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반대 그분들, 지금 뭐 하시나

권은혜·문준영 수습기자 2025. 4. 21.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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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파면 이후 탄핵 반대 세력 대다수는 갈피를 못 잡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이들이 다시금 세력화할 수 있을까. 선고 이후 한남동 관저 앞 극우 집회 현장을 취재했다.
4월8일 서울 한남동 관저 근처에 모여 ‘윤 어게인(YOON AGAIN)’을 외치는 집회 참가자들. ⓒ시사IN 조남진

“아저씨, 이 번호로 전화했어요? 여기 1000만명만 전화하면 대통령님 탄핵 취소돼.” 4월8일 저녁 7시30분경 서울 지하철 이태원역 3번 출구 앞, 한 70대 여성이 무리지어 모인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그가 동참을 권한 전화번호는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시작한 ‘국민저항 전화서명’이었다. “이미 했어요”라는 답이 돌아오자, 이 여성은 이렇게 덧붙였다. “지인들한테도 하라고 해요. 우리 대통령님 다시 살려야 해.” 

헌법재판소가 윤석열을 탄핵한 지 엿새째, 여전히 윤석열 파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모였다. 이날 탄핵을 반대하는 청년단체 ‘자유대학’은 이태원부터 윤석열이 여전히 머물고 있는 한남동 관저까지 행진 집회를 열었다. 행진에 참여한 1000여 명 가운데 일부는 ‘윤 어게인(YOON AGAIN)’이라는 피켓을 들고 들뜬 기색을 보였다. 선두에 선 주최 측은 마이크를 들고 “집회신고를 1000명만 했는데 내가 애국시민들을 얕본 것 같다. 1000명이 아니라 1만명이 온 것 같다”라고 소리쳤다. 청년단체가 마련한 자리였지만, 참가자 절반은 중장년층이었다. 이들 중장년층 참가자들은 행진 대열을 바라보며 “참 기특해. 나라를 구할 청년들이야”라며 응원했다.

그러나 대오 사이사이에서 낙담한 분위기도 읽을 수 있었다. 한남동 관저 근처 편의점에 삼삼오오 모인 청년들은 “이 많은 사람이 파면 전에 국회나 헌재를 갔어야 한다. 이미 (파면)돼버렸는데 어쩔 거냐”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어머니와 집회에 참석한 한 대학생은 “8대 0으로 선고가 나서 크게 충격을 받았다. 적어도 5대 3 아니면 4대 4가 나올 줄 알았는데···”라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마이크를 잡은 이들의 발언도 동상이몽이다. ‘자유대학’ 소속 광주대 학생 조태희씨는 “헌재 판결은 재심이 불가하지만, 정형식 재판관이 돈을 받았다는 사실이 나오면 재심할 수 있다. 윤 어게인!”이라고 외쳤다. 그러나 같은 연단에 선 심재홍씨(탄핵을반대하는대한민국청년 모임 소속)는 “윤석열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그 정신을 잇는 후보를 원하지 않나”라며 조기 대선을 의식한 발언을 남겼다.

윤석열 탄핵으로 극우 세력은 혼란에 빠졌다. ‘탄핵 반대’라는 구호 아래 하나로 결집했던 일군의 세력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 인용 이후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을 잃은 모습이다. 선고 이전에는 탄핵 반대 세력이 헌재 판결에 불복하고, 이들의 반발이 폭력 사태로 이어질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실제로 헌재 판결에 즉각 반발하며 법치주의에 반대되는 과격한 반응을 부추기는 이들도 있었다. 대표적 인물이 이른바 ‘광화문파’ 탄핵 반대 집회를 이끌던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다. 그는 윤석열 파면 직후 열린 4월5일 광화문 집회에서 “이 판결은 사기다”라며 탄핵심판 판결 불복을 선언했다. 4월8일 자유대학 주최 집회에 선 유튜버 안정권씨 역시 “탄핵에 불복한다. 빨갱이들의 판결을 인정해야 하나. 대통령님도 선고 받아들이면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바람 빠진 ‘풍선 극우’

그러나 이들 강경파 극우의 목소리는 대규모 동원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다. 헌재 판결에 대한 인정 여부, 이후 행동에 대한 판단, 추후 노선 정립, 구체적인 움직임에 대한 구상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격한 발언을 쏟아내는 강경파와 달리, 상당수 인사들은 ‘현실론’을 앞세우며 다가오는 대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4월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을 전원일치 의견으로 파면하자 국민변호인단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배의철 변호사는 입장문을 통해 당일 오후로 예정되어 있던 ‘대통령 직무복귀 환영집회’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국민변호인단 김정희 기획실장은 4월7일 〈시사IN〉과의 통화에서 “결과에 승복해야지, 여기서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2월13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대통령국민변호인단 출범식에 참여한 한 참가자가 손피켓을 들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윤석열 반탄 집회의 아이콘으로 등극한 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도 일단 ‘탄핵 결과 승복’을 입에 올렸다. 1인 미디어 ‘전한길 뉴스’를 운영하기 시작한 전씨는 4월7일 “다가오는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하여 개헌을 통해 헌재가 가루가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교안 전 총리가 이끌고 있는 부정선거부패방지대(이하 부방대)도 SNS를 통해 최근 모집 공고를 올렸다. 박윤성 부방대 사무총장은 “회원 배가 운동과 대선 공정선거 감시단을 위해서”라고 말했다.

