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100억 맛집’ 여사장 노린 제비족, 끝은 청부살해였다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피해자 살해된 후 자녀에게 식당 지분 언급…“범인 꼭 잡아야” 악어의 눈물도
(시사저널=정락인 탐사저널 사건전문기자)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에 위치한 A식당은 지역 내에서 대표적인 맛집이다. 갈치구이 등으로 명성이 자자해 손님이 끊이지 않았고, 지점이 늘어나면서 연간 100억원대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제주 출신인 양아무개 대표(여·55)는 자영업을 했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남다른 사업 수완을 보이며 성공을 거둔다. 양씨는 제주도뿐 아니라 서울 강남에 아파트와 건물을 소유한 재력가이기도 했다. 그는 20여 년 전 남편과 이혼한 후에도 한동안 함께 식당을 운영했지만 관리를 소홀히 하자 해임하고, 전남편의 식당 소유권을 50억원에 사들이면서 혼자 경영했다.
양씨는 수익의 일부는 사회에 환원했다. 매월 수익금의 일부를 도내 소외계층 아동들을 위해 기부했고, 봉사활동과 불우이웃 돕기에도 적극 나섰다. 이런 양씨의 선의에 지역에서의 인심도 상당히 좋았다.
4명의 내연녀와 동시에 만나며 호화생활
양씨는 2018년쯤 제주의 한 골프연습장에서 박아무개씨(55)를 알게 된다. 박씨는 자신을 부산 소재 고등학교 재단 이사장이라고 속이는 등 재력가인 것처럼 행세했다.
실제는 사기 전과 5범의 전과자였다. 피해자들은 모두 여성이었고, 의도적으로 접근해 돈을 가로채는 수법의 전형적인 제비족이었다.
실형을 살고 교도소를 출소한 박씨는 2015년 제주에 들어온 후에도 여러 여성과 관계를 맺으며 돈을 빌려 쓰고 있었다. 채무 압박이 심해지자 또 다른 범행 대상을 물색했고, 양씨가 이혼한 후 혼자인 데다 재력가라는 사실을 알고는 돈을 노리고 접근했던 것이다.
박씨는 양씨에게 사업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며 환심을 사고 친분관계를 맺는다. 양씨의 신임을 얻으면서 식당 관리이사직까지 차지하며 월급을 받아 챙겼다.
그는 또 투자 등 이런저런 명목으로 양씨에게 돈을 요구해 받아냈고, 그 돈으로 명품으로 치장하고 외제차를 굴리며 호화생활을 했다. 그러면서 4명의 여성과 동시에 내연관계를 유지했다.
박씨는 2021년 부산 기장군에 있는 자신의 문중 땅을 허락 없이 양씨에게 넘기고 매매대금 명목으로 5억4000만원을 받았다. 나중에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문중은 박씨와 양씨를 사기죄로 고소한다.
이를 계기로 박씨의 정체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한 양씨는 그를 식당 운영에서 배제하고 관계를 단절하며 빌려간 돈 3억원을 전부 갚으라고 독촉했다.
궁지에 몰린 박씨는 양씨의 식당 등 재산을 차지하는 동시에 채무를 해결할 음모를 꾸민다.
앞서 2019년 박씨는 양씨가 소유한 업체의 대표라고 속이고 땅 주인에게 명의를 이전받는다. 2020년쯤 양씨는 급전이 필요하자 이 땅을 포함해 자신의 건물과 토지를 묶어 공동담보로 수십억원을 대출받았다.
박씨는 양씨를 살해한 후 자신의 담보를 해제하게 되면 상속자인 양씨 자녀들이 대출금을 한꺼번에 갚아야 한다는 점을 내세워 이들을 압박해 식당 운영권을 장악하려고 했다.
