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반쪽은 어디에”… 벚꽃 아래서 사랑 찾는 청春들

황지원 기자 2025. 4. 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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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주선 단체미팅, 기자가 직접 가보니
대구 수성문화재단, 결혼 장려 취지 행사
30~45세 미혼남녀 22명 한자리에 모여
게임·대화·포토미션…서로 알아가기 분주
수성못 벚꽃길 데이트 낭만·설렘 넘쳐나
4커플 탄생…“좋은 인연 만나게 돼 기뻐”
대구 수성문화재단이 주최한 단체 미팅 프로그램 참가자들. 조별로 수성못을 한 바퀴 돌며 서로를 알아갔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애국자 소리를 듣는 세상이다. 혼인과 출산으로 이어지리란 기대로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이 주선하는 미혼 남녀의 단체 미팅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결혼정보회사도 아닌 지자체가 단체미팅을? 어떤 사람들이 참여해 대체 무얼 할까? 이런 직업적 궁금증 때문에 현장을 다녀왔다. 미리 고백건대 사심도 아주 없진 않았다.

처음 취재를 기획했을 땐 기자가 직접 미팅에 참여하려 했다. 기사도 쓰고 좋은 사람도 만난다면 일석이조. 마침 거주지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10대10 미팅 프로그램이 있어 신청서를 냈다. 심혈을 기울여 잘 나온 사진을 고르고 나이·직장·MBTI와 미팅에 임하는 한마디까지 적어냈건만 결과는 탈락. ‘여성 지원자는 별로 많지 않겠지?’라는 추측이 무색하게 주최 측은 무려 여성 63명, 남성 89명이 지원해 무작위로 참가자를 선정했다고 알렸다. 관찰자로 취재 허가를 요청했지만 이 역시도 거절. 우여곡절 끝에 서울에 사는 기자는 대구까지 가서 남의 연애를 지켜보게 됐다.

마음속 그 사람에게 줄 정호승 시인의 시를 필사하는 참가자.

대구 수성구가 운영하는 수성문화재단은 5일 ‘수성 낭만여행단 3기 벚꽃로맨스’라는 이름으로 단체 미팅 행사를 개최했다. 참가 자격은 30∼45세 남녀. 수성구민을 우선적으로 선발한다. 최종 22명에 선정되면 재직증명서와 혼인관계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초반에는 여성 지원자 미달로 기자도 희망을 가졌지만 마감하고 보니 선발 정원을 넘겨 기자의 자리는 사라졌다. 남성 지원자는 40여명. 조순선 수성문화재단 과장은 “서울·부산 등 먼 곳에서 지원한 분도 있다”며 “대구 가까이 거주하는지와 지원 동기의 진정성을 고려해 선발했다”고 밝혔다.

오전 10시, 남녀 11쌍이 수성못 옆 카페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주최 측의 안내에 따라 4명 혹은 6명씩 5개 테이블에 나눠 앉았다. 참여 동기에 대한 질문엔 대부분 비슷한 답변을 내놨다. 좋은 사람을 만나 연애도 결혼도 하고 싶은데 도무지 기회가 없다고. 같은 지역에 살며, 진지한 만남을 원하는, 신원이 검증된 이성을, 한꺼번에 11명이나 만나는 건 연애 확률을 극적으로 끌어올릴 기회다.

인형을 건네며 고백하는 남자. 여자는 인형을 받았을까? 대구=김도웅 프리랜서 기자

사회자의 주도로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한 간단한 게임이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서로 손뼉을 치거나 팔짱을 끼며 조금씩 가까워졌다. 그러고 나선 남성 참가자들이 테이블을 옮겨가며 한 테이블당 15분씩 대화를 이어갔다.

“황금동 사세요? 어머, 저도 그 근처 사는데.”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시간. 같은 이야기를 5번씩 반복해야 하니 지칠 법도 했지만,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다음 순서는 ‘수성못 벚꽃길 포토미션’이다. 8명 혹은 6명이 한 조가 돼 수성못 포토존 4곳에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 조는 주최 측이 임의로 짰다. 앞선 대화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어느 정도 정해졌을 터. 참가자들은 그 사람과 같은 조가 되기를 바라고 바라지 않았을까.

수성못에는 벚꽃잎이 흩날리고 있었다. 오늘 처음 본 사람과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 듯한 계절이다. 사진을 빨리 찍어 올리면 상품을 준다고 했지만, 상품이 중요한 게 아니다. 조원 중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옆에 바짝 붙어 걸으며 한마디라도 더 해봐야 한다. 조원들과 떨어져 단둘이 걷거나 사진 전송을 이유로 번호를 교환하는 참가자들도 눈에 띄었다. 아쉽게도, 쓸쓸히 홀로 걷는 참가자도 있었다.

낭만여행단의 종착지는 정호승문학관. 버스를 타고 15분가량 이동해야 하는데, 버스 안에서도 흥미로운 이벤트가 펼쳐졌다. 여성 전원이 먼저 버스에 탑승한 후 남성이 마음에 드는 여성 옆에 앉는 것으로 자리를 정했다. 처음으로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 셈이다. 버스 안은 서로를 알아가기 바쁜 남녀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문학관에서 참가자들은 마음속 ‘그’에게 전달할 정호승 시인의 시를 필사했다. 최종 선택은 남성이 여성에게 고백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첫번째 남성이 무대 위로 올라 마음에 드는 여성의 이름을 불렀다. 남자는 무릎을 꿇고 인형을 건넸다. 과연 인형을 받아줄까. 모두의 눈이 여성의 손으로 향했다. 여성의 선택은 승낙. 그렇게 첫 커플이 탄생했다.

고백을 거절하기도, 선택하지 않기도, 여성 1명에게 3명의 고백이 몰리기도 하며 최종 선택이 끝났다. 결과는 11쌍 중 4커플 매칭. 한 최종 커플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좋은 인연을 만나게 돼 기쁘다”고 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서, 나이 차가 많이 나서, 호감을 느낀 상대와 대화할 시간이 없어서, 커플이 되지 못해서 누군가에겐 씁쓸한 하루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행복을 위해 용기 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벚꽃잎 날리는 이 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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