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 강말금 "대사없던 시절 있었는데 고위층 빌런이라니 너무 신났죠"[인터뷰]

모신정 기자 2025. 4. 2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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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비'서 조향숙 장관 역
배우 강말금 ⓒ쇼박스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연기 못한다고 대사가 없던 시절도 있었죠. 처음엔 할머니 역, 사투리를 쓰는 인물 등만 맡으며 무대에 섰어요. 그랬던 제가 하루하루 훈련하고 개선해서 배우라는 직업으로 밥벌이도 하고 대중들의 사랑도 받으니 얼마나 좋아요. 앞으로도 좋은 시나리오, 대본들을 만나 계속 한걸음씩 좀 더 좋은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영화 '로비'에서 로비의 강력한 대상인 조향숙 장관 역을 연기한 강말금을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한국이 만났다. 몇 차례 공식 기자간담회에서 또 이날 영화 '로비'의 홍보 인터뷰에서 강말금 배우와 대화를 나누며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들었던 생각은 이름처럼 맑고 밝은 에너지로 듣는 이를 힐링시키는 대단한 화술의 소유자라는 점이었다. 다양한 질문들에 매번 상대 연기자들이나 스태프, 제작진을 존중하고 그들의 장점을 조목조목 짚어내는 면모도 인상적이었다. 배우로서 초년병 시절 겪었던 어려움이나 내면의 갈등들을 가감 없이 풀어내는 모습을 보니 굉장히 깊게 사유하고 성찰해 스스로의 연기 철학을 발전시켜온 깊은 내공의 소유자라는 느낌도 들었다. 무엇보다 대화의 내용이 풍성하고 깊었다. 

2007년 연극 '꼬메디아'로 데뷔했고 2020년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주연을 맡아 그해 신인여우상을 휩쓸며 배우로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렸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행복의 나라', '말할수 없는 비밀' 등에 출연했고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서른, 아홉', '신성한, 이혼', '나쁜 엄마', '경성크리처', '가족X멜로', '폭싹 속았수다' 등에 출연했다.  

강말금은 '로비'의 캐스팅 과정부터 촬영 현장 에피소드, '로비'의 연출자이자 동갑내기인 하정우 감독과 호흡하며 느낀 점 등을 다채롭게 펼쳐 놓았다. 영화  '로비'는 연구밖에 모르는 스타트업 대표 윤창욱(하정우)이 경쟁 회사 대표인 손광우(박병은)의 뒷거래 때문에 기회도 기술도 번번이 빼앗기던 차 4조 원의 국책사업의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첫 로비 골프에 나서는 이야기를 그렸다. 

배우 강말금 ⓒ쇼박스

강말금이 연기한 조향숙 장관은 로비 라운드에 참여하는 인물로 창욱과 광우(박병은)가 입찰을 노리고 있는 스마트주차장 사업의 결정권자다. 기술 사업에 연관된 장관이지만 기술에 대한 이해도는 낮고, 당장 손에 쥐어지는 것들에 더 관심이 많다. 스마트주차장 사업부터 단골 골프장의 확장을 위한 그린벨트 해제까지, 부정부패한 이슈들에 엮여 있는 인물이다. 

- 하정우 감독이 캐스팅한 이유를 이야기해줬나. 

▶ 제가 2021년에 청룡영화상 신인상을 수상할 때 '누군가의 꿈을 만드는 일인 배우라는 직업으로 살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소감을 말했는데 그때 당시 시상식장에서 제 소감을 보셨다고 하더라. 그때 '너무 우아하고 좋았다'고 하셨다. 아마 그런 모습을 보고 장관 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 '로비'에서도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에서도 빌런에 해당하는 인물을 맡았다. 