이를 위해 지인 소개로 알게 된, 경남 양산에 거주하는 김아무개씨(50)와 그의 아내 이아무개씨(45)를 끌어들인다. 김씨는 지역 건설현장에서 일감을 받아 돈을 버는 펌프카 소유주였으나, 코로나19와 경기 침체 등으로 2억3000만원의 채무가 있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박씨는 김씨를 만나 재력가 행세를 하며 솔깃한 제안을 했다. 양씨를 살해하면 그의 소유인 서울 강남 소재 아파트 명의를 즉시 이전해 주고, 채무를 대신 갚아주며, 여기에 식당 지점 운영권까지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양씨는 내 재산을 가로채려는 꽃뱀"이라고 했다.
김씨가 제안을 받아들이자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좋다" "못 일어나면 못 일어날수록 좋다" "드러눕게 하라" 등 사실상 살인을 사주했다. 박씨는 김씨에게 착수금 3200만원을 건네고, 치밀하게 범행 계획을 세운다.
박씨 일당은 2022년 9월18일부터 범행에 들어간다. 이때부터 김씨 부부는 수차례 제주도를 찾아 양씨 식당과 집을 답사하고, 양씨를 미행하며 출퇴근 시간과 동선 등 생활 패턴을 파악했다. 이때마다 박씨에게서 호텔비와 교통비 등을 제공받았다.
미행하고 몰래카메라 설치…치밀한 범행
첫 번째 범행 시도는 양씨가 운영하는 식당 주변에서 교통사고를 가장해 살해하려고 했으나 실패로 돌아간다. 두 번째와 세 번째도 교통사고를 시도했으나 도로 상황 등으로 인해 미수에 그쳤다.
교통사고 위장살인이 어렵다고 판단한 일당은 11월10일에는 오라동의 주거지 근처에서 귀가하는 양씨를 폭행하고 살해하려고 했으나 인근에 순찰차가 보여 포기했다. 일당은 방법을 전면 수정해 양씨의 집 안에서 살해하기로 계획을 바꾼다.
박씨가 알려준 주거지 현관 비밀번호로 집에 침입하려고 했으나 양씨가 비번을 바꾸면서 미수에 그친다. 12월5일 김씨는 퀵서비스 기사로 위장해 양씨 주거지 현관을 비추는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후 비로소 비밀번호를 알아낸다.
12월15일 새벽 김씨 부부는 전남 여수항에서 배에 차량을 싣고 제주에 들어와 하룻밤을 지낸다. 12월16일 낮 12시12분쯤 김씨는 양씨 집으로 숨어들어 집 안에 있던 아령을 손에 쥐고 옷방으로 들어갔다.
이때 김씨의 아내 이씨는 차량으로 양씨를 미행하며 그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했다. 오후 3시쯤 이씨는 남편에게 "양씨가 집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알려준다.
얼마 후 양씨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옷방으로 들어왔다. 이때를 기다리고 있던 김씨는 양씨의 목을 감아 넘어뜨리고 아령으로 얼굴과 머리 등 부위를 20여 차례 내리쳐 잔인하게 살해했다.
양씨의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김씨는 그의 휴대전화를 비롯해 집 안을 뒤져 현금 491만원과 명품가방 3개(시가 1800만원), 귀금속을 챙겨 나왔다.
양씨의 휴대전화는 인근 다리 밑에 버렸다. 이어 택시를 타고 용담 해안도로에 내려 미리 챙겨온 옷과 신발로 갈아입거나 신고, 다시 택시를 탄 뒤 제주동문재래시장 인근에서 하차했다. 두 차례 택시 요금은 모두 현금으로 지불했다.
김씨는 복잡한 시장 안을 10여 분간 배회하다가 대기하던 아내 이씨의 차를 타고 제주항으로 이동해 완도행 배편에 차량을 실은 뒤 제주도를 벗어났다.
이들 부부가 제주로 오가는 배편을 예약할 당시 이씨는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사용했지만, 김씨는 다른 사람 신분증을 도용했다. 여객선 승선권 구매는 이씨가 담당했다. 김씨는 거주지인 양산으로 돌아간 후 훔친 명품가방과 현금 다발은 자신의 영업용 차량에 숨겼다.
