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에 억눌려 아무 일도 못 하면 국가적 손해…새로운 출발 지원해야"

"빚에 억눌려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면 국가적 손해다. 새로운 출발이 목표다. 기업도 살려서 사회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새로운 기회를 주자, 그것이 회생 제도다."
국내 도산법 전문가로 꼽히는 정준영 서울회생법원장은 '모럴해저드' 등 회생 제도의 부작용보다 회생 제도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개인과 기업이 국가와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정 법원장은 "회생법원은 실패한 기업이 다시 시장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경제 2번지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2월 서울회생법원장으로 부임한 뒤 판사들과의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5월부터 시행하기로 한 '예방적 자율구조조정'(pre-ARS)제도도 '파산'보다 '회생'에 방점이 찍힌 제도다. '비공개로 진행하는 예방적 구조조정 협의절차'로 요약되는 예방적 자율구조조정은 회생 절차를 신청하는 순간 발생하는 '낙인 효과'를 최소화한다.
정 법원장은 스타트업 등 소규모 기업의 사회적 가치도 높게 평가한다. 애플 등 세계 최고의 기업도 스타트업에서 시작했고 실패를 겪을 수 있는데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창업 자체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회생법원은 미국의 서브챕터5 소규모기업 회생절차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소규모 기업에는 '종합적 고려법'에 따른 회생계획안을 인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회생 이후에도 대주주가 바뀌지 않는다면 회생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지난 9일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에서 정 법원장을 만나 회생 제도의 의의를 들어봤다. 다음은 정 법원장과의 일문일답.