▶ '폭싹 속았수다'는 2년전에 찍었다. 대본을 딱 보는 순간 '나 이 아줌마 안다' 싶더라. 어린 시절 가난한 동네에 그런 아줌마들이 꼭 있었다. 길에서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아줌마들을 본 기억이 있다. 나는 이 인물의 모델을 안다 싶었다. 제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제가 기억하는 실존 인물에 못미치겠다 싶더라. 사실 두 작품 모두 빌런이어서 신이 났다. 그동안 주인공의 조력자 역할을 많이 했는데 그 역할들로 사랑 받아서 좋았지만 이번에 권력자인 조 장관 역을 맡아 남 눈치 볼 것 없이 신나게 연기하며 좋았다. 

- '로비'에서 조 장관만큼이나 크고 작은 빌런들이 다수 등장한다. 가장 이상하다고 느껴졌던 역할이 있다면?

▶ 김의성 선배가 연기한 최실장이나 이동휘가 연기한 박기자, 박병은 선배가 연기한 손광우는 정말 싫었다. 최실장이 '내가 남자로 보여요?'라고 진프로에게 말할 떄 정말 점입가경 아닌가.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면서 소리를 낼 수는 없고 정말 내 다리를 꽉 쥐었다. 배우분들이 그 인물들을 정말 제대로 연기를 해줘서 더 싫었던 것 같다.(웃음)

- 그늘집에 양쪽 로비 팀이 전부 모여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 장면이 극의 하이라이트다. 이 장면에서 어떤 인물에도 지지 않을 카리스마를 발휘하던데 특별한 비결이 있었나. 

▶ 박해수 배우와 박병은 배우가 치고 박고 싸우는 걸 단번에 제압해야 하는데 저 난리를 어떻게 제압하나 고민이 있었다. 어느 날 산에 올라갔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북한산 맞은 편을 바라보시며 '야이야이야이야~'하고 주문을 외우듯 고함을 치시더라. 거기서 모티브를 얻어 현장에서 연기했다.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제가 애초 생각한 것보다 조금 덜 나온듯해 아쉽다. 

- 그늘집 장면 촬영당시 가장 눈에 띄는 배우가 있었나. 

▶ 액션이 정말 많았던 장면인데 배우들이 버텨 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하루 종일 찍었다. 그들이 액션을 하면 저는 구석에서 쉬고 있는 거죠. 그 장면을 찍던 날은 한 편의 코미디 같았다. 배우분들도 모두 열심히 수고했지만 스태프분들의 헌신적 도움이 더 기억에 남았던 장면이다. 11월에 촬영을 했는데 그날 촬영일에 비가 억수 같이 쏟아졌다. 그날 천장쪽 가림막에 물이 차는 바람에 조명 스태프분들을 비롯해 대부분의 스태프들이 그 세찬 비를 쫄딱 맞으며 온몸이 젖어가며 촬영을 진행하셨는데 너무 인상 깊었고 감사할 따름이다. 

- 주연 배우만 10여명에 가까운데 팀워크가 매우 좋아 보인다. 

▶ 포스터 하나만 봐도 팀워크가 드러나지 않나. 모든 캐릭터들이 다 등장한다. 이런 부분은 영화에 큰 애정을 가지지 않으면 안되는 부분 같다. 완성된 영화를 봐도 어떤 캐릭터도 가려지거나 숨겨지지 않게 편집을 하셨더라. 사실 다들 연기를 한가닥씩 하시는 배우분들 아닌가. 이런 배우들이 함께 모여 있으면 다들 솜씨를 뽐낼 법도 한데 앙상블이 굉장히 좋다. 다들 영화에 대한 큰 애정을 가지고 연기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정우 감독님은 매번 모니터를 바라보는 눈빛이 따뜻하셨다. 늘 애정을 가지고 배우들 연기를 지켜보신다. 실제 배우를 해보셨기에 어떤 날은 잘 연기가 나오는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그렇지 않다는 것도 잘 이해해주셨다. 그런 부분에 대해 많이 열려 있으시더라. 

배우 강말금 ⓒ쇼박스

- 하정우 감독과 하정우 배우 두 모습을 다 지켜본 셈인데 장점을 꼽아본다면. 