다음 날인 12월17일 오전 10시쯤 피를 흘린 채 숨져 있는 양씨의 시신을 친언니가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양씨 사망이 알려지자 박씨는 유족인 자녀에게 전화해 도와주는 척하며 식당 지분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현장에서 혈흔이 묻은 아령을 발견한다. 여기에서 장갑흔이 나왔으나 범인의 DNA는 검출되지 않았다. 부검 결과 양씨는 머리를 집중 공격당해 두개골이 함몰된 상태였고, 직접적인 사인은 뇌출혈로 나왔다.
경찰은 먼저 양씨의 주변 인물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수사를 벌였다. 이 중에는 전남편도 포함됐다. 하지만 전남편은 사건이 일어난 날 육지에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확인돼 용의선상에서 배제됐다. 전남편의 통화 내역과 금융거래 내역에서도 수상한 점이 없었다.
그러다 양씨 집 인근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서 사건 발생 시간대에 양씨 주거지로 들어가는 수상한 남성이 포착된다. 빈 쇼핑백을 가지고 건물로 들어간 남성은 이후 가득 채워진 쇼핑백을 들고 나왔다. 또한 양씨 거주지 주변에서 수상한 차량도 확보됐다.
경찰은 차량 조회와 승선 기록, 통화 내역을 조회한 결과 차에 타고 있던 여성과 탑승한 남성의 신원을 파악하고, 범행 나흘 만에 양산 자택에서 김씨 부부를 검거한다.
"살인까진 생각 안했다" 끝까지 반성 안 해
경찰은 범행 전후에 김씨가 박씨와 자주 통화한 사실을 밝혀내고 같은 날 박씨도 검거했다. 그는 양씨가 살해된 후 경찰이 찾아오자 "범인을 꼭 검거해 달라"며 악어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박씨는 경찰 수사망에 걸려들자 태도를 바꿔 "김씨에게 그저 손 좀 봐달라고 했는데 죽일 줄은 몰랐다"며 청부살인을 부인했다.
경찰은 피의자들의 신상공개를 위한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었으나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이 계획적이고 피해가 중대하지만 수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신상을 공개하면 범죄 예방·재범 방지 등 공익보다 피의자와 피해자 가족의 2차 피해 등 인권침해 우려가 크다고 판단됐다"고 비공개 이유를 밝혔다.
박씨와 김씨 부부는 강도살인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주범 박씨와 공범 김씨에게 사형을, 남편의 범행을 도운 이씨에게는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박씨는 최후진술에서도 "김씨가 살인까지 할 줄 몰랐다"는 기존의 주장을 반복하며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반면 김씨는 "피해자와 유가족에 고통을 드려 사죄한다"며 고개를 숙였고, 이씨는 "남편이 그런 범행을 벌이는 줄 몰랐다. 남편을 말리지 못해 미안하다"며 울먹였다.
1심은 박씨에게 무기징역, 김씨에게 징역 35년을, 조력자인 이씨에게는 피해자를 살해할 의사가 없었다고 보고 강도살인이 아닌 강도치사 혐의를 적용해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저마다 각자의 경제적 이유로 범행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철저한 계획에 따라 실행됐다"고 지적하고, "박씨의 묵시적 살해 지시가 인정되며, 자신이 직접 피해자에게 가해하지 않았을 뿐 박씨가 범행을 주도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들의 범행이 너무 끔찍하고, 피해자 입장에서 보자면 가장 안전해야 할 자신의 집에서 극도의 공포, 고통 속에서 숨졌다"며 "피해자 본인의 원통함은 말도 못하고, 피해자 자녀들은 너무나 허망해하는 등 유족들의 상처도 평생 갈 것 같다"고 판시했다.
박씨와 김씨 부부는 형량이 무겁다고 항소했다. 2심은 박씨와 김씨는 원심을 인용했으나 이씨에게는 징역 5년을 선고해 형량의 절반을 감형했다. 이들의 형량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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