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딛고 싸우는' 안양-부천, K리그에 이야기 더한다[김성수의 가드오브아너]

김성수 기자 2025. 4. 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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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김성수 기자] 구구절절한 사연은 듣는 사람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그 사연의 주인공들이 한판 승부까지 벌인다면, 이를 두 눈으로 보고 싶은 마음은 커질 수밖에 없다.

올 시즌 K리그에서는 아픈 사연의 맞대결이 두 번이나 있었다. 이들의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호기심과 분위기는 리그 입장에서 두 팔 벌려 반길 일이다.

악연으로 얽힌 FC서울을 리그에서 처음 만난 FC안양의 팬들. ⓒ프로축구연맹

부천FC는 지난 16일 경기도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5 하나은행 코리아컵 3라운드 제주 SK와의 홈경기에서 1-0으로 이기며 16강에 진출했다.

K리그에는 '연고 이전'이라는 키워드로 악연을 맺은 팀들이 있다. 대표적인 관계가 FC안양과 FC서울, 그리고 부천과 제주의 사이다.

코리아컵에서 맞붙은 부천과 제주 사이에는 되돌릴 수 없는 깊은 앙금이 있다. 원래 부천을 연고지로 하던 SK 축구단이 2006년 부천을 떠나 제주로 연고지 이전을 했기 때문. 당시 부천을 떠나는 과정에서 많은 잡음이 있었고 그 앙금은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았다.

이후 부천에는 시민축구단인 부천FC가 생겨났다. K리그2까지 참가했지만, 제주가 줄곧 K리그1에 있었기에 대결이 성사되지 않았다. 하지만 제주가 2020시즌 K리그2로 강등되면서 같은 무대에서 만나게 됐고 드디어 두 팀 간의 사상 첫 대결이 열렸다.

하지만 결과는 너무나도 일방적이었다. 제주는 2020시즌 K리그2 소속 당시 부천과 3번의 리그 맞대결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다. 특히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두 차례 원정경기에서 모두 이겼다(2020.05.26 1-0 승, 2020.09.19 2-0 승). 부천 입장에서는 한스러운 결과였다.

두 팀이 관중 앞에서 맞붙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2020년 당시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무관중 경기로 열렸다. 마침내 경기장에서 제주를 마주하게 된 부천 팬들 입장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기다린 경기. 부천 현장 취재진 숫자 역시 평소의 홈경기의 몇 배를 이뤘다.

부천 팬들은 경기 시작 전부터 리그 경기 때보다 더 우렁찬 목소리, 더 활발한 깃발 응원으로 선수단을 맞이했다. 이어서 킥오프와 함께 펼친 걸개의 메시지는 '우리는 남았고 부천은 살아남았다'였다. 응원하던 팀이 다른 곳으로 떠났지만, 남아 있던 팬들이 지금의 부천FC를 만들었다는 의미. 이후에는 "연고 이전 반대"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어느 때보다 전의를 불태운 부천은 후반 40분에 터진 결승골 덕에, 반드시 이겨야 했던 제주와의 대결에서 네 번 만에 승리하며 환호와 함께 코리아컵 16강으로 향했다.

제주 SK에게 메시지를 전하며 열띤 응원전을 펼치는 부천FC 팬들. ⓒ부천FC

교통체증이 없을 시, 상대의 경기장에 자동차로 약 30분이면 닿을 정도로 가까운 FC안양과 FC서울도 사실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다. '연고 이전'과 '연고 복귀'라는 말을 앞세워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두 팀의 시간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도 안양종합운동장을 홈으로 쓰던 안양 LG는 2004년 서울로 갑작스레 연고를 옮기고 FC서울로 이름을 바꿨다. 안양 축구 팬들은 하루아침에 응원 구단을 잃은 것. 그 팬들이 이후 9년 동안 결집해 한 목소리를 내며 만들어낸 시민구단이 바로 2013년 창단한 FC안양이다. 그렇기에 서울을 향한 안양의 마음은 고울 수가 없었다. 반면 FC서울은 단순 연고 이전이 아닌 프로축구연맹의 서울 연고 공동화정책에 따른 안양으로의 연고 이전과 서울로의 연고 복귀가 사실이라고 말한다. 두 구단의 의견 일치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동안 설전이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직접 맞부딪힐 일이 많아졌다. 안양이 2024시즌 K리그2 우승으로 구단 역사상 첫 K리그1 승격을 이루면서 올 시즌 K리그1에서 서울과 최소 3번의 맞대결을 확정 지었다. 2017년 FA컵에서 서울이 안양을 2-0으로 꺾은 게 두 팀의 사상 첫 맞대결이었으며, K리그에서는 지난 2월22일 경기가 첫 만남이었다. 당시 서울이 안양에 2-1 승리를 거뒀다.

