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비처럼 쏟아지는 새 콘텐츠…‘과잉 소비’가 일이라면? [.txt]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1. 넷플릭스를 켠다. 2. 뭐 볼지 계속 고민한다. 3. 지쳐서 넷플릭스를 끈다. 넷플릭스든 디즈니플러스(+)든 티빙이든 오티티(OTT,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 들어가면 이런 과정을 겪곤 한다. 리모컨을 든 채로 삼십분 넘게 고민하다 피로감만 얻고 결국 아무것도 못 보고 마는. 많아도 뭐가 너무 많아서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티티 결정장애를 겪는 이런 증상을 ‘넷플릭스 증후군’이라 부른다 하니 나만 그런 건 아닐 테다. 넷플릭스 증후군은 일종의 현대병인가?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티빙, 디즈니플러스, 애플티브이(TV), 애플뮤직, 유튜브 프리미엄 등 온갖 오티티를 동시에 구독하는 사람을 아는데 송지언(가명)씨다. 나는 그가 온갖 콘텐츠를 소비하는 일로 일상을 채운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도 수시로 어떤 영화나 드라마가 좋았는지 묻고 바로 본다. 참고로 나와 지언씨는 종종 보는 사이. 집에도 간 적이 있다. 언제나 그달의 신간이 열권 정도 거실 탁자에 쌓여 있다. 나는 그가 정말 신기한데, 학령기가 안 된 아이 둘을 양육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빨리 재우는 날은 책이나 오티티를 보다가 잠든다. 혼자서 키우는 건 아니지만 어떻게 두 아이를 돌보면서 이 많은 것을 볼 수 있을까?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다양하고 많은 콘텐츠를 전투적으로 소비하는 ‘헤비 유저’다. 송씨의 일은 오티티 회사에서 콘텐츠를 큐레이션하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그의 ‘일’이 궁금했다.
송씨의 일과는 아침 9시에 출근하면서 시작된다. 가장 먼저 전날 시청 데이터를 분석한다. 어떤 콘텐츠가 인기를 끌었는지 살펴보고, 이를 반영해 큐레이션 전략을 조정한다. 오전에는 신규 콘텐츠 큐레이션을 기획하고, 테마별 추천 리스트를 구성한다. 팀원들과 모여서 메인 페이지 편성 방향을 논의하고, 국내외 트렌드를 분석해 콘텐츠 배치를 조정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다. 메인 페이지나 테마별 추천 리스트 등은 일주일에 한번 주기로 바꾼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눈과 귀를 세상 쪽으로 항상 열어두어야 하는 일. 보지도 않고 알지도 못한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새로운 콘텐츠는 날마다 ‘드롭’(drop)되므로 날마다 보아야 한다. ‘신제품을 떨어뜨린다’는 것으로 추정되는 ‘드롭’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세계가 또 있을까. 매일같이 무자비하게 많은 영상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처럼 쏟아지는 영상물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빗방울에 살해되지 않게 조심한다는 브레히트의 시가 떠올랐다. 오티티 큐레이터에게 세상의 모든 것들이 큐레이션 대상이라면 내게 세상의 모든 것들은 비유의 대상이므로.
오전에 하는 일만 들어도 녹다운이 될 듯한 피로가 몰려오는데, 송씨의 오후는 어떻게 편성되는가? 새로운 콘텐츠를 확보하거나 신규 배급사와 협의를 진행하는 게 주요 업무다. 인공지능(AI) 추천 알고리즘을 조율하고, 에이/비(A/B) 테스트를 진행하는 일도 있다. 에이/비 테스트란 조건을 달리한 뒤 시청자가 어느 쪽에 더 반응하는지 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프로그램의 대표 이미지인 섬네일에 인물이 한명 있는 쪽과 여러명 있는 쪽 중에 어느 쪽이 더 인기 있는지를 본다든가. 에스엔에스(SNS)와 커뮤니티에서 사용자 피드백을 확인하고 이를 큐레이션 전략에 반영하기도 한다. 보통 저녁 6시나 7시쯤 퇴근하지만, 콘텐츠 업계 특성상 집에서도 자연스럽게 다른 오티티 플랫폼을 분석하거나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업무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들 대개는 어느 정도 콘텐츠 소비자이면서 생산자(에스엔에스나 댓글 등으로)이기 마련이지만 송씨는 생산과 소비 모두 극대화된 경우다. 과잉 공급과 과잉 생산이 끊임없이 순환하는 세계랄까. 어떤 콘텐츠를 소비하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더니 사회적 관심과 개인적 취향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 한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할 수밖에 없어요.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콘텐츠가 있더라도 업무적으로 모든 장르를 확인해야 하니까요. 퇴근 후 보는 콘텐츠도 결국 업무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고요. 그래야 새로운 트렌드를 발견하거나 특정 장르가 흥행하는 패턴을 파악할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아트하우스 영화, 다큐멘터리, 트렌드를 반영한 콘텐츠 위주의 소비를 하고 있어요.”
영화관을 자주 가느냐고 물었더니 송씨는 “아이러니하게도 매우 자주 가요”라고 했다. 이유는 세가지였다. 온전한 집중을 위해, 오티티 시장에 풀리게 될 미래의 콘텐츠 발굴을 위해, 그리고 개인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언어와 문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송씨는 이야기와 사람의 행동 방식에 관심이 많다. 요즘의 그는 일주일에 한번 영화관에 갔던 대학생 때보다 더 자주, 더 밀도 있게 영화관에 간다. 밀도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묻자, 하루에 세편을 연달아 보기도 한다고 했다. 극장에서 쓸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고, 극장마다 하는 영화가 다르므로 한 극장에서 내리 보는 게 아니라 시간표를 촘촘히 짜서 극장을 옮겨 다니기도 한다고. 취향과 별개로 모든 장르를 체크하고, 관심이 없더라도 주요 타이틀은 꼭 챙겨보고 있다는 말을 듣고 영화 기자나 영화 평론가의 일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그는 ‘콘클라베’ ‘브루탈리스트’ ‘승부’ ‘아노라’ ‘로비’ ‘플로우’ 등을 봤다.
