부인권론, 법치주의, 시장경제론 등과 같은 자유민주사회의 이상을 실현하는 중요한 가치다. 이처럼 자유주의는 봉건주의와 투쟁 과정에서 인간의 자유를 확대하고 숭고한 박애 정신을 높이는 혁명적 진보적 역할과 기능을 하였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자유주의는 인간사회를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원리가 작용하는 정글로 만들었다. 자유주의는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와 맞물려 자유 경쟁의 원리, 계약 자유의 원리, 기업 자유의 원칙 등 자유주의 가치의 극대화로 말미암아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세계적 규모의 전쟁, 경제 불평등, 노동 착취, 아동 노동, 인권 유린, 계급 투쟁, 사회 분열과 갈등 같은, 인류에게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현재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여 중앙집권적 국가를 해체하자는 주장, 즉 권력분산을 위한 개헌론은 세 갈래 방향에서 진행되고 있다. 먼저 의원내각제 개헌안은 대통령직을 없애는 것으로 권력자를 아예 제거하는 것이다. 내각제는 본디 민주주의 실현에는 매우 좋은 제도로 알려져 있으나 우리 국민은 자신이 직접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대통령제를 선호한다. 왜냐하면 의원들끼리 행정부를 구성하는 내각제를 의회 파벌들이 국가권력을 나누어 먹고 기득권층의 이익에 봉사하는 제도라고 인식하기 때문인데,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 결과 의원내각제를 향한 개헌 논의는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우리 국민은 최근 일본과 영국이 2급 경제국가로 뒤처지는 이유가 의원내각제 때문이라는 것을 직감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로,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나누는 이원집정부제 개헌안은 행정의 통일성과 일관성이라는 관점에서 매우 위험한 제도다. 우리는 이번 윤석열 탄핵정국에서 헌법기관끼리 또 국가기관끼리 충돌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중대한 교훈을 얻었다. 탐욕스럽고 어리석은 자들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을 때, 국가는 혼란에 빠질 수 있으며 이는 전쟁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을. 대통령과 총리가 상호견제하여 권력의 독점과 남용을 막으라는 이원집정부제가 잘못하면 헌법기관끼리의 충돌을 장려 권유하는 제도로 변질될 수 있다.

세번째로, 지방분권을 통한 권력분산이다. 중앙정부 권력을 지방에 이양함으로써 중앙권력을 약화시키고 이를 통해 대통령의 권력을 약화시키려는 것이 지방분권 개헌론의 주요 취지다. 가장 최근에는 문재인 정부가 “명실상부한 지방분권을 위해 지방분권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실현되지 못했다. 당시 헌법 개정안은 지방분권을 추구하기 위하여 현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의회로 격상시키고 입법권을 부여하고, 재정권을 강화하여 스위스 같은 연방국가를 모델로 최소한 준연방제를 실시하며 지방자치를 강화하려고 했다. 지방분권은 지방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화하고 행정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며 분권화에 의한 능률 향상을 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국가적 통일성과 국민들 간의 평등성을 위협하고 부패를 조장하며 지나친 분권에 의한 비능률을 초래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 지방의회의 조례 제정권을 행정입법이 아닌 법률에 준하는 자주입법으로 주장하는 것은 군 단위에까지 형식적 입법권을 인정하는 분권을 하자는 것으로 신봉건제를 채택하여 국가를 해체하자는 주장이나 다름없다고 할 것이다.

6·3 조기 대선 후 들어설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경제성장과 함께 사회개혁을 빼놓을 수 없다. 다음 정부는 각종 특권 세력과 이권 카르텔에 의해 포획된 정치권과 정부를 과감하고 신속하게 개혁해야 하는데 중앙에 강력한 정치 리더십이 없이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겠는가. 기존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극복하고 그동안 소외되었던 새로운 사회 세력에게 권리와 자원을 재분배해야 하는데, 이것은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 없이 가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부 민주당 주자가 주장하고 있는 균형발전도 마찬가지다. 현재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소득과 자원을 지방으로 이전 재분배하자는 것인데, 중앙정부의 강력한 힘이 뒷받침 안 되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권력분산론은 기본적으로 개인주의와 자본주의 경제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를 기초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이런 사회는 문자 그대로 원심력을 지배적 사회관계 원리로 채택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촉발된 내란사태로 극심한 혼란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평화와 안정이다. 최근 더욱 악화된 남북관계, 동서 지역 간 분열과 갈등은 중앙집권정부를 더욱 필요로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네 강대국의 갈등이 극심한 상황에서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위기에 대처하고 난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사회안정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권력을 제한하는 개헌이 아니라 비례대표제 확대와 중대선거구제 도입이 더 적절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것은 선거법만 개정하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병을 고치는 것은 정확한 진단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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