두 팀의 갈등에서 나온 열기는 2월의 추위 속에서도 뜨거웠다. 서울은 킥오프와 함께 북측 서포터즈 석에서 '1983'이라고 적힌 카드섹션 응원을 펼쳤다. 1983년은 서울의 전신인 럭키금성 황소의 창단 연도. 1996년부터 2003년까지 안양에 연고를 뒀던 안양 LG의 역사마저 서울 구단의 역사라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이를 본 안양 팬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들은 킥오프와 함께 부르기 시작하는 응원가인 '청년폭도맹진가'의 가사를 개사해서 '저 북패의 주검을 보리라'고 외쳤다. 북패는 '북쪽의 패륜'을 줄인 FC서울의 멸칭. 안양 입장에서 팬들을 저버리고 북쪽으로 도망가 팀을 만들었다며 FC서울을 지탄하는 표현이다. 본래 상대 팀명이 들어가는 자리에 멸칭이 들어간 것. 경기 초반부터 이뤄진 양 팀의 신경전은 뜨거운 응원전으로 90분 내내 이어졌고, 이날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은 공식 관중 4만1415명은 여전히 올 시즌 K리그 단일 경기 최다 관중 기록으로 남아있다.

FC안양에 대응하는 FC서울의 '1983' 카드섹션 응원. ⓒ스포츠한국 김성수 기자

역설적이게도 아픈 역사에서 시작한 라이벌 관계는 K리그 최고의 흥행 카드 중 하나가 됐다. 수원 삼성, 인천 유나이티드의 K리그2 강등으로 수도권 라이벌을 잃었던 서울은 안양의 승격 덕에 관중몰이를 할 수 있는 수도권 경쟁 체제를 다시 구축했다. 안양 입장에서도 승격으로 인한 팬 증가에 서울과의 이야기까지 더해져 승격 첫해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부천과 제주의 라이벌리 역시 부천의 K리그1 승격 시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절절한 이야기에서 시작돼 현장에서 뿜어나오는 분위기는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관련 팀들의 맞대결이 잦아지게 되면서 이전까지 관심 없던 미디어조차도 앞다퉈 보도했고, 축구를 다루는 유튜버들은 좋은 컨텐츠 재료를 얻었다. 새로운 축구팬의 유입도 결국은 호기심에서 시작하는데, 질긴 악연으로 묶인 팀들이 바로 눈앞에서 펼치는 맞대결은 너무나도 흥미로운 볼거리일 수밖에 없다. 2년 연속 유료관중 300만명을 돌파하고 꾸준한 관중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K리그에게도 '효자 매치업'이다.

이영민 부천 감독은 제주와의 경기 전 취재진과 만나 "팬들이 간절히 기다린 경기다. 부천FC가 없어지지 않는 한 이날의 경기 결과는 팬들에게 영원히 남을 것"이라며 맞대결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 감독의 말처럼, 구단이 없어지지 않는 한 앙금은 '꺼지지 않을 불꽃'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아픔에서 출발한 라이벌 관계는 앞으로도 축구팬 유입에 너무나 좋은 '불쏘시개'로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제주 상대로 터진 이의형의 결승골 직후 환호하는 부천 팬들. ⓒ스포츠한국 김성수 기자

-김성수의 가드오브아너 : 축구선수들이 경기장 입장 통로 양 옆으로 도열해 주인공에게 박수를 보내며 축하를 전하는 의식. 대상의 무용담을 언급하며 잘한 건 칭찬하겠다는 칼럼입니다.

 

스포츠한국 김성수 기자 holywater@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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