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폭탄의 표적, 결국 중국이었다 [김학균의 시장읽기]
경제를 무기로 한 패권다툼…중국과의 결별에서 미국도 가볍지 않은 피해 입을 것
(시사저널=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트럼프발 관세 충격은 희비극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4월초 국가별 상호관세 발표 이후 첫 2거래일 동안 미국 S&P500 지수는 10.5%나 폭락했다. 1928년 이후 미국 증시의 총 거래일 2만4438일 중 2거래일 동안 두 자릿수대 하락률이 기록된 경우는 단 19일에 불과했다.
기록적인 급락세가 미국 증시를 넘어 글로벌 증시 전반으로 퍼져 나갔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상호관세라는 명목으로 부과한 국가별 관세율이 너무도 자의적이었다. 미국의 국가별 무역적자를 그 나라로부터의 수입액으로 나눈 값을, 다시 2로 나눠 산정했다. 관세 부과에 일정한 패턴은 있지만, 논리적 정합성은 실종됐다.
또한 마약 밀수 근절을 명분으로 한 펜타닐 관세, 철강과 자동차에 부과한 품목별 관세, 모든 국가에 부여하는 보편관세, 미국의 국가별 무역수지 적자를 기반으로 산정된 상호관세 등이 혼재되면서 관세율 계산이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급기야 여러 가지 관세가 중첩된 중국에 적용되는 합계 관세율이 '125%가 아닌 펜타닐 관세 20%가 포함된 145%'라고 백악관 관계자가 따로 확인해줄 정도였다.
무역의 탈을 쓴 패권 전략
졸속 추진은 불가피했다. 한국과 미국의 FTA(자유무역협정)가 타결되기까지 걸린 시간이 7년이었다. 2005년 협정 추진부터 2007년 한미 정부 합의, 2011년 양국 의회 비준 등 양자 간 협상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모든 교역국에 각각의 관세를 물리는 작업을 집권 후 3개월이 안 되는 기간 안에 해냈다. 애초부터 내용이 충실할 수 없었단 의미다. 앞으로의 추가 논의 과정도 부실하긴 마찬가지일 것 같다.
상호관세 부과 후 트럼프 대통령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50개 이상의 국가가 미국에 관세 협상을 요청해 왔다"고. 협상 요청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체 직원이 300명도 안 되는 USTR(미국무역대표부)이 50여개 국과 어떻게 단기간 내 협상을 끝내겠다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글로벌 경제에 관세 폭탄을 던져놓고, 이종격투기 대회인 UFC 경기장을 찾아 태연히 경기를 관람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정책을 합리성의 잣대로 해석하기 힘들다는 점이 글로벌 증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지만, 그래도 관세 논란을 거치면서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미국이 도발하고 있는 관세전쟁은 중국을 주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호관세율 발표 이후 미국 증시가 급락하고 미국 국채 금리가 치솟자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 시행을 90일간 유예했지만, 중국에 대한 관세율 인상은 그대로 강행했다.
트럼프 1기와 바이든 행정부를 거쳐 트럼프 2기 정부까지 미·중 대결이라는 기조에는 변함이 없는 셈이다. 미국과 중국 간 패권전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자유무역의 후퇴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관세가 낮아지고, 국가 간 자유로운 교역이 이뤄지는 모습이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자유무역이 인류 역사에서 늘 관철됐던 보편적 질서는 아니었다. 어쩌면 자유무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 년의 특수한 경험이었을 수도 있다.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은 경제적 효율성 추구의 결과이기도 했지만 동서냉전의 산물이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자본주의 블록의 맹주가 됐다. 기존의 패권국이었던 영국이 쇠퇴했지만, 유라시아대륙의 동쪽 끝에는 소련과 중국이라는 이념적 적수들이 부상하고 있었다. 미국은 동맹국들에는 도량 넓은 리더였다. 군사 지원과 더불어 자국 시장을 동맹국들에 완전 개방했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전범국들이었던 서독과 일본은 물론 한국도 대미 수출을 통해 경제를 부흥시켰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글로벌 경제 질서는 달러 패권이 강화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달러가 미국 밖으로 널리 퍼져야 했다. 자유무역의 교범이었던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체제는 동맹국들이 미국에 수출하고 그 대가로 달러를 획득하는 과정을 무한반복시켰다. IBRD(국제부흥개발은행)는 경제 개발에 쓰일 달러 자금을 장기 저리로 동맹국들에 대출해 줬고, 일시적으로 달러가 부족한 동맹국에는 IMF(국제통화기금)가 긴급융자를 해줬다.
중국 때리기의 진짜 대가
1차 냉전기의 맞수였던 미국과 소련은 경제적으로 분리된 가운데 이념 경쟁을 했던 반면,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 깊숙이 편입되면서 미국의 최대 교역국이 됐다.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자유무역이라는 이름으로 동맹국들에 인센티브를 줬지만, 우리 시대 자유무역의 최대 수혜국은 중국이 돼버렸다.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자유무역 시스템의 균열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중국 이외 국가들에 대한 상호관세가 유예되면서 글로벌 증시가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아직은 안정 국면으로 보기 어렵다. 갈등의 핵인 미·중 갈등이 여전히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중국과의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 미국도 만만치 않은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행위를 비난한다. 기술 탈취, 국영기업에 대한 집중적 지원을 통한 불공정 경쟁, 환경과 인권을 고려하지 않는 생산 과정 등을 통해 미국의 부를 빼앗아 갔다고.
미국의 러스트벨트가 누려야 할 경제적 풍요가 중국 광둥성으로 이전됐다는 주장을 담고 있는 이런 서사는 부분의 진실만을 담고 있을 뿐이다. 값싸게 생산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나선 미국 자본의 이해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와 시애틀, 뉴욕 등지에 본사를 두고 있는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중국이 거두고 있는 막대한 대미 무역수지 흑자의 수혜자들이다. 19세기 미국에서도 중국에 대한 혐오론이 대두된 바 있었다. 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미국 땅을 밟은 중국 노동자들이 미국의 문화를 훼손할 것이라는 '황화론'이 그것인데, 이 역시 공정하지 못한 평가였다. 쿨리로 불렸던 중국 노동자들은 신대륙의 철도 건설에 투자했던 미국·유럽의 자본과 이해가 맞아 태평양을 건넜을 뿐이다.
미국이 진정으로 중국과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있다면, 미국 경제가 고통을 피해 가긴 힘들 것이다. 값싼 소비를 즐겼던 소비자들과 효율적 생산으로 이윤을 극대화했던 자본은 불가피하게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 여파는 글로벌 경제 전반으로 퍼질 것이다. 미·중 갈등이 완화되기 전까지 금융시장은 불안정한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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