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5선 ‘명태균 작업 여론조사’ 덕 봤나
홍준표 “명태균 본 적 없다” 부인… 2014년부터 ‘교류’ 정황 여럿
“명태균 범죄에 연루됐다면 정계 은퇴하겠다.”
6·3 대선 출마를 선언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2025년 3월14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면서 홍 전 시장의 항변이 옹색해지는 의혹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홍 전 시장과 명태균씨가 10여 년 전부터 인연이 있었던 정황이 드러난 것에 더해, 홍 전 시장 쪽이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명씨에게 여러 차례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최측근인 박재기 전 경남개발공사 사장이 이 비용을 ‘대납’했다는 정황이 담긴 문건이 한겨레21 취재 결과 확인됐기 때문이다.
21대 총선 여론조사비, 측근에 비용 청구 문건 입수
홍 전 시장은 그동안 ‘명태균 게이트’ 연루 의혹과 관련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명씨가 실질적으로 운영한 미래한국연구소의 여론조사는 박 전 사장이 개별적으로 한 것이고, 본인은 몰랐다는 취지로 설명한 바 있다. 특히 명씨에 대해선 “명태균과 한 번이라도 만난 일이 있었어야 여론조작 협잡을 하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홍 전 시장의 발언과 다른 증거와 증언이 속속 나오고 있다. 우선 홍 전 시장 쪽이 과거 여러 차례 선거 과정에서 미래한국연구소에 여론조사를 의뢰한 사실이 확인됐다. 한겨레21이 단독 입수한 미래한국연구소의 여론조사 비용 청구서 세 장을 보면, 청구서는 모두 대구 ‘수성을’ 지역에서 2020년 3월과 4월 초 이뤄진 여론조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비용을 청구하는 내역을 적시하고 있다. 미래한국연구소가 이 지역에서 시행한 여론조사 횟수는 모두 7건(공표 2건, 미공표 5건)이다.
2020년 4월 총선 당시 홍 전 시장은 고향인 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 지역구 공천을 신청했지만,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공천관리위원회는 홍 전 시장에게 수도권 험지 출마를 요청했다. 이에 홍 전 시장은 한발 물러서 경남 양산시을 지역구 공천을 신청했지만, 컷오프됐다. 홍 전 시장은 이후 2020년 3월15일 미래통합당을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할 지역을 물색했고, 대구 수성을 지역구에 최종 출마해 이인선 당시 미래통합당 후보를 2.74%포인트 차로 가까스로 누르고 5선 의원이 됐다.
이 과정에서 홍 전 시장 쪽이 명씨에게 의뢰해 대구 수성을 지역구 여론조사를 홍 전 시장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만들었다는 증언이 나온 것이다. 당시 공표·미공표 여론조사를 진행한 미래한국연구소의 회계책임자였던 핵심 제보자 강혜경씨는 한겨레21과 만나 “홍 전 시장 쪽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 금액을 최측근인 박 전 사장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현금으로 받았다”며 “‘유권자 성향 분석’을 통해 여론조사를 홍 전 시장에게 유리하게 만들었다”고 증언했다. 미리 유권자의 성향을 분석한 표본을 바탕으로 홍 전 시장이 이기는 여론조사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얘기다. 한겨레21은 미래한국연구소 내부 자료를 통해 홍 전 시장이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출마를 검토한 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 지역구와 경남 양산시을 지역구, 대구 수성을 지역구의 유권자 ‘성향 분석’ 자료가 존재하는 것을 확인했다.
김태열 전 미래한국연구소 소장도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홍 전 시장 여론조사를 시행하고 그 비용은 박 전 사장에게 직접 현금으로 받았다. (홍준표 당시 후보) 선거사무실 위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면서 돈을 받았다. 청구서가 있으면 그걸 가지고 가서 받았다”며 “받은 돈이 500만원일 때도 있고, 1천만원일 때도 있었다. 워낙 자주 가서 방문 횟수는 세세히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전 소장은 특히 2020년 3~4월께 여론조사 결과를 들고 명씨와 함께 홍 전 시장 사무실에 갔을 때 명씨가 직접 홍 전 시장에게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하는 장면도 봤다고 증언했다. 김 전 소장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의원 후보(홍준표) 방이 있었다. (명씨와 박 전 사장이) 그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며 “명씨가 박 전 사장과 함께 들어가서 여론조사 결과를 설명했다”고 말했다. 명씨를 만난 적도 없다던 홍 전 시장이 명씨에게 여론조사 결과를 대면으로 보고받은 순간이 포착된 것이다.
2022년 보궐선거 앞두고 1억원 돈거래도
홍 전 시장 쪽과 명씨의 관계가 단발성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정황도 여럿 드러났다. 홍 전 시장 쪽이 명씨에게 전달한 돈이 ‘윤석열 부부 공천 개입 의혹’에 연루된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의 2022년 6월 경남 창원의창 보궐선거에 쓰였다는 증언도 나온 것이다. 한겨레21이 확보한 김태열 전 소장의 증언과 관련 통화 녹취 등을 종합하면, 명씨는 2022년 6월 경남 창원의창 보궐선거를 앞두고 홍 전 시장의 최측근인 박 전 사장에게 5천만원씩 모두 1억원을 받았다.
