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우승 놓쳤지만 값진 윤이나의 영어 인터뷰
[골프한국] 비영어권 선수들에게 LPGA투어의 가장 높은 장벽을 꼽자면 단연 영어다. 어릴 때부터 외국에서 활동해 온 선수라면 LPGA투어에서도 쉽게 뿌리를 내리지만 국내에서만 활동하다 미국으로 건너간 선수들 상당수가 영어 장벽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어릴 때부터 영어를 기본으로 배우는 유럽 출신의 선수들도 정작 LPGA투어에 와서는 영어 공포증을 토로한다.
살아있는 골프여제 아니카 소렌스탐이 좋은 예다. 그는 애리조나 대학을 나오고 NCAA(미국대학스포츠협회) 대회에서 2번이나 우승했는데도 LPGA투어를 뛰면서 경기 후 미디어와의 인터뷰가 늘 걱정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선두로 나가다가 우승 인터뷰가 신경 쓰여 경기에 집중하지 못해 우승을 놓친 적이 있다고도 했다.
일부 선수들은 뛰어난 기량을 갖추고도 영어의 장벽을 넘지 못해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선수 중에도 LPGA투어에 진출하자마자 뛰어난 기량으로 우승을 챙기며 잘 나가다 영어 소통 부재로 LPGA라는 커뮤니티에 녹아들지 못하고 결국 최하위권으로 추락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LPGA투어로 건너가 얼마 지나지 않아 용기 있게 서툰 영어로 인터뷰에 응한 장하나나 김세영의 배짱은 평가할 만하다.
골프는 철저하게 '소통의 경기(Game of Communication)'다. 자신의 생체리듬, 클럽, 골프 코스, 기상 조건 등과의 소통은 물론 캐디나 동반 경기자, 갤러리들과의 소통이 원활해야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 이중 언어가 지배하는 영역이 캐디, 동반자, 미디어, 갤러리들과의 소통이다. 이 영역에서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 경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캐디뿐만 아니라 동반자나 갤러리, 미디어와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면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자신 있는 경기를 펼치기 어렵다.
코로나 사태로 2020년 12월에 열린 US여자오픈에서 깜짝 우승한 김아림의 영어 도전 뒷얘기는 유명하다. 타임즈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티브 유뱅크스(Steve Eubanks)는 김아림을 소재로 'FANS IN FOR A TREAT WITH "MISCHIEVOUS" DEFENDING CHAMPION'이란 제목의 칼럼을 LPGA 홈페이지에 올렸다. 번역하면 '장난꾸러기 디펜딩 챔피언과 함께한 운 좋은 팬들'이 될 것 같다.
유뱅크스는 김아림이 2020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할 때 코로나19로 얼굴을 가린 채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고, 알려진 것도 없었으나 6개월 후 변한 모습을 전했다. 김아림과 대화를 시작하면 그에게 빨려들게 된다며 그의 떨리는 표정은 지금까지 사귄 어떤 새로운 친구처럼 초조해하면서도 진지하다고 표현했다. 그가 깨진 스프링클러처럼 내뱉는 영어 단어 중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3분의 1정도지만 적절한 동작을 곁들여 눈썹을 치켜올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짓는 그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유뱅크스는 김아림이 "영어 실력이 충분하다면 모두에게 농담할 수 있지만 아직 그렇게 못한다. 지금은 이것이 나의 한계"라는 고백을 소개하며 "그러나 놀랍게도 나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많은 선수들이 나를 너무 잘 대해줘 감동받았다, 나도 그렇게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김아림의 말을 전했다.
이런 적극적인 자세 덕분에 지금 김아림은 미디어와 골프 팬들과 막힘없이 소통하며 멋진 퍼포먼스를 뽐내는 LPGA의 매력덩어리로 자리잡았다.
윤이나가 21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엘 카발레로CC(파72·6,679야드)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 타수를 줄이지 못하고 최종합계 14언더파 274타로 넬리 코타와 함께 공동 16위를 했다.
윤이나와 같은 조로 엮인 스웨덴의 잉그리드 린드블라드가 최종합계 21언더파 267타로 일본의 이와이 아키에를 1타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우승 준우승을 모두 신인들이 차지해 거센 신인 열풍을 보여주었다.
공동 선두 이와이 아키에, 로런 코글린, 린드블라드와 2타차 4위로 데뷔 첫승의 기대를 갖고 마지막 라운드를 맞은 윤이나는 긴장 탓인지 타수를 잃고 공동 16위로 내려앉았다. 그나마 올 시즌 가장 좋은 성적이다. 한국선수로는 고진영이 17언더파로 공동7위, 임진희(15언더파)가 공동 11위, 이정은5(13언더파)가 공동 20위에 올랐다.
윤이나는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의미있는 도전을 했다. 영어 인터뷰다. 윤이나는 3라운드를 끝내고 짧은 필드 인터뷰를 한 뒤 인터뷰룸에서 공식 인터뷰도 소화했다. 유창하진 않았지만 미소를 잃지 않고 서툰 영어로 성의껏 인터뷰에 응했다. 통역자가 없으면 인터뷰 자리를 피하던 선수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LPGA투어에서 성공을 거두겠다는 그의 의지와 용기의 발로로 읽힌다. 서툰 영어로 인터뷰에 나서는 용기와 배짱을 잃지 않는다면 윤이나의 LPGA투어 첫승도 머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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