-회생법원장으로서 회생 제도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회생 제도는 개인 회생과 기업 회생으로 나뉜다. 채무가 있는 사람이 빚을 갚을 능력이 없을 수 있다. 그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인적 자본인데, 빚에 억눌려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면 국가적 손해라는 관점에서 면책을 해주는 것이다. 면책 후의 새로운 출발이 목적이다. 기업이 어려워지면 임직원을 비롯해 채권자, 소비자, 심지어 그 기업이 있는 지역 사회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 기업이 보존됐을 때 사회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새로운 기회를 주자, 살려보자는 접근을 하는 것이 기업 회생이다.
-최근 국내 2위 대형마트 홈플러스가 회생신청을 했고 서울회생법원이 신청 당일 신속하게 회생 절차 개시 결정을 내렸다. 다른 사건과 달리 신속한 결정을 내린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홈플러스 사건은 대규모 유통업체의 선제적 구조조정으로서의 회생신청 사건이라는 점에서 다른 사건과 차별점이 있다. 첫째로 홈플러스는 8000개의 납품업체, 2만명의 직원을 가진 대규모 유통업체인데 하루라도 영업중단이 생기면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기업가치가 추락하게 된다. 회생신청은 영업을 계속하면서 금융채권자 등과 채무 조정 협의를 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중단 없이 영업을 계속하도록 하기 위해선 회생 절차가 개시돼야 한다. 둘째로 선제적 구조조정은 당장은 채무변제를 할 수 있으나 금융채무 등 채무조정이 없으면 수개월 이내에 재정위기가 예상되는 경우 파산을 예방하기 위해 채무조정 협의를 하는 것이다. 재정위기를 감지한 기업은 자신의 재무상태를 감추지 말고 과감하게 구조조정에 나서야 더 큰 피해를 방지할 수 있다. 앞으로도 대규모 회사가 정상 영업이 가능한 상태에서 선제적 구조조정을 위한 회생신청을 한다면 최대한 신속하게 신청 당일 즉시 개시 결정을 하도록 할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홈플러스 사건과 관련, 사모펀드 MBK가 별도 자구책이나 노력 없이 선제적으로 회생신청을 한 것에 대한 비판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
▶홈플러스가 회생신청을 한 것은 결국 경영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실패한 기업엔 사회적 비판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장경제 체제에서 성공하는 기업도, 실패하는 기업도 있을 수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실패를 극복한 기업은 더 큰 성공을 할 수 있다. 회생법원을 병원에 비유하기도 한다. 의사가 병원에 온 중환자를 나무라지 않고 먼저 필요한 검사를 통해 병을 정확하게 진단한 후 치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선제적 구조조정을 위한 회생신청은 중환자가 되기 전, 기력이 있는 상태에서 병원을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이 경우 회복력도 훨씬 높아진다.
-'예방적 자율구조조정'(pre-ARS) 제도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회생절차와 구분되는 회생신청 전의 별도의 민사조정 신청에 의해 비공개로 진행되는 예방적 구조조정 협의 절차라고 할 수 있다. 현행 ARS는 일단 회생신청을 한 후에 진행된다는 점에서 비밀 보장이 되지 않는다. 또 일단 지급정지에까지 이르지 않은 기업으로서는 회생신청 자체가 가져오는 사회적 낙인효과로 선뜻 회생신청을 하는 것이 쉽지 않고 지급정지 후 회생신청을 하는 경우 ARS를 신청하더라도 운영자금 고갈로 인해 채권자들과 채무조정 협상이 쉽지 않다. 따라서 예방적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업은 재정위기를 시장에 알리지 않고 주요채권자들과 비밀로 채무조정 협상을 하고자 할 수 있다. 이 경우 보안이 유지되는 민사조정 절차를 통해 주요 채권자들과 채무조정 협상을 할 수 있고 채무자와 주요채권자가 구조조정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경우 워크아웃이나 사전계획안에 의한 회생신청(P플랜) 등 기업에 적합한 구조조정 절차로 이어질 수 있다.
-일정 규모 이상 기업들뿐 아니라 소규모 기업들 회생 신청도 늘고 있다. 예방적 자율구조조정 제도가 소규모 기업에도 적용되는가. 아니면 소규모 기업들을 위한 다른 계획이 있는가.
▶소규모 기업의 경우 재무상황이 매우 악화된 상황에서 회생신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채무변제율 역시 매우 낮은 것이 현실이다. 이에 서울회생법원은 소규모 기업의 회생계획인가에 있어서 종전의 '상대적 지분비율법'을 보완하기 위해 '종합적 고려법'을 적극 시행할 예정이다. 상대적 지분비율법이란 주주가 채권자보다 권리순위가 낮아야 한다는 법률규정에 따라 회생계획인가 후 기존경영자의 지분비율이 회생채권 변제율보다는 낮아야 공정·형평의 원칙에 맞다는 법리다. 때문에 대부분 소규모 기업은 회생계획 인가 후에는 기업지배권이 출자전환된 채권금융기관에 넘어가게 된다. 반면 '종합적 고려법'은 소규모 기업의 경영자의 영업력이나 기술력이 해당 기업 회생에 필수적인 경우 기존 경영자의 지분비율이 50%를 초과하도록 조정해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즉 소규모 기업의 기존 경영자가 회생계획 인가 후에도 책임경영을 통해 소규모 회사의 실질적 회생을 도모하고, 채권자의 채권회수도 보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미 '종합적 고려법'을 통해 소규모 기업의 경영권이 유지된 사례가 2∼3건 생겼다. 채권자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란 편견이 있으나 경영주 지배권을 유지해 주자는 안건에 회생 채권자 98%가 동의한 경우도 있다. 향후 기업이 크게 성장할 경우 채권자들 보유한 주식 가치가 상승하는 만큼, 경영자가 영업을 잘 할 수 있도록 동의를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개인파산 및 회생 제도가 많이 알려지고 불경기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 투자에 실패한 젊은 층 등이 많아져 법원에 사건이 많아지고 있다. 절차가 지연될 우려가 있는데 법원 차원의 해결책이 있는가.
▶불경기의 장기화, 물가 상승 등으로 개인회생 사건 접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개인회생 및 개인파산 사건의 경우 채무자들이 하루빨리 빚의 수렁에서 벗어나 정상적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결정시까지의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실무에서 개선할 부분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있다. 또 개인회생제도 이용의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한국신용정보원과 협력해 부채증명서에 갈음하는 부채정보를 전송받는 시스템을 구축해 개인회생 신청절차를 간소화할 예정이다.
-취임 일성으로 '도전하다 실패한 기업과 채무자에게 기회를 줘야한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다. 채권자들을 포함한 이해관계인들은 오히려 회생 신청 자격을 엄격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는데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신가.
▶어느 기업이나 실패할 수 있고 실패를 교훈삼아 더 큰 성공을 할 수 있다. 실패를 극복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더 큰 성공을 할 기회도 없애는 것이다. 애플 등 초일류 기업들도 초창기에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수많은 실패를 겪고 이를 극복하면서 성장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회생절차는 실패한 기업에 실패를 극복할 기회를 주는 것에 불과하고 실패를 극복하고 성공하려면 기업가와 임직원의 노력뿐 아니라 협력업체와 채권자 등 이해관계인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즉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실제로 실패를 극복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데 여기에 더해 신청 자격을 엄격하게 해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업의 회생신청을 어렵게 한다면 1997년 당시 많은 기업이 분식회계 등을 통해 재정위기를 감추고 경영을 계속해 국가적 파산위기로까지 이어졌던 상황이 다시 벌어질 위험이 있다.

대담=이학렬 사회부장 tootsie@mt.co.kr 정리=한정수 기자 jeongsuhan@mt.co.kr 한지연 기자 vividhan@mt.co.kr 정진솔 기자 pinetre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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