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새벽을 깨우는 봉포항 붉은 여명

왕태석 2025. 4. 21.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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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고성군의 작은 어항인 봉포항.

출항 채비를 서두르는 어부들의 부지런한 손놀림이 새벽의 어둠에 잠긴 항구의 고요함을 깨우고 있었다.

며칠째 계속된 강풍주의보에 발이 묶였던 어부들은 모처럼 찾아온 잔잔한 바다에 희망을 걸고 묵묵히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거친 파도와 맞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어부들의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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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고성군의 작은 어항인 봉포항은 새벽의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어부들의 분주한 손길은 이미 항구의 고요를 깨우고 있었다. 고성=왕태석 선임기자

강원 고성군의 작은 어항인 봉포항. 출항 채비를 서두르는 어부들의 부지런한 손놀림이 새벽의 어둠에 잠긴 항구의 고요함을 깨우고 있었다. 며칠째 계속된 강풍주의보에 발이 묶였던 어부들은 모처럼 찾아온 잔잔한 바다에 희망을 걸고 묵묵히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그 순간, 방파제 너머로 강렬한 붉은빛이 쏟아져 내렸다. 동트기 직전 칠흑 같던 어둠을 밀어내고 주변을 물들인 붉은색은 순식간에 몽환의 세계로 인도하는 듯했다.

봉포항 방파제에서 마주한 여명은 수평선까지 온통 붉게 타올라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이어 드넓은 동해 바다는 물론, 멀리 수평선까지 붉게 타올라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거대한 캔버스에 붉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 장엄하고도 황홀한 풍경은 숨 막힐 듯한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하지만 찰나의 황홀경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내 한 줄기 붉은빛으로 좁아지더니, 순식간에 회색빛으로 변했다. 마치 꿈속에서 깨어난 듯 허망한 잔상만이 눈가에 어른거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조금 전 붉은빛에 가려 보이지 않던 어선 한 척이 방파제 옆을 스치듯 미끄러져 나갔다.

여명은 찰나의 황홀경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한 줄기 붉은빛으로 좁아지며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여명은 찰나의 황홀경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한 줄기 붉은빛으로 좁아지며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거친 파도와 맞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어부들의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잠시 전 눈앞을 물들였던 환상적인 붉은 여명은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고 묵묵히 자기 일에 집중하는 강인한 어부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각인되는 하루였다. 풍요롭지 못한 바다를 향해 떠나는 이들의 어깨 위에는 무거운 책임감이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부디 풍어를 이루고 무사히 항구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그들의 땀방울이 헛되지 않기를 그리고 봉포항에 다시 활기찬 풍어의 깃발이 휘날리기를.

여명은 찰나의 황홀경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한 줄기 붉은빛으로 좁아지더니 순식간에 사라져 갔다.

왕태석 선임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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