첫 번째 5천만원은 명씨가 2021년 말~2022년 초께 박 전 사장에게 직접 현금을 받아서 강씨에게 줬다. 김 전 소장은 “(첫 번째 5천만원은) 명씨가 박 전 사장에게 돈을 빌려왔다면서 현금다발을 쇼핑백에 넣어서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5천만원은 김 전 소장이 명씨의 부탁을 받고 2022년 4월4일 홍준표 당시 대구시장 후보 선거사무실에 찾아가 박 전 사장에게 직접 받았다. 김 전 소장은 “(두 번째 5천만원은) 명씨가 박 전 사장에게 돈을 부탁해놨다고 빨리 가서 받아오라고 했다. 5천만원짜리 수표 한 장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 전 소장은 이어 “명씨가 ‘박 전 사장이 차용증을 써달라고 하면 써주라’는 취지로 말해서 내가 차용증 1억원어치를 써줬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받아온 1억원 가운데 5천만원은 김 전 의원의 예비후보 시절 선거 자금으로 쓰였다. 앞서 이 보궐선거 국민의힘 공천에 윤석열 부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윤석열의 육성 녹음파일과 함께 제기된 바 있다. 강씨는 “명씨가 (박 전 사장의 돈을) 쓰라고 지시했고, 이로 인해 박 전 사장의 돈이 김 전 의원 선거 운동 초기 비용으로 들어갔다”며 “김 전 의원 쪽이 선거 비용으로 쓴 5천만원은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홍 전 시장 쪽과 명씨의 돈거래를 보면, 명씨가 2020년 4월 총선 때 홍 전 시장에게 유리한 결과를 담은 여론조사를 해주고 이를 빌미로 이후에도 계속 홍 전 시장 쪽으로부터 돈을 빌렸으며, 이 돈으로 김 전 의원의 국회 재입성을 도우면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측근 비용 대납, 정치자금법 위반 소지”
이들의 관계는 정치자금법 등의 위반 소지가 있다. 장윤미 변호사는 “선거캠프 자금이라는 건 딱 정해진 법의 범위 내에서 집행하고, 여론조사를 의뢰했다면 회계 장부에 남도록 해야 하는데 제3자가 그것을 납부했다면 정치자금법 위반 소지가 매우 농후하기 때문에 수사는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도 “측근(박 전 사장)이 알아서 여론조사 비용을 내고 의뢰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홍 전 시장 캠프에서 의뢰를 했는데 측근이 대납한 것이라고 하면 정치자금법 위반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명씨도 이러한 점을 잘 알고 홍 전 시장 쪽을 압박하며 돈을 제대로 갚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통화 녹음 파일을 들어보면, 박 전 사장이 강씨에게 전화해 돈을 갚으라고 독촉하고, 강씨가 명씨에게 전화해 이를 전하자 명씨는 “박 전 사장 ○○ 닥치고 좀 내년 3~4월까지 있으라고 해”라며 “(계속 독촉하면) 선거법 위반으로 (홍 전 시장을) 고발한다고 하라”라고 말하는 음성이 확인된다.
홍 전 시장과 명씨 , 김 전 의원은 모두 의혹을 부인했다. 홍 전 시장 쪽은 “취재에 응할 답변이 없다. 당사자(박 전 사장)에게 확인하라”고 답했다. 명씨는 “박 전 사장한테 현금을 주거나 받은 적 없다. 수표를 어디에 썼는지도 모른다”고 부인했고, 김 전 의원 역시 “전혀 맞지 않는 얘기다. 나는 정말 고지식하고 정직한 사람이다. 만원짜리 한 장도 빠짐없이 법대로 썼다”며 “그 돈이 나한테 들어와서 내 선거에 썼다는 흔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박 전 사장은 답변을 해오지 않았다.
홍 전 시장과 명씨의 인연이 10년을 넘어간다는 증언도 있다. 10년 전 경남도지사로 재직하던 홍 전 시장이 명씨가 운영하던 업체와 수의계약 형태로 일감을 준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경상남도 누리집에 게시된 계약정보를 확인해보면, 2014년 2월 경남도는 ‘2014년도 고객만족도 조사 용역’ 사업을 ‘좋은날리서치’와 수의계약을 한다. 좋은날리서치의 대표는 명씨다. 경남도는 2015년에도 ‘2016년 직원 메모용 수첩 제작’ 사업을 ‘좋은날디자인연구소’와 수의계약을 했는데, 이 업체 대표자는 명씨의 배우자 이아무개씨로, 역시 명씨가 실질적으로 운영하던 업체다. 강혜경씨는 한겨레21과 만나 “홍 전 시장과 명씨는 2014년 이후 경상남도의 정책 여론조사와 수첩 제작 용역을 수주하며 알게 된 오래된 사이”라며 “2020년 4월 총선 출마 검토 때 지역구마다 명씨의 미래한국연구소가 여론조사를 진행해줬다. 홍 전 시장은 명씨와 관계가 가장 깊은 정치인 가운데 한 명”이라고 말했다.
2014년, 홍준표-명태균 연찬회 참석 사진도
명씨의 배우자도 명씨가 2014년부터 홍 전 시장과 인연이 있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배우자 이씨는 2014년 3월21일 창원의 한 호텔에서 열린 ‘창조경제 시이오(CEO) 아카데미 조찬회’와 같은 해 12월4일에 열린 ‘정기연찬회’ 등 행사에 홍 전 시장과 명씨가 함께 참석한 사진을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2016년 좋은날디자인연구소가 발행하던 잡지 ‘생활과 건강’의 1·2월호 표지모델로 홍 전 시장이 등장하기도 했는데, 이를 두고 명씨의 배우자 이씨는 2025년 2월23일 페이스북에 “신랑(명씨)이 발행한 생활과 건강 2016년 표지모델ㅋㅋㅋ 입 아파서 말 안 할란다”라고 쓰기도 했다. 앞선 2월21일 홍 전 시장이 페이스북에 “나는 명태균 사깃꾼에게 지난 대선 후보 경선 때 여론조작을 당한 피해자일 뿐”이라는 글을 올리고 이틀이 지난 시점에 올라온 글이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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