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블랙핑크·NCT 127과 함께,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다
“더 많은 K팝 아티스트와 선한 영향력 무대를 만들고 싶다”
(시사저널=이석 기자)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일 때였다. 미국에서는 작은 이벤트가 열렸다. 그래미 어워드를 여섯 차례나 수상한 레전드 밴드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이 자신의 거실에서 공연을 시작한 것이다. 언택트(비대면)가 일상화되면서 집 안에만 머무르던 팬들은 유튜브로 공연을 보면서 큰 위로를 받았다. 크리스 마틴은 윈디렉션의 나일 호란에게 다음 공연을 부탁했다. 나일 호란은 다시 존 레전드에게, 존 레전드는 카밀라 카베요와 션 멘데스에게 바통을 넘겼다. 국내에서도 화제를 모았던 '원 월드: 투게더 앳 홈(One World: Together At Home)' 콘서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유명 팝스타 릴레이 공연으로 기네스 신기록
레이디 가가는 이 공연을 전 세계적인 이벤트로 확산시켰다. 폴 메카트니와 테일러 스위프트, 롤링 스톤즈, 엘튼 존, 셀린 디옹, 제니퍼 로페즈 등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아티스트들이 속속 공연에 합류했다. 결국 ABC와 NBC 등 방송을 타고 러시아와 중국 등에 동시 방영되면서 4억5000만 가구가 이 공연을 안방에서 시청했다. 기네스 세계신기록이었다.
이 역사적인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 인사가 휴 에반스 글로벌 시티즌(Global Citizen) 공동 설립자 겸 CEO다. 국내에 많이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그는 글로벌 정·관계나 기업인, 심지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도 영향력을 끼치는 인사로 평가된다.
"'투게더 앳 홈' 콘서트는 원래 팬데믹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의료진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이벤트였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인 테워드로스 박사의 전화를 받고 서둘러 구상했는데, 입소문을 타고 전 세계적인 이벤트로 확산되면서 1억3000만 달러의 기금을 이 행사로 마련할 수 있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으면서 에반스 CEO는 선학평화상위원회가 4월11일 주최한 선학평화상도 수상했다. 그는 "선학평화상 수상은 단순히 개인만의 영광이 아니다. 빈곤과 불평등, 기후변화 등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해온 글로벌 시티즌의 1200만 회원을 대표해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글로벌 시티즌은 단순히 기부금을 모으는 기존 자선단체와 차별화돼 있다. 돈이 아니라 시민들이 직접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빈곤 퇴치를 위해 평생을 바쳐온 고(故)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끈기와 삶의 철학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 필리핀과 남아공, 인도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극심한 빈곤을 목격했다. 이 중에서도 남아공에서 보냈던 1년의 생활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27년간의 수감생활 후 대통령이 돼 민주적으로 남아공을 이끌 때였다. 그는 빈곤이 노예제처럼 인간이 만든 것이며, 인간의 행동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좋은 통치가 빈곤 퇴치의 핵심 기반이라고 굳게 믿었다. 이 철학이 나중에 글로벌 시티즌 설립의 근간이 됐다."
이는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과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 미셸 오바마 등 전 세계 정치 지도자들이 글로벌 시티즌 무대에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은 행사가 열릴 때마다 직접 얼굴을 비치면서 시민들의 행동을 주문했다. 정치 지도자뿐만이 아니다. 버라이즌과 프록터앤드갬블(P&G), 페이팔, 시스코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글로벌 시티즌의 장기 파트너로 협업하고 있다.
"델타항공의 피터 카터 사장과 브리지워터 CEO인 나르 바 데아, 페이팔의 디에고 스코티 수석부사장 등은 글로벌 시티즌의 이사로도 참여하고 있다. 글로벌 시티즌이 만들어냈거나 만들어낼 변화를 보고 함께한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글로벌 시티즌이 시민들의 참여와 행동을 이끈 강력한 매개체는 바로 음악이었다. 2012년부터 시작한 '글로벌 시티즌 페스티벌(Global Citizen Festival)'이 대표적이다. 에반스 CEO는 그해 센트럴파크의 드넓은 잔디밭인 '그레이트 론'에서 콘서트를 열어 6만 명의 관중을 모으고 10억 달러의 기부를 약속받았다.
"처음에 그레이트 론을 행사장으로 제안했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1981년 사이먼 앤 가펑클 공연 이후로 허가를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블룸버그의 한 수석 고문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당시 뉴욕 시장이었던 블룸버그 창업주를 여러 차례 설득한 끝에 그레이트 론의 공연을 허가받을 수 있다. 모자란 자금은 바이아컴과 CBS 소유주였던 섬너 레드스톤이 해결해 줬다. 그에게 우리의 비전을 얘기하자 100만 달러짜리 수표를 그 자리에서 써줬다. 닐 영과 푸 파이터스 등 전설적인 가수들이 공연의 헤드라이너(간판 출연자)를 자청하면서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에반스 CEO는 당초 '글로벌 시티즌 페스티벌'을 계속 이어갈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공연 다음 날 스티비 원더의 에이전트와 매니저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음 해 행사의 헤드라이너를 자청한 것이다. 이후 글로벌 시티즌 페스티벌은 매년 열리는 행사로 자리 잡게 됐다. 세계은행과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그동안 모금한 돈만 436억 달러(약 64조원) 이상이다. 이 돈은 의료 서비스와 교육 기회 확대, 식량 안보 강화, 기후변화 대응 등에 쓰였고, 전 세계에서 13억 명 이상이 혜택을 입었다.
"K팝 아티스트와 팬들의 행동에 큰 영감"
에반스 CEO는 K팝 가수들과도 여러 차례 협업했다. BTS와 블랙핑크의 리사, NCT 127, SUPER M 등이 그가 주도한 무대에 올랐다. 2023년 센트럴파크에서 열린 행사에 BTS의 멤버 정국이 헤드라이너로 올라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행사 역시 글로벌 시티즌이 주최한 이벤트였다.
"K팝 아티스트와의 협업은 나에게도 좋은 경험이었다. K팝은 글로벌 음악산업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센트럴파크의 그레이트 론에서 K팝 팬들이 밤새 대기하다 가장 먼저 줄을 서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봉사, 사회적 책임,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헌신까지…. 아티스트뿐 아니라 팬들이 보여준 모범적인 행동과 가치를 보고 큰 영감을 받았다. 앞으로 더 많은 K팝 아티스트와 함께할 날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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