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물 많고 지대 낮아, 이름부터 ‘다리 건너는’ 마을

심규호 2025. 4. 21. 08:3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심규호의 제주 마을 이야기] 큰 교래리 ①

제주의 진가는 멋진 관광지에만 있지 않다. 중산간부터 바닷가까지 긴 세월에 걸쳐 주민들이 뿌리 내리며 살고 있는 곳, 바로 마을에서 더욱 멋진 제주를 만날 수 있다. 2025년 새해를 맞아 심규호 중국학회회장이 신발 끈을 질끈 묶고 제주 마을로 향한다. 심규호 회장이 들려주는 흥미로운 마을 이야기를 [제주의소리]를 통해 만나보자. [편집자 주] 

천연 다리

다리는 우리 몸을 지탱하고 걷거나 뛰는 부분이다. 다리가 없으면 서지 못하고, 움직일 수 없다. 하여 걸어서 건널 수 없는 곳, 예컨대 내나 계곡에는 다리를 놓아 걸을 수 있도록 만든다. 물을 건널 수 있는 구조물, 그것을 일러 다리라고 함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교래리橋來里를 한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다리 건너오는 마을이란 뜻이다. 교리橋里라고 불렀다고도 하는데, 이 역시 다리가 있는 동네임을 말해준다. 다리가 있는 동네가 그곳만이 아닐 터인데, 어찌하여 하고 많은 이름 중에 '다리'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포리수 안내판 / 사진=심규호

다리가 있다는 것은 내나 물, 계곡이 있다는 뜻이다. 교래에는 물이 많다. 물이 많다는 것은 비가 많다는 소리이자 길고 깊은 내가 있다는 뜻이다. 그 내를 일러 천미천川尾川이라고 한다. 전체 길이 28.98㎞, 교래리 한라산 동쪽 흙붉은오름과 성널오름 사이 협곡에서 발원해 교래리를 관통하고 구좌읍 송당리, 표선면 성읍리를 거쳐 하천리로 흘러 바다로 간다. 사행천蛇行川이라 미尾를 쓴 걸까? 한자명을 몰랐을 때 처음 떠올린 한자는 泉美川이었다. 교래리 마을회관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에 '포리수'를 보았을 때도 그러했다. 파란 물, 얼마나 맑고 고우면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예로부터 마을주민이 음용하던 봉천수라고 했다. 가고 싶었다. 찾아가다 끝내 가지 못했다. 그리고 나중엔 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2급수가 되었다는 포리수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시 갈 날이 올 것이다.

제주의 하천은 마른 내이다. 하지만 폭우로 대지가 흡수할 수 있는 양이 넘으면 콸콸 소리치며 흐른다. 흐르다 폭포를 이루기도 하고, 하상河床 너머 땅으로 넘실대기도 한다. 이를 내창이 터졌다고 한다. 내창이 터지면 위험하기도 하지만 장관을 이룬다. 내 눈에 익숙치 않은 것을 보면 그러하듯. 

그 옛날부터 교래리는 비가 많고 지대가 낮아 넘실거리는 물이 길마다 진창을 만들었다. 교래리는 제주목에서 정의현으로 가는 길목, '산장구마'를 위한 객사가 있던 곳이다. 다행 크고 평평한 빌레(궤, 용암석교, 대략 1km)가 마을로 이어지는 길에 자리하여 비가 와도 진창길을 피해 돌길을 따라 오갈 수 있으니 천연의 다리가 놓인 셈이다. 하여 교래리니, 다리가 어찌 사람이 놓은 것만 있겠는가? 인조 다리야 어딘들 없겠는가? 허나 교래에는 천연 다리가 있으니, 그런 다리는 흔치 않다.

큰 것에 대하여

제주 말(馬)에 관한 글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말에 찍는 낙인이 천자문의 글자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또 하나 교래리의 말들은 '大'를 낙인하여 표시했음을. 굳이 그 많은 글자 중에서 '大'를 따왔을까? 픽 웃었다. 교래리가 그리 큰가? 

그런데 크다. 산굼부리가 그렇고, 제주돌문화공원이 그러하며, 한라산 둘레를 에워싸고 있는 10소장 가운데 교래의 산마장山馬場이 그러하다. 크다 작다는 상대적이니 그 정도를 가늠하기 어려우나 적어도 제주에서 교래리는 가장 큰 것들을 품고 있다. 