▶ 제가 이 작업이 좋았던 이유는 감독님이 주인인 작품이었기에 좋았다. 감독님이 처음 시나리오부터 쓰셨으니 씨앗부터 다 잘 아는 분 아닌가. 창작적 부분과 배우들을 키우는 에너지 둘 다에 최선을 다하시더라. 사실 감독이라는 자리가 현장에서 결정할 일이 너무 많지 않나. 변수도 많고 촬영 현장에서 예측 못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런데 하 감독님은 그런 변수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모든 걸 좋게 이끌어 갈려고 하시더라. 정말 사랑으로 현장을 대했던 것 같다. 연출을 겸해 주인공 역할을 연기하는 것도 스트레스가 컸을 텐데 영화를 크리에이티브하게 만들려고 하셨고 현장에서 에너지가 항상 높은 수준으로 잘 유지될 수 있도록 애쓰셨다. 감독으로서도 배우로서도 항상 컨디션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모습에도 놀랐다. 

배우로서 늘 일정한 템포로 정확하게 대사를 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로비'는 대사도 빠르고 대사량도 상당한 수준이었는데 늘 일정한 연기를 보이시더라. 저는 제 컨디션에 따라 흔들리기도 하고 그러는데 하 감독님의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늘 고르게 신마다 연기하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제가 가장 부러워하는 템포와 깔끔한 연기를 보여주신다. 기가 센 감독님이시지만 반면 또 매우 따뜻한 분이다. 나이는 저와 동갑내기지만 에너지도 다르고 살아온 인생이 달라서 말을 놓을 수가 없더라. 존경하고 존중하는 마음도 크다.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살아간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닌데 하정우 감독님은 자신을 걸고 살아온 세월의 깊이기 있지 않나. 그런 면에서 존중하게 됐다. 

- 실제로 골프를 잘 치는 편이었나. 

▶전혀 못치는 사람이었다. 대본에 조장관이 '내가 라베가 81이야'라는 대사가 나온다. 라베가 81이면 굉장히 잘 치는 실력이라고 하더라. 하정우 감독님은 그렇게 열심히 할 필요는 없지만 포즈는 멋있게 나와야 한다고 하셨다. 전혀 못치는 상태에서 그 정도 실력의 소유자를 제대로 보여주려면 연습 밖에 답이 없었다. 총 37회 연습장에 가서 연습을 해다. 보통 골프를 치면 왼쪽 팔이 아프다고 하던데 저는 오른쪽 팔꿈치가 아프더라. 그때를 끝으로 골프를 치지 못하고 있다. 

- 박병은, 차주영, 최시원 등과 호흡하며 느낀 것은. 

▶ 모든 배우가 감탄스러웠다. 가장 많은 호흡을 이룬 박병은 선배는 에너지가 자체가 막 표출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액션을 크게 하는 타임이 아니라 관망하면서 리드미컬하게 툭 치고 들어가는 모습이 멋있었다. 차주영 배우는 순간적으로 이입해서 연기하는 모습이 좋았다. 성격이 굉장히 다정다감한사람이다. 연기 재능이 빛나더라. 최시원 배우는 TV에서 볼 때 너무 젠틀하고 잘 생긴 사람이었는데 현장에서는 골프 공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에서 코믹 재능이 빛을 발하더라. 다들 너무 잘 하셨고 저도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싶었다. 다들 놀러왔다고 표현은 했지만 전쟁터나 다름 없었다. 이동휘 배우는 거의 만나는 신이 적었지만 순발력 있게 치고 빠지고를 정말 잘 하더라. 

- 20대 시절 몇년동안 회사원 생활을 하다가 배우로 전업을 했다. 과거 선택에 대해 후회를 한 적은 없나. 

