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억 톤씩 늘어나는 플라스틱, 공기 속 수분으로 분해한다 [김형자의 세상은 지금]
美 노스웨스턴대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로 ‘완전 재활용’ 길 열려
(시사저널=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세계는 '플라스틱 폐기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매일 배출되는 막대한 양의 플라스틱은 환경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敵)이다. 재활용률도 10%가 채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미국 노스웨스턴대 연구팀이 공기 속 수분을 이용해 세계적으로 넘쳐나는 플라스틱을 재활용할 방법을 찾았다는 희소식이 전해졌다. 재사용이 쉽지 않은 플라스틱을 완전 재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폐플라스틱은 원료 상태로 분해해 재활용
플라스틱은 화학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다. 플라스틱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지금도 지구촌의 플라스틱 생산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4월10일 중국 칭화대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커뮤니케이션스 지구와 환경'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1950년 200만 톤에서 2022년 4억 톤으로 증가했다. 연평균 8.4%씩 늘어난 셈이다. 4억 톤 중 재활용 플라스틱 원료로 생산된 것은 9.5%(3796만 톤)에 불과했다. 그만큼 재활용이 어렵다는 의미다. 플라스틱은 종류가 다양하고 재질마다 재활용 공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보통의 플라스틱은 수많은 분자를 인공적으로 결합시켜 만든 고분자(polymer) 화합물이다. 탄소 원자의 긴 배열에 약간의 다른 원자들이 붙어있다. 고분자 사슬이 탄소(C)-탄소(C) 결합으로 이뤄져 화학적으로 안정된 이 같은 구조는 자연계에 없다. 이는 플라스틱이 잘 분해되지 않는, 즉 자연적으로 '생분해'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폴리에틸렌(PE)과 폴리프로필렌(PP) 같은 플라스틱을 화학적으로 재활용하려면 탄소 결합을 끊어 단위체(monomer·고분자를 형성하는 단위가 되는 분자)인 에틸렌이나 프로필렌 원료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수백 도의 고온이 필요하고 꽤 많은 반응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처음 석유에서 단위체 원료를 만들어낼 때보다 비용이 훨씬 많이 든다. '화학적 재활용'이 어려운 이유다. 단위체는 레고 블록 한 개를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지금은 화학적 재활용보다 '기계적(물리적) 재활용'에 집중하고 있다. 기계적 재활용은 버려지는 플라스틱에서 오염물질을 씻어내고 다시 고온으로 녹여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먼저 폐플라스틱을 회수해 알갱이 단위의 원료인 펠릿(Pellet) 형태로 분쇄한 다음, 해당 펠릿을 깨끗이 세척한 후 비중 차이를 이용해 녹여 선별·분리 작업을 진행한다. 분리된 재료들은 기존 원료와 적당한 비율(20~50%)로 혼합해 플라스틱 소재로 만든다.
문제는 이 같은 과정을 거쳐 플라스틱 소재를 만들어도 염료나 유연제 등 이전에 사용된 각종 첨가제로 인해 고분자의 질이 떨어지고, 아무리 깨끗이 세척한다 해도 불순물이 남는다는 점이다. 많은 처리 비용도 기계적 재활용의 발목을 잡는 요소다. 플라스틱 재활용률이 고작 10%도 안 되는 것도 이런 점 때문이며, 대부분 방치되거나 소각된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해왔다. 자연에서 생분해되는 최첨단 바이오플라스틱 소재를 개발해 보급했지만 가격이 너무 비싼 탓에 보급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 또 박테리아를 배양해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해결 방안을 제시했지만 말 그대로 제안 수준에 그쳤다. 미생물이나 곤충을 이용해 폐기물을 생분해하는 연구들도 진행되고 있고, 한편에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릴레이 환경운동 '플라스틱 프리 챌린지'도 진행하고 있지만 별반 효과가 없다.
이처럼 뾰족한 대안이 없던 상황에서 노스웨스턴대의 연구팀이 공기 속 수분을 이용해 폐플라스틱을 분해하는 간단한 방법을 개발했다. 폴리에스터(polyester) 계열에서 가장 흔한 플라스틱인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oly Ethylene Terephthalate·PET)를 원래의 구성 요소로 분해하는 방법이다. 흔히 페트병이라고 하는 투명 플라스틱병이나 식품용기 등에 사용하는 PET는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전체 플라스틱의 12%를 차지한다.
단량체 94% 회수…지속 가능한 완벽 재활용
연구팀은 PET의 화학 결합을 분해하기 위해 몰리브덴 촉매와 활성탄을 사용했다. 그 결과 짧은 시간에 플라스틱 내부의 화학 결합이 끊어졌다. 몰리브덴 촉매와 활성탄은 모두 저렴하고 독성이 없는 재료다. 기존에는 백금이나 팔라듐처럼 값이 비싸거나 독성이 강한 촉매를 사용했다. 몰리브덴 촉매는 내구성이 뛰어나 반복 재사용도 가능하다.
이후 연구팀은 분해된 조각을 대기에 노출시켜 공기 속 미량의 수분으로 플라스틱 핵심 원료인 단위체(테레프탈산·TPA)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용매(용액을 만들 때 용질을 녹이는 액체) 대신 공기 중 수증기를 활용해 용매가 필요 없는 촉매 공정을 최초로 개발한 것이다.
용매를 사용하는 기존 방법은 여러 단점이 있다. 고온으로 가열해야 하고, 유해 화학물질의 용매를 사용하기 때문에 독성 부산물이 생성된다. 또 반응이 완료된 후 재활용될 물질을 용매에서 분리해야 하는데 이때 쓰는 에너지 투입량이 많아 비용도 많이 든다.
반면 공기 속 수분을 활용한 연구팀의 PET 분해 공정은 유일한 부산물이 아세트알데히드(CH3CHO)였다. 이는 쉽게 제거되는 산업용 화학물질이다. 따라서 독성 용매나 과도한 에너지 사용 등이 필요 없는 친환경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공정도 매우 빨랐다. 단 4시간 만에 단위체의 94%가 회수되었다.
또 혼합 플라스틱 제품에 대해 연구팀의 공정을 시험한 결과 폴리에스터만 선택적으로 재활용하는 게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혼합 플라스틱은 원재료 플라스틱 외에 두 가지 이상 혼합물이 섞인 것으로, 순수 플라스틱과 달리 재활용이 어려워 일반쓰레기로 분류된다. 심지어 유색 플라스틱을 순수한 무색 단위체로 분해하기도 했다. 플라스틱의 품질 또한 떨어지지 않았다. 이 단위체를 사용하면 새로운 PET 제품이나 더 가치 있는 소재로 재활용할 수 있다는 게 이번 연구를 이끈 크라티시 교수의 설명이다.
연구팀의 플라스틱 분해 기술은 '재활용 순환 경제'라는 지구적 과제를 해결할 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플라스틱 오염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소비를 줄이는 것이 필수다. 그러려면 개인, 지역사회, 정부, 국제사회 등의 집단적 행동이 필요하다. 플라스틱 소비 감축, 폐기물 관리 인프라 개선,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금지 정책 등 국제사회의 협력과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우리는 더 깨끗하고 친환경적인 미래를 향한 길을 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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