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김영환씨 고문 항의에 동북 3성 한국 정보요원 명단 들이댔다

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 2025. 4. 20.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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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기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56회>]
중국 공안부장 방한했으나 고문 문제는 제기 안해
이명박 정부, 성난 여론에 뒤늦게 재발방지책 요구
중국은 오히려 정보요원, NGO, 종교단체 추방 협박
2년후 박근혜 정부서 ‘체포시 접견 보장’ 영사협정 체결

<지난 주 ‘中 서해 불법 구조물을 보면서 떠 올리는 김영환씨 전기고문’에 이어 계속됩니다.>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씨에 대한 전기고문 사건은 2012년 7월 30일 하금열 대통령실장이 국회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하겠다”고 한 후에야 소극적인 입장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뒤늦게 “중국 정부가 수감 중인 우리 국민 625명에 대한 가혹 행위가 있었는지 전수 조사를 하겠다”는 발표도 나왔습니다.

방한한 중국 공안부장 특별대우

하금열 실장이 당시 국회에서 이같이 발언해야 할 정도로 김영환씨 사건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대중(對中) 저자세’는 질타를 받았습니다. 당시 청와대는 김영환씨 사건에 대해 가급적 문제를 확대시키지 않는 ‘로키(low-key)’로 대응한다는 기조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2년 7월 13일 청와대를 예방한 멍젠주(孟建柱) 중국 공안부장과 환담하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당시 중국 공안의 김영환씨 고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이에 항의하지 않고 그의 석방만 요청, 논란이 일었다./청와대

더 정확히 말하면, 사건을 축소하려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외교부의 한 국장급 간부는 “김영환씨 사건에 대해 청와대에서 적극 대응하라는 지시가 없다. 사건 추이를 잘 알려고 하지 도 않고, 특별한 지시도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중국의 공안부장 방한 당시 있었던 일입니다. 김영환씨가 구금중인 상황에서 멍젠주(孟建柱) 중국 공안부장이 7월 12일 방한했습니다. 멍 부장은 장쑤(江蘇)성 당서기를 거쳐 2007년 공안부장에 임명됐습니다.

멍 부장은 부패 혐의로 몰락한 보시라이(薄熙來) 충칭시 서기 사건의 여파로 저우융캉(周永康) 정법위원회 서기가 실각할 경우, 후임에 임명될 것이라는 평을 받고 있었습니다. 공안부장도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지만, 정법위원회 서기는 중국의 공안· 정보기관·법원·검찰 등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는 ‘공안사령탑’ 역할을 하는 자리입니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멍 부장을 특별대우했습니다. 그는 2박 3일간의 방한 기간 중 이 대통령을 예방하고 김성환 외교부장관을 만났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권재진 법무부 장관, 한상대 검찰총장, 김기용 경찰청장도 만났습니다. 국정원 안가에서 원세훈 국정원장도 별도로 면담했습니다.

중국의 부총리급 국무위원이 대통령 외에도 외교·안보·정보 분야의 수장을 모두 만난 것은 이례적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중국의 공안부가 경찰업무 외에도 법무, 정보, 출입국 관리, 테러 예방 등 포괄적인 업무를 담당한 데다가 그의 정법위원회 서기 승진 가능성을 고려, 특별대우를 했습니다.

멍 부장은 김성환 외교부장을 만나 국가안전위해 혐의로 중국 공안에 체포된 김영환씨 등 한국인 4명의 석방에 대해 “한중관계 등을 감안해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2012년 3월 김씨 일행이 중국 공안에 의해 체포된 후 중국의 고위 관리가 김씨 신병 처리에 대해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방한 당시 우리 정부 고위 관계자들 중 누구도 김영환씨 고문 사건에 대해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선양총영사관 영사가 6월 11일 2차 접견 때 중국 공안의 고문을 인지하고, 주중대사관을 통해서 이에 항의했지만 정작 멍 부장방한때는 이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외교부장관,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정원장이 잇달아 김영환씨를 고문한 중국 공안의 책임자를 만났지만, 그의 석방만 요청한겁니다.