▶ 지나간 일에 후회하지 않는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통해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됐다. 지금도 새로운 경험을 계속하고 있다. 배우라는 직업이 좋은 글을 가지고 다른 좋은 배우들, 스태프분들과 계속 만나 작업하는 직업 아닌가. 젊은 시절 고집스럽게 나를 잡고 있던 부분들을 놔버리고 인생에서 겪을수 있는 큰 행운을 겪었다. 배우 일을 시작하고 나서도 한편으로는 꽃밭을 가꾼다던가 하는 취미 등으로 숨으려고 했던 적도 있다. 어떨 때는 정말 '쉬고 싶다, 숨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나에게 어떻게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생겼지'하는 마음과 쉬고 싶은 마음이 오갔던 것 같다. 그런데 '나쁜 엄마'가 끝나고 휴식기를 가져보니 별 소용이 없더라. 최근 제 마음은 배우로서 2막을 시작한 느낌인데 영화 '로비'로 2막을 시작해서 기쁘다. 하정우 감독님을 필두로 크리에이티브하고 따뜻한 직장에서 이런 멋있는 예술가들의 기운을 받고 앞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는 좋은 기운을 얻었다. 

- 강말금이라는 예명은 어떻게 만들게 됐나.

▶ 돌아보면 제 20대 시절이 가장 암울했다. 따로 진단을 받지 않았지만 우울증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제 이름으로 배우를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20대 때부터 제가 늙었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옛날식 이름을 쓰고 싶었다. 친한 친구가 쓰던 닉네임이 말금이었는데 그 친구가 더 이상 쓰지 않게 됐다고 해서 제가 허락을 받아서 그 이름을 쓰게 됐다. 극단에 처음 들어갔을 때부터 강말금으로 불리게 됐다. 

- 강말금만의 배우로서 장점을 꼽는다면. 

▶ 사실 배우로서 순발력 같은 재능은 별로 타고나지 못한것 같다. 제가 잘하는 건 해석 쪽이 아닐까 싶다. 좋은 텍스트를 받아서 그 해석을 깊이 있게 하는 것이 제가 하는 일이다. 작가님의 세계를 초독에서 느끼고 대화를 통해 최선을 다해 흡수해서 제 것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이 멋있는 것 같다. 또 그것을 제대로 된 표현으로 바꿔야 하는 것이 제 의무이다. 이런 일을 하며 밥벌이도 하고 사랑도 받으니 얼마나 훌륭한 직업인가. 예전에 제가 배우로서 돈을 벌지 못할 때도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하셨다. '너는 평생 쥘 동아줄을 쥐었구나'라고 하시더라. 

사실 저만의 장점보다 단점이 있다. 흠이 많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덕분에 제 단점도 예쁘게 봐주시는 것 같다. 행운의 길을 걷고 있다. 강점은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었다. 너무 연기를 못해서 극단에서 대사가 없었다. 대사 연기를 못하니 못주신 거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5년 후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는데 사투리 연기나 할머니 연기 등으로 주로 무대에 섰다. 지금까지도 표준어 대사가 잘 안돼서 한참 동안 훈련을 계속해왔다. 못하는 것들을 발전시켜왔던 지난한 시간이었다. 현재도 단점은 있지만 개선하고 발전시켜 나가면 된다. 좋은 글을 만나면 얼마든 노력할 수 있다. 

- 배우로서 지금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이나 큰 방향성은 무엇인가. 

▶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만날 때만 해도 40대 초반이었다. 당시 약간 힘들었던 배우였고 피해의식도 있었다. 그때는 나를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더이상 젊지 않고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에게 관심이 많아진다. 예전에는 책을 읽을 때 그 지식을 흡수하고 저만 생각했다면 지금은 세상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제가 하는 일에 대한 관심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들만 있었다면 지금은 다른 사람도 보이고 세상도 보인다. 사실 대본이나 시나리오는 결국 세상의 축소판 아닌가. 내가 연기하는 인물들이 결국 세상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인물이 대표성을 획득하려면 제가 어떤 표현들을 해야할까'하는 부분이 가장 큰 고민거리이다.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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