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김혜자의 '천국보다 아름다운' 품격

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2025. 4. 21.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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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사진제공=스튜디오피닉스, SLL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잖아요."

'국민 엄마' 김혜자가 처음으로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1941년생, 올해 84세라는 나이를 고려할 때 "무리가 아니다"라고 느낄 수 있지만, 시대의 아이콘과 같은 김혜자의 말 한마디의 울림을 컸다. 

김혜자의 차기작은 JTBC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이다. 그에게 5년 전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안긴 드라마인 '눈이 부시게' 제작진이 다시 의기투합하며 김혜자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그 사이 노희경 작가의 작품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했지만, 옴니버스 형태를 띤 이 작품의 출연 분량이 많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할 때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타이틀롤을 맡은 그에게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다.

지난 19일 '천국보다 아름다운'이 포문을 연 후, '김혜자의 말이 이해가 된다'는 반응이 적잖다. 죽음 후 삶, 천국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김혜자의, 김혜자를 위한, 김혜자에 의한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사진출처=방송 영상 캡처

그는 지난 18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천국보다 아름다운' 제작발표회에서 "어쩌면 이게…실제적으로도, 나이나 모든 걸 생각하면 저의 마지막 작품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더 감사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김혜자가 물리적 나이를 고려해 이런 말을 꺼낸 것이 아니라는 인상이 강하다. 모든 예술인은 화룡점정을 찍길 원한다. 그리고 평생 연기밥을 먹고 사는 김혜자는 본능적으로 이 작품이 자신의 커리어의 마침표를 찍을 만한 의미와 재미를 가진 작품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혜자는 '소녀 같다'는 평을 자주 받는다. 육체적 나이를 먹을지언정 그의 감성 만큼은 나이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김혜자의 연기톤은 이번 작품에서도 유효하다.

심지어 이 작품에서 김혜자가 연기하는 해숙의 직업은 '일수 할머니'다. 큰 돈을 빌려주는 것도 아니다. 30만 원 안팎을 빌려주고 그 이자를 받으러 매일 같이 돈빌린 사람들을 찾아 다닌다. 손가락질 받기 일쑤고, 물과 쓰레기를 던지는 이들에게 수모를 당하지만 굴하지 않는다. 하반신 마비로 움직일 수 없어 그가 평생 건사해야 하는 남편이 있기 때문이다. 오물이 날아올 곳을 미리 알아채고 우산을 촥 펴는 해숙의 모습은 자연스러운 웃음을 이끌어낸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죽음을 다룬 작품이다. 하지만 결국 어둡지 않다. 몸이 아픈 남편보다 하루라도 더 살길 바라는 그는 남편을 떠나 보낸 후에는 덤덤하게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한다. 삶의 이유였던 남편이 이승에 없다면, 자신도 삶을 고집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진출처=방송 영상 캡처

배우로서 김혜자가 보여주는 진가는 해숙이 죽은 뒤 드러났다. 그는 긴 열차를 타고 저승으로 향한다. 지옥역에서는 살아 생전 악행을 저지른 이들이 문 밖으로 끌려나갔다. 해숙은 질끈 눈을 감는다. 일수업을 하면서 많은 이들을 괴롭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생 누구에게 싫은 소리 한번 안 한 낙준은 천국에 있는 것이 뻔하기 때문에 재회를 위해서 지옥행을 피해야 하는 해숙의 절박함은 김혜자의 연기를 통해 효과적으로 구현된다.

죽은 후에도 80대의 모습을 유지하겠다는 선택을 하는 해숙의 모습도 김혜자 특유의 해사한 연기와 맞물려 설득력을 얻는다. 천국에서는 원하는 나잇대의 모습으로 살게 해준다. 대부분은 20∼30대를 택한다. 하지만 해숙은 달랐다. 왜일까? "하루하루 정이 쌓여 지금이 가장 이쁘다"는 남편의 마지막 말을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소녀 같은 감성의 표정은 김혜자이기에 가능했다. 

정작 먼저 천국에 가 있던 낙준은 30대의 얼굴로 돌아가 있는 것을 보고 당황하는 김혜자의 표정은 일품이다. 젊은 남편의 모습에 속앓이하면서 "이럴 바엔 차라리 지옥이 나았겠다, 이 나쁜 자식아!"라고 외치는 장면에서는 저항없이 웃음이 터진다. 아울러 80대 해숙의 모습에 당황하는 배우 손석구의 연기 역시 모자람이 없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이제 2회까지 마쳤다. 벌써 전국 시청률 6%대를 기록했다. 그런데 첫 단추를 참 잘 뀄다. 해숙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단 1회 만에 정리하고 2회부터는 파란만장한 천국 생활을 펼쳐 놓았다. 천국이라는 공간을 대단한 터치로 표현한 것은 아니지만 동화같은 배경과 설정에 이질감은 없다.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이면의 이야기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사진출처=방송 영상 캡처 

이에 대해 김혜자는 "인간사의 아름다움을 그린 작품"이라며 "낙준과의 끊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인연, 현실에 없을 것 같은 그런 아름다움 때문에 이 작품을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혜자는 천생 배우다. 연기밖에 몰라 가정 주부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을 두고 여러 방송에 나와 가족들에게 미안해하기도 했다. 그런 그는 이번에도 "저는 하고픈 게 연기밖에 없고 관심도 연기밖에 없다. 그냥 이거밖에 모른다. 다른 거 하라고 하면 아주 빵점이다. 연기하는 게 좋고 행복하다"고 연기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리고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김혜자의 애정이 작품을 어떻게 고양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제 막 뚜껑이 열렸지만, 그 뚜껑 사이로 새나오는 풍미가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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