그렇게 직접 본 영화나 콘텐츠가 큐레이션과 어떤 식으로 관계 맺는지, 큐레이션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인공지능의 도움을 어떤 식으로 받는지 물었다.
“직접 본 콘텐츠가 많을수록 큐레이션이 풍성해지고 다양해져요. 단순히 어떤 테마에 따라 하는 것과 직접 본 작품을 기반으로 할 때 완성도가 확연히 달라집니다. 큐레이션은 여러 요소를 고려해 진행해요. 계절별로 적합한 콘텐츠를 추천하거나, 인기 콘텐츠와 유사한 작품을 연결해주기도 하고요. 사회적 이슈나 트렌드를 반영한 테마를 기획해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시청 경험을 제공하는 것도 목표예요. 인공지능 분석을 활용해 개인 맞춤 추천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으로 자동화한 시스템으로 나온 결과를 보면 상당히 피상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묘하게 주제를 벗어난다거나…. 그래서 인간의 손을 꼭 거쳐야 하더라고요.”
지금 계절이나 시즌을 고려해 편성한 콘텐츠가 이를테면 어떤 것인지 물었다. 봄이 배경인 요리와 정원을 다룬 것들이 떠오른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소개하고 싶은 타이틀이 나오거나 수상작들이 나오면 역대 수상작 위주나 연관되게 편성하기도 한다고. 개인적인 관심사가 부딪힐 때는 어떻게 조율하느냐고 물었다. 다른 팀원들의 ‘취향은 건드리지 않으려고 한다’는 조심스러운 답을 얻었다. 다른 팀원도 송씨의 취향을 존중할 것이다. 그렇게 소우주가 여럿 모이고 중첩되기도 하면서 만들어진 게 내가 보고 있는 오티티 메인 화면이라고 하니 기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입자 수가 느는 게 회사에서의 수익 창출일 텐데, 큐레이션 업무에서는 그걸 증명하기가 어려울 듯해요. 이 일에서 ‘일을 잘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송씨는 이렇게 말했다. 큐레이션 업무에서 성과를 증명하는 건 쉽지 않지만, 추천한 콘텐츠의 시청률이 상승하고, 플랫폼 내 체류 시간이 증가하며, 사용자 만족도가 높아지는 걸 보면 ‘일을 잘하고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고. 구독자인 나는 어떤 프로그램을 볼지 몰라 선택 장애를 겪고 있는데 오티티 큐레이터는 ‘좋은 시청 경험’과 ‘만족감’을 추구한다니 이 또한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세계가 닿기란 정말 힘든 일인 것이다.
외부적 요인들이 큐레이션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물었다. 이를테면 정치 상황 변화 같은 것도 영향을 주는지.
“오티티 시장은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아요. 검열이나 규제 변화, 글로벌 오티티들의 전략 변화, 경제 상황 등이 모두 구독자 증가와 수익 창출에 영향을 미치고요. 그래서 스포츠 등 라이브 콘텐츠 확보 경쟁부터 시작해 각종 스캔들, 정치 상황, 재난 상황까지 다양한 이슈에 늘 귀를 기울이고 대응하려고 해요. 특정 인기 콘텐츠의 판권 종료 소식이나 예상치 못한 논란도 큐레이션 전략에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들면, 한 배우의 스캔들로 인해 관련 콘텐츠가 갑자기 화제가 되기도 하고, 정치적 이슈로 인해 다큐멘터리나 뉴스 콘텐츠의 수요가 급증하기도 해요. 이런 변수들을 빠르게 알아채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예요.”
인터뷰하지 않았더라면 송씨의 일이 이토록 세상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이 일의 보람이 뭐냐고 물었다. 고충을 말해도 좋겠다고 말했다. 고충과 보람은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니, 이 일의 고통과 즐거움에 대해서 말해달라고 했다.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데이터 기반 추천과 감성적 큐레이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거예요. 인공지능 추천이 점점 정교해지면서 인간이 기획하는 큐레이션의 차별점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이 커요. 갑자기 뜨는 콘텐츠에 빠르게 대응해야 하고, 좋은 콘텐츠가 있어도 라이선스 문제로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서 답답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사용자가 예상치 못한 콘텐츠를 추천받고 만족할 때나, 큐레이션한 콘텐츠의 이용률이 높을 때는 정말 큰 보람을 느껴요. 어쩌다 큐레이션한 무협물이 중장년 남성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 걸 보고 세대별, 사용자별로 감응할 콘텐츠를 발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지막 질문을 할 차례였다. 오티티 회사에서 큐레이션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결국, 오티티 큐레이션 담당자의 역할은 단순히 콘텐츠를 나열하는 게 아니라 사용자가 어떤 콘텐츠를 보고 싶어 할지 예측하고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트렌드를 읽고, 데이터를 분석하며, 플랫폼의 전략 방향까지 고민해야 하는 복합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일은 세상의 무수한 데이터와 콘텐츠를 보면서 트렌드를 발견하고 인간 마음의 패턴을 이해하는 일이었다. 사람과 세상 사이에 픽셀로 이루어진 다리를 놓는 일이라고 해도 좋겠다. 답은 언제나 사람 사이에 있다.
한은형 l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해 장편소설 ‘거짓말’ ‘레이디 맥도날드’와 경장편소설 ‘서핑하는 정신’, 소설집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 산문집 ‘밤은 부드러워, 마셔’ 등을 썼다. 월급사실주의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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