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윤 혹은 다니 다이치, ‘태극기’와 ‘일장기’ 사이의 기회
한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온 기회…글로벌 시대 유소년 선수들의 성장 방향 제시
(시사저널=서호정 축구칼럼니스트)
4월11일. 일본과 호주의 AFC(아시아축구연맹) 17세 이하(U-17) 아시안컵 B조 조별리그 최종 3차전이 열린 사우디아라비아 타이프의 오카즈 스타디움. 후반 33분 교체 투입된 공격수 다니 다이치(17)는 일본이 1대3으로 지고 있던 후반 41분 왼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일본은 2대3으로 패했지만, 다이치의 이 골로 조 1위를 지킬 수 있었다. 다이치는 사흘 후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8강전에서는 후반 27분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다.
가수 김정민의 차남 활약상에 日 언론 대대적 주목
아직은 고등학생 신분의 선수들이 경쟁하는 U-17 대회지만 다이치는 특별한 배경으로 주목받았다. 2008년생인 그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인기 가수 김정민씨의 차남이다. 한국명 김도윤, 현재는 일본명인 다니 다이치를 쓰고 있다. 여전히 배우와 가수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김정민씨는 2006년 재일동포 3세 일본인 다니 루미코씨와 결혼했다. 슬하에 3남을 두고 있는데 3형제 모두 운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첫째(김태양, 일본명 다니 다이요)와 둘째는 한국 프로팀 산하 유스로 활동했다. 다이치는 중학교 졸업 직후 형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졌다.
엄마의 성을 따라 쓴 다이치는 2024년 9월 열린 스포츠소년(전국체전 고등부 개념) 축구 종목에서 사가현 대표로 나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준우승을 이끌었다. 여기서 일본축구협회의 눈길을 끌었고, 한 달 후 열린 17세 이하 아시안컵 지역예선을 위해 소집된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네팔과의 예선 첫 경기에서 4골을 몰아치며 9대2 대승에 기여, 일본 언론의 대대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어진 몽골, 카타르와의 경기에서도 교체 투입돼 득점을 올렸다. 이런 활약과 적응력을 인정받아 연말에 있었던 스페인 전지훈련에 참가했고, 올해 U-17 아시안컵 본선에도 나선 것이다.
훤칠한 외모로 유명했던 아버지처럼 184cm, 72kg의 훌륭한 체격 조건을 지닌 다이치는 일본에서 보기 드물게 피지컬이 좋은 정통 스트라이커다. 다이치는 현재 U-17 대표팀에서 2번 공격수로 평가받는다. 주전인 요시다 미나토가 일본 최고의 유망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시다는 체격조건이 171cm, 70kg으로 최전방 공격수로선 작은 편이다. 일본은 강팀과의 경기에서 버텨주고, 싸워줄 새로운 선수를 찾았는데 그렇게 레이더망에 든 선수가 다이치였다.
일본의 축구 전문매체 '게키사카'는 "사간 도스 유스팀에서 활약하는 다이치를 히로야마 노조무 U-17 대표팀 감독이 주목했다. 히로야마 감독은 사간 도스 코칭스태프와 협력해 다니치를 관찰했으며, '다른 선수들과는 차별화된 유형'이라고 판단해 선발했다"며 일본 연령별 대표 진입 과정을 소개했다.
조국 버렸다?…"기회 찾아 일본 유학 결정한 것"
일본에서 활약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국내에도 소개되면서 일각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흘러나왔다. 한국에서 연령별 대표를 거친 김도윤이 향후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군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일본을 택했다는 얘기부터, 조국을 버렸다는 자극적인 기사 제목까지 나왔다. 이에 대해 김정민씨는 한 인터뷰에서 "사실과 전혀 다른 얘기다. 한국 연령별 대표로 선발된 적이 없다. 이전부터 일본으로 축구 유학을 가려고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연기됐다. 아내가 일본 국적이기에 아이들도 한국과 일본 국적을 둘 다 갖고 있다. 귀화가 아니라 복수국적인 상황에서 일본 연령별 대표팀에 먼저 뽑힌 것이다"고 반박했다.