극우 유명인사들이 곳곳에서 새 깃발을 들고 전략을 구상하는 한편 상당수 탄핵 반대 집회 참석자들은 방향을 잃고 낙담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무엇보다 ‘세가 줄었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하는 분위기다. 4월8일 한남동 관저 인근 집회에서 만난 한 30대 초반 여성은 “헌재 판결 이후 상실감에 말도 못했다. 대선후보를 생각하지 못할 정도다”라고 말했다. 연세대에서 탄핵 반대 선언을 조직한 박준영씨(24)도 “학교(연세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파면 전에는 탄핵 반대 여론이 상당했는데, 파면 이후에는 (분위기가)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이들 사이에서 막연하게 흘러나오는 구호가 있다. 바로 ‘윤 어게인’이다. ‘윤 어게인’은 4월5일 수감된 김용현이 서신을 통해 주장한 단어다. 그런데 탄핵소추 인용 이후 극우 집회 참석자들 사이에서 ‘윤 어게인’은 조금 다른 의미로 활용되고 있다. 법적으로 불가능한 윤석열의 재출마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윤석열의 정치적인 모든 것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확대되고 있다.

구심점을 잃은 이들에게 ‘윤 어게인’은 방향을 제시해달라는 요청으로도 사용된다. 6월3일 조기 대선에서 “윤석열이 지목한 사람을 지지하겠다”라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자유대학 대표 김준희씨(24)는 4월7일 〈시사IN〉과의 통화에서 “(현재 지지하는 후보는 없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지명하면 지지할 의사가 있다”라고 말했다. 극우 유튜버 ‘신계몽령TV’는 4월4일 영상에서 윤석열에게 “뭐라도 좋으니까 액션을 취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호소했다.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 사이에서 잠시 움츠러들었던 극우 세력이 활동을 재개하는 모습도 포착된다. 대통령 파면 후 세이브코리아 집회의 종료를 선언했던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도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4월8일 손 목사는 세계로교회 유튜브를 통해 “이재명이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도록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 한동훈은 정계를 떠나야 한다”라며 대선에 관한 의견을 표출했다.

선 긋다가 다시 손 내미는 국민의힘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미 대선 모드로 빠르게 전환한 상태다. 4월10일 현재 한동훈·안철수·김문수·오세훈 등 주요 주자들의 출사표가 이어지고 있다. 대선을 대비하는 당 차원에서 ‘윤 어게인’에 준하는 메시지를 내기란 어렵다. 오히려 탄핵 선고 이후 태세를 전환한 정치인도 보인다. 인요한 의원이 대표적이다. “(비상계엄) 방법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심정은 이해한다”라고 계엄 선포에 심정적 지지를 보내며 내내 탄핵 반대 의견을 고수해온 그는, 4월4일(현지 시각)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계엄은) 논리적으로나 합법적으로 봤을 때 현명하지 못한, 좋지 않은 결정이었다”라고 말했다. 4월4일 윤석열 파면 선고 직후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는 그간 탄핵 반대 입장을 강하게 표명해온 나경원 의원이 “이런 결과(파면)가 나올 가능성을 예상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3월1일 윤석열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세이브코리아 집회에 참가한 국민의힘 의원들의 모습. ⓒ시사IN 이명익

동상이몽과 중구난방. 한때 윤석열이 기대던 극우 여론의 ‘본모습’이 탄핵심판 선고 직후 드러났고, 이들 극우의 힘을 빌리려던 국민의힘 역시 아직까지는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그러나 거리에서 확인된 극우의 에너지가 소멸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이들을 묶는 하나의 구심점은 ‘반(反)이재명’이다. 탄핵 반대 집회에 나섰던 서울 거주 자영업자 이상운씨(35)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현실적으로 국민의힘에서 경선을 통해 나온 한 후보에게 집중해야 한다. 제일 문제는 제2후보가 난립해 이재명이 당선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고병찬 파주 운정참존교회 목사도 4월8일 세계로교회 유튜브에서 “대선이 다가왔다. 가장 옳은 것은 이재명을 이기는 것이다.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라고 설교했다.

소멸하지 않은 극우의 에너지를 제도권 정치에서 동원하려는 정치인도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4월9일 TV조선에 출연해 “(대선 출마를 위해) 장관직을 그만두면서 (윤석열에게) 전화했다. 잘 해보라, 고생 많았다는 말을 들었다”라고 밝혔다. 대구경북권 탄핵 반대 집회에 열성적으로 참석한 이철우 경북도지사 역시 4월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날 윤석열을 찾아갔다는 소식을 전하며 이런 글을 남겼다. “(윤석열이 내게) 대통령에 당선되기를 바란다는 덕담과 함께 대통령 되면 사람을 쓸 때 가장 중요시 볼 것은 충성심이라고 당부하였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일정은 5월3일까지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윤 어게인’으로 확인된 ‘방향 제시를 기다리는 극우의 바람’을, 여당 후보가 자극하고 이용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권은혜·문준영 수습기자 kik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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