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별 따기’ 의사 선생님 계신 날 [전국 인사이드]

박서화 2025. 4. 2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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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몰된 땅은 마을을 동서로 품는다.

매일 반가운 얼굴을 보여주던 의사 선생님은 이제 날을 맞춰 가야 만날 수 있다.

"그거 맞춰서 가는 것도 일이야. 매일 무릎 아프지, 어지럽지, 다리 아프지, 또 우리 애는 장애가 있어. 의사 선생님 없는 날 사고라도 날까 봐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 김옥순씨(가명·78)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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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서울보다 큽니다. 전국 곳곳에서 뉴스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지역 언론인들이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소식을 들려드립니다. ‘전국 인사이드’에서 대한민국의 가장 생생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주민이 버스 정류장 인근에서 도보로 귀가하고 있다. ⓒ박서화 제공

수몰된 땅은 마을을 동서로 품는다. 춘천 시내에서 화천을 지나 춘천으로 다시 들어가는 굽이진 도로.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의 봄은 소양호 뱃머리를 따라 겨울 낮의 햇살처럼 아득하게 온다.

배차 간격조차 정해지지 않은, 덜컹이며 달리는 마을버스, 가장 가까운 병원까지 가려면 이마저도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산골. 행정복지센터 오른쪽에 자그맣게 설치된 보건지소는 이곳 주민들이 아픈 몸을 의지하는 중요한 장소다.

의대 입시가 한국 사회 능력주의의 상징이 되면서, 그리고 농촌 의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면서 이곳 주민들의 삶에도 변화가 생겼다. 매일 반가운 얼굴을 보여주던 의사 선생님은 이제 날을 맞춰 가야 만날 수 있다. 주민들에게는 또 과제가 생긴 셈이다. “그거 맞춰서 가는 것도 일이야. 매일 무릎 아프지, 어지럽지, 다리 아프지, 또 우리 애는 장애가 있어. 의사 선생님 없는 날 사고라도 날까 봐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 김옥순씨(가명·78)가 말했다.

공중보건의들 ‘현역병으로 입대하겠다’ 

재난의 결과가 불평등하듯, ‘의료 공백’도 젠더와 계급의 틈을 파고들었다. 이동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장애가 있거나 아픈 가족을 돌봐야 하는, 고된 가사와 농사일을 병행해야 하는 농어촌 여성들에게 ‘의사 감소’의 여파는 더 가혹했다. “9시10분에 집에서 나오면 버스가 언제 오나 보다가, 병원 들렀다가 집에 오면 벌써 해가 져. 대학병원에서는 검사하러 왔다 갔다 하지, 수술받은 데는 맨날 아프지··· 허리 아픈 거랑 어지러운 거, 이런 건  의사한테 하나도 말도 못하고 와.” 박미자씨(가명·85)의 굽은 허리에서 아픔이 읽혔다.

“한국의 일차 의료는 이미 민간 의료기관으로 충분하다.” 누군가는 쉽게 말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삶으로 증명한다. 그것은 틀린 명제다. 강남 3구 출신이 의대 입시를 장악하는 시대, 수도권의 특권을 발판 삼아 의사가 된 이들은 더 이상 주민의 삶을 돌보지 않는다. 의료와 사람의 삶 사이 거리는 멀어진다. 그럴 때일수록 자꾸 생각한다. 쪼그리고 앉아 나물을 다듬다 무릎이 상하는 삶, 서울에 간 자식을 걱정하다 홀로 속병이 난 노년의 시간을, 이들을 돌볼 의료를. 

매년 3월 말이면 지역에는 한바탕 큰 소란이 벌어진다. 공중보건의 배치가 그 주인공이다. 더 달라는 지역과 못 준다는 정부. 급기야 올해는 ‘현역병으로 입대하겠다’는 공중보건의들의 주장까지 나왔다. 어지러움 속에서 공중보건의 제도의 시발점을 떠올린다. “농어촌 등 보건의료 취약지의 주민에게 보건의료를 효율적으로 제공하게 함으로써 국민의 의료 균점과 보건 향상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1980년 제정된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에는 이렇게 써 있다. 

이곳 북산면이 서울 시민들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이토록 험준한 지형을 가지게 됐듯, 지금 ‘열악함’을 겪는 지역은 최첨단 의료서비스가 넘쳐나는 서울의 그림자처럼 생겨났다. 한국이라는 국가가 ‘국가’로 발돋움하던 시기에 생겨난 이 제도는 발전 과정의 착취와 불평등을 수습하는, 일종의 ‘달래기’였을 테다. 그러나 모두가 서울로 향하는 시대, 국가와 전문가는 체제 유지를 위한 양심마저 포기한 채 주민의 삶을 방치한다. 농어촌에는 고른 의료(의료 균점)도, 보건 향상도 없다. 계급적 특권을 주장하는 이들의 엄포와 여기에 절절매는 정부의 촌극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집단적 무능과 타락의 대가를, 언제까지 주민들이 고통으로, 목숨으로 치러야 한단 말인가. 

박서화 (〈강원일보〉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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