육지 사람인 필자가 처음 본 제주의 돌은 아주 작았다. 손에 쥘 만큼 작은 돌, 목욕탕에서 발꿈치 각질 제거용으로 사용하던 바로 그 돌 말이다. 기공氣孔이 많아 물에 뜬다고 하여 부석浮石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고온에 다시 녹이면 단단하고 치밀하며 매끈매끈한 돌이 된다. 본향은 용암이고, 열을 참지 못해 터진 내부에서 거품을 품어내다 굳은 것이다. 그러니 부서뜨리고 잘라놓아 작은 것이지 원래는 도도滔滔하고 거대한 폭발의 결정체이다. 끊임없이 흘렀떤 거대한 용암 덩어리이다. 그러니 어찌 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돌문화공원 / 사진=심규호
돌문화공원 / 사진=심규호

제주에 거대한 문화가 있음을 느낀 것은 제주돌문화공원(이하 공원) 내에 있는 거석들을 보았을 때였다. 왜 제주에는 거석문화가 없다고 생각했을까? 백운철 선생에게 당돌하게 물었다. "저 거석들이 제주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요." 선생은 예의 할 말 많은 눈으로 필자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이 '작은 것만 봐서 그렇지'라고 말하는 듯했다. 설문대할망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그러했다. 공원 조감도에 나타난 설문대할망은 쪽진 머리에 뒤꽂이를 하고 거대한 치마로 대지를 싸안은 모습이었는데, 그것은 보이지 않으면서 드러난, 원래 있었으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상상적 현실태였다. 추상이 구상을 품고 있다고 할까? 아니면 무형이되 유형인 모습이라고 말하면 될까? 거석은 거원巨源을 드러내고, 설문대할망은 창세의 거대 여인을 보여준다. 그제야 새삼 깨닫는다. 제주가 하나의 거대한 땅, 거대한 돌, 거대한 산이라는 사실을. 

자연은 원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니 작고 큼이 없고 옳고 그름이 없으며, 슬픔과 기쁨도, 좋음과 나쁨도 없다. 저절로 그러한 것일 뿐 시비와 호오의 감정은 사람의 소행일 따름이다. 그런 자연을 크게, 좋게, 기쁘게, 멋있게, 옳게 만드는 것은 당연히 사람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사람을 우리는 거인이라고 한다. 어찌 크다고 거인이겠는가?

언젠가 백운철 선생이 문득 종이를 꺼내더니 신철주 군수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위아래로 나란히 적더니 이렇게 말했다. "심 교수, 이거 보시오. 이렇게 해도 위아래로 읽어도 운철, 철주 아니오." 아, 그랬다. 두 사람이 어떤 약속을 했는지, 어떻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고, 또 어떻게 북제주군에서 그 커다란 땅을 내놓게 되었는지 난 알지 못한다. 다만 두 사람의 의기意氣가 얼마나 큰 불꽃을 일으켰는지, 그리하여 미래를 향한 아득 멀고 거대한 길을 열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교래리에는 또 하나의 거대한 자연이 있다. 산굼부리. 굼부리는 화산체의 분화구를 뜻하는 제주말이다. 제주의 수많은 오름 가운데 분화구, 즉 굼부리를 지닌 오름이 적지 않다. 한라산의 백록담을 위시로 산방산, 송악산, 왕이메오름, 아부오름, 백약이오름 등이 모두 굼부리를 지니고 있다. 표선면 가시리의 따라비오름은 '오름의 여왕'이란 말이 무색하게 여섯 개의 봉우리에 세 개의 굼부리를 품고 있다. 하지만 '굼부리'를 떡하니 자신의 이름으로 쓴 것은 산굼부리가 유일하다.

굼부리의 옛 이름은 山仇+音夫里岳이다. '仇+音'이라고 쓴 것은 한자 사전에 이런 仇 아래 音이 붙은 글자가 없기 때문인데, 예전에는 종성 받침에 한자를 쓴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예를 들어 돌乭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는 우리나라에만 사용되는 글자인데, 워낙 돌쇠라는 이름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탐라순력도 산장구마 

여하간 '仇+音'은 '구음'이 아니라 '굼'이라고 읽어야 한다. 오름의 명칭은 제주말이 많기 때문에 이를 한자로 옮기는 일이 쉽지 않았을 터이다. 산굼부리도 중국어로 옮길 때 고생했던 기억이 나는데, 요즘 통용되는 산군부리山君不離는 글쎄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일까? 앞서 언급한 지명은  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이 화공 김남길金南吉을 시켜 제작한 화첩인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산장구마山場驅馬」에 나오는 지명이다. 김남길 화공인지 아니면 다른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제주말을 한자로 고치느라 고민께나 했겠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산굼부리 주변에 까끄래기오름과 말찻오름이 있는데, 이 역시 한자 이름이 까칠하다. 可+叱極羅只岳, 馬+乙左+叱. 음역하느라 참 애썼다. 까끄래기는 마소를 들판에 풀어 먹인다는 뜻인 제주말 '꼬끄레'에서 유래했다고 하느데, 꾸짖을 질叱 자는 받침 'ㅅ'을 표시하니 까끄래기는 '깟그래기', 꼬끄레는 '꼿그레'가 옳지 않겠나 싶다. 말 이야기가 나왔으니 후딱 말에 대한 말로 넘어가자.

심규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동대학원 중문학 박사. 제주국제대 교수, 중국학연구회, 중국문학이론학회 회장 역임. 현 제주중국학회 회장. 

저서로 '육조삼가 창작론 연구', '도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 '한자로 세상읽기', '부운재'(수필집) 등이 있으며, 역서로 '중국사상사', '중국문학비평소사', '마오쩌둥 평전', '덩샤오핑과 그의 시대', '개구리', '중국사강요', '완적집', '낙타샹즈' 등 70여 권이 있다.

shim42star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