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담 ‘손 없는 색시’를 칼 구스타브 융의 심리학으로 바라보면?

김헌선, 김희선 2025. 4. 20.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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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문화] 채순화 구연 ‘배나무 배조주똘’ 각편을 예증삼아 ②
1967년 출범한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은 제주대학교 최초의 법정연구소라는 위상을 지니고 있다. 특히 학술지 '탐라문화'는 한국학술진흥재단 등재지 선정, 인문사회연구소지원사업선정 등 제주에 대한 연구를 세상을 알리는 중요한 창구 역할을 했다. [제주의소리]는 탐라문화연구원과 함께 '탐라문화' 논문들을 정기적으로 소개한다. 제주를 바라보는 보다 넓은 창이 되길 기대한다. 연재분은 발표된 논문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주]
'손 없는 색시' 민담을 바탕으로 제작한 AI 이미지 ⓒ제주의소리

제주 민담 '손 없는 색시'의 새로운 분석을 위해서 여기에서는 칼 구스타브 융의 마음 구조를 인용하고, 이를 통한 이야기 본질에 대한 탐구와 이야기 구조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융에 의하면 마음/영혼(psyche)은 의식과 무의식을 아우르는 존재다. 의식의 주체로 자아가 있고, 또한 행동양식이나 규범에 따라서 만들어진 외적 인격체인 페르소나(가면)가 의식에 존재한다. 한편 무의식의 내면에는 그림자나 콤플렉스, 아니마, 아니무스 등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대부분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의식의 수면 위에서는 인식되지 않는다. 그림자는 개인이 자라난 친밀한 사회적 환경에서 대부분 인정될 수 없기에 어두운 내적 인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융(1959)에 따르면, 그림자가 활성화되면, 대개 투사를 통해 그것은 감정과 결부되어 증폭되며, 자아의 통제를 벗어나게 된다. 무의식에는 심혼에는 그 중심에 자기 (Self, 참자아)가 원형으로 존재한다. 무의식의 그림자와 콤플렉스를 들여다보고 더 깊숙이 자리 잡은 참자아를 깨달음으로 자아와 궁극적 합일하는 자기실현 또는 전인격화(individuation)과정이 융 심리학의 전체적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위에 전제한 융의 분석심리학적 방법을 내세워서 '손 없는 색시'에 대한 해석을 시도해 보면 다음과 같다. 

'손 없는 색시'의 기본 얼개는 상처받은 치유자로 상정된 소녀의 저승 여행 이야기라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두 번의 임신이다. 첫 번째 임신은 외부에 의해서 투사된 '음해된 잉태'이며 이는 장차 이루어지게 될 실제적인 잉태와 대립하는 것이다. 외부에서 의해서 투사된 강박적인 음해는 일종의 그림자이고 새로운 여행을 준비하는 여정의 단서가 된다. 투사된 외부의 잉태와 스스로 이룩한 자아의 심층적인 재생적 잉태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라고 하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민담에서는 처녀의 손이 남에 의해서 절단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손을 잘랐다고 구술되는데, 동일한 유형 대부분의 각 편에서 주로 아버지라고 하는 존재에 의해서 손이 잘려지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권력을 가진 남성에 의해서 잘려지는 것과 달리 이 각편에서는 여성 스스로 손을 자르고 위대한 탐험을 전개하는 것이다. 그 여정은 심혼에 의한 무의식적 원형 탐험과도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주인공이 집을 나서면서 동행하는 존재이다. 소녀가 어릴 적에 입던 옷인 배내옷을 뿔이 오그라진 암소에 실어서 가는 것이다. 이는 '태초의 원형을 가지고 가는 것'을 의미하며, 아울러서 뿔이 구부러진 것은 '힘을 잃은 다친 영혼의 상징'이라고 하는 점에서 이 주인공의 모습이 상처 입은 영혼인 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소를 몰고 가다 부잣집의 나무에 올라가 앉음으로써 현실 세계에서 비현실 세계로 진입한다. 큰 나무에 올라가 있는 처녀의 존재를 셋째 아들이 발견하게 되고, 아들의 방 병풍 뒤에 숨어서 둘은 새로운 행로를 펼쳐나가게 된다. 아들의 어머니가 내준 시험에서 처녀의 '배내옷'이 도령의 '도포'로 전환된 것은 새로운 비약을 향한 존재의 전환이 이루어졌음을 암시한다. 