결론을 말하면 한국이 아닌 일본이 먼저 국가대표가 될 기회를 준 것이다. 국내의 한 축구 유소년 관계자는 "도윤이는 서울 신정초 재학 때부터 재능 있는 선수로 주목받았다. 그래서 국내 최고 유스팀인 FC서울(오산중)로 진학할 수 있었다. 성장 과정에서 몸이 아팠던 것도 있지만, 국내 지도자들이 도윤이의 장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이 가는 13, 14, 15세 연령별 대표팀에 못 가니 가족 입장에선 답답했을 것이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일본 유학을 결정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사간 도스는 현재 일본 프로 2부인 J2리그 소속이다. 인구 7만5000명인 사가현의 도스시를 연고로 하다 보니 자금력이나 관중 동원에서 상위권은 아니다. 하지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시스템을 강화했고, 유소년 육성에도 적극 투자했다. 2023년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해 화제를 모은 특급 유망주 후쿠이 다이치가 사간 도스 유스 시스템의 걸작품이다. 도쿄 출신인 루미코는 아들의 성장을 위해 연고가 없는 작은 도시로 함께 건너갔다.
한국과 일본의 특수한 관계, 무엇보다 축구에 얽힌 자존심 경쟁으로 인해 다이치의 활약은 경기 외적인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 특수성을 떼고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국내보다 성장을 위한 인프라나 교육 시스템이 우월한 유럽, 남미 그리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는 선수는 많다. 다이치의 경우 복수국적이라는 특수성 덕분에 일본 연령별 대표팀에 선발될 수 있었다.
FIFA(국제축구연맹) 규정상 성인이 된 뒤에도 국가대표팀을 바꿀 수 있다. 월드컵 본선이나 대륙별 대회(아시안컵 등)가 아닌 일반 A매치(평가전, 예선)에 3회 이하 출전한 선수는 21세 이전에 국가대표를 바꿀 수 있다. 다이치도 결국 언제든 김도윤으로 돌아올 수 있다. 단, 한국 연령별 대표팀에서 선발을 원해야 하고, 선수 자신도 한국 국적을 선호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최근 비슷한 사례가 축구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여자축구 선수 케이시 유진 페어는 미국에서도 특급 유망주로 평가받았지만 한국 여자 A대표팀을 택했다. 2007년생이지만 이미 2023년 열린 FIFA 여자월드컵에도 출전했다. 최근에도 A대표팀에 발탁돼 호주 원정에 참가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남자 A대표팀에도 귀화 선수 이슈가 있다. 독일 2부 리그 뉘른베르크에서 활약 중인 미드필더 옌스 카스트로프다. 한국인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를 둔 카스트로프는 독일 21세 이하 대표팀에서 활약 중인 선수다. 현 소속팀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다음 시즌은 1부 리그인 묀헨글라드바흐로의 이적이 예정돼 있다. 카스트로프는 어머니 안수연씨와 자신을 돕고 있는 한국인 관계자들을 통해 태극마크를 달고 싶다는 입장을 여러 번 밝혔다. 홍명보 감독과 대한축구협회 역시 카스트로프의 발탁과 관련한 행정 절차나 여러 변수를 검토하며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세상은 글로벌 시대로 변모했다. 한국은 달라진 시대상의 중심에 서며 문화적으로도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커진 영향력은 자연스럽게 각 분야에서 재능 있는 혼혈 2세, 3세의 출현이라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혼혈이 아니지만 국내에서 태어나 성장한 외국 국적의 청년들도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프로축구 K리그는 이런 시대상을 반영해 일정 기간 동안 국내 아마추어 팀에서 활약한 외국 국적의 유소년 선수를 국내 선수와 동일하게 계약해 등록할 수 있는 홈그로운 제도를 신설했다.
어떤 선수는 기회를 얻기 위해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향하지만, 다른 선수는 미국과 유럽을 떠나 한국으로 오길 원한다. 김도윤 혹은 다니 다이치를 바라보는 시선도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매몰되기보다, 더 나은 기회를 찾길 원하는 재능 있는 선수의 고민으로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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