저승 여행의 첫 번째 위기 단계는 결국 '임신과 편지'라고 하는 사건으로 점철되어 있다. 임신은 새로운 생명의 형태로 된 것이다. 편지는 세상과의 소통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생명의 형태는 거듭하여 왜곡되고 비틀어지게 된다. 타인에 의해 전달되는 형태의 왜곡은 새로운 전환에 대한 온전한 전달이 불가능한 점을 내포한다. 온전하지 못한 나와의 소통이 이루는 과정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편지의 내용이 뒤바뀌는 현상은 세상과의 소통할 수 없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왜곡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음에 주목할 만하다. 여기서 잠시 '재생(reincarnation)'과 '재탄생(rebirth)'을 구분할 필요가 있는데, 종국에 재탄생을 추구하지만, 여기에서는 온전하게 그 과정이 충실하게 이행되지 않는다. 자신만의 독자적인 존립이 아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단계의 저승 여행은 주인공이 도령의 집에서 쫓겨나오고 헤매다 꿈에 생모를 만나는 대목에서 두드러지게 된다. 깊은 태고의 상징인 어머니를 꿈에서 만남으로써 그녀는 일정하게 전환의 조짐을 준비하게 된다. 그러나 소중한 아이를 느슨하게 업고 씻는 바람에 아이가 연못에 빠지나 그 순간 떨어지는 아이를 안자 잘려진 그녀의 팔이 다시 생겨난다. 자신의 생명체적 전환이나 재탄생을 향한 무언의 메시지가 여기에 있다. 아이를 단단하게 동여매서 업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를 느슨하게 업고 있으며, 이는 아이에 대한 깊은 애착이나 탐착이 아니라고 하는 점을 분명하게 한다. 꼭 동여매지 않았기에 오히려 그것이 기회가 되어 아이와 자신이 거듭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두 번째 저승 여행에서 얻은 새로운 진전이면서 동시에 재탄생의 과정이 더욱 두드러지는 점을 보인다. 소녀에서 처녀로, 처녀에서 색시로 전환하면서 온전한 성장을 하기에 이른 셈이다. 

세 번째의 저승 여행은 현실로 복귀하는 점을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채순화가 구연한 '손 없는 색시' 각편은 현실 세계와 비현실 세계가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현실 세계에서 비현실 세계로, 비현실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의 전환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무의식의 세계가 그러하듯이 꿈과 현실이 분간되지 않듯이 이 이야기에서 그러한 전환이 수시로 이루어지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색시가 꿈을 깨고 보니 커다란 기와집에 있었고, 그곳에서 이른바 잔치를 벌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의 전통적인 이야기에서 잔치를 통해서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판소리에서 보이는 풀이와 놀이의 구성 속에서 잔치가 주목되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변사또 생신 잔치, 심봉사 맹인잔치 등을 비롯하여 제주도 본풀이에서 보이는 계와씨(걸인) 잔치 등이 주목할 만한 것이라고 하는 점이다. 결국 집단적인 놀이의 잔치이며, 모든 멍에를 가지고 있는 존재와의 해후를 통해서 이를 객관화하고 사회적 소여나 기여로 전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두 번에 걸친 저승 여행을 한 인물이 다시 세계로 확장하면서 새로운 존재로 전환하는 특성을 보이는 점에서 잔치는 주목할 만한 것이다. 자기 합일이라고 하는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여하는 데서 진정한 공동체적 이바지하게 되는 것이 확인된다. 

제주도의 채순화 구연본 '손 없는 색시'는 저승 여행의 과정을 통해서 자기실현의 새로운 존재로 전환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저승 여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참나'를 찾아가는 심층적인 여행임을 알 수가 있다. 그러한 점에서 종래의 견해와 다른 분석심리학적 관점에서 제주 민담의 새로운 해석에 의의를 두는 바이다. 아울러 민담의 제주도적인 특수성과 세계적인 보편성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 앞으로 폭넓은 연구가 필요하다 하겠다.

이 글은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학술지 '탐라문화 제70호(2022)'에 '제주 민담 「손 없는 색시」의 심층심리학적 해석'라는 제목으로 실은 논문을 [제주의소리]에 싣기 위해 정리 요약한 것입니다.

참고문헌

김헌선, 『설화연구방법의 통일성과 다양성』, 보고사, 2009.

이부영, 마음의 구조와 기능, 『한국민담의 심층분석』, 집문당, 1995.

현용준, 『제주도민담』, 도서출판 제주문화, 1996.

Carl Gustav Jung, Symbol der Wandlung, Grundwerk C. G. Jung Band 5, Par.495.

C.G. Jung, The Archetypes and the Collective Unconscious. The Collected Works of C.G. Jung, Vol 9, Part I. Routledge, 1959. 

Marie-Louise von Franz, Problems of the feminine in fairytales, Spring Pubns, 1973.

김헌선
국문학자,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김희선
심층심리학자,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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