‘고문’ 대신 ‘가혹행위’로 표현

정부의 이같은 소극적인 대응은 김영환씨가 중국에서 풀려나 7월 20일 입국한 지 5일만에 자신이 고문받은 사실을 공개하면서 논란이 됐습니다. 7월 27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는 민주당 홍익표 의원과 김성환 외교부 장관 사이에 이런 말이 오고 갔습니다.

중국에 불법구금돼 전기고문을 받았다가 풀려난 김영환씨가 2012년 7월 30일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조선일보

홍 의원 " (7월 12일) 멍젠주 중국 공안부장이 한국에 왔을 때 (중국에 구금됐던 북한 인권 운동가) 김영환씨 문제를 논의했었나?"

김 장관 “그의 석방 문제에 대해서는 얘기했다.”

홍 의원 "멍 부장은 공안부장이기 때문에 김씨에 대한 고문에서 사실상 책임 있는 당국자 아닌가?"

김 장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홍 의원 “그런데 아무 문제 제기 안 했나?"

김 장관 “당시는 김씨 석방이 급했기 때문에 석방 문제를 제기했고, 가혹행위는 중국 외교부에 쭉 제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멍 부장에게 제기하지 않았다.”

홍 의원 외에도 여야(與野) 의원들이 번갈아가며 김씨에 대한 ‘고문’을 질의했지만, 김 장관은 ‘가혹행위’라는 표현으로 답변했습니다. 김씨가 고문당한 사실을 이미 전 달에 파악해 놓고도 “사실 확인 중”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자 정치권에서 “중국이 선처(善處)해 주기만을 바라는 것이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중국내 한국단체 법대로 처리하겠다”

방한했던 중국 공안부장에게 김영환씨 고문에 대해 항의 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좋지 않아지자 정부는 뒤늦게 중국에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명박 정부가 이 문제를 크게 다룰 의지가 없음을 간파한 중국은 오히려 강경하게 나왔습니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은 동북3성에서 활동하던 우리나라의 정보요원들의 명단을 우리 측에 들이댔다고 합니다. 북한 동태 파악, 탈북자 문제를 위해 지린성(吉林省)·랴오닝성(遼寧省)·헤이룽장성(黑龍江省)에서 비밀리에 활동하던 정보요원들을 모두 추방할 수 있다는 협박이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의 NGO(비영리 민간단체)와 종교 단체의 활동을 ‘법대로’ 처리하겠다고 했습니다. 한국 단체 활동을 제한하고 추방하겠다는 입장을 시사한 겁니다.

이명박 정부는 김영환씨 문제가 한중 외교마찰로 번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했습니다. 2011년 12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로 정면 충돌, 일본과 외교적으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한중 관계마저 위태롭게 되는 것을 피하려 했습니다. 북한 핵 문제를 비롯한 여러 현안에서 중국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판단도 있었습니다.

외교부 안팎에서 중국에 대한 유약한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이명박 정부 말기에 만연해 있던 ‘중국 예외주의’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2012년 9월 베이징에서 제14차 영사국장 회의를 갖고 상대국 내 체류하는 자국민의 권익 보호를 위해 양국 외교부에 ‘영사 핫라인(Hot line)’을 만들기로 합의하는데 그쳤습니다. 외교부는 우리 국민의 보호를 위해 영사 접견 보장을 명시하는 영사협정 체결을 요구했으나 중국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2014년 7월 3일 박근혜 대통령과 방한한 시진핑 주석이 지켜보는 가운데 윤병세 외교부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한중 영사협정에 서명하고 있다. 중국은 김영환씨 고문사건 2년 후에야 영사협정 체결에 동의했다./청와대

시진핑 방한 때 영사협정 맺어

중국은 이명박 대통령이 물러나고 중국에 호의적인 입장의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후에야 영사협정 체결요구에 응했습니다.

2014년 7월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방한을 계기로 한중 영사협정이 체결됐습니다. 한중 영사협정은 ①상대 국민 체포, 구금시 본인이 요청하지 않더라도 4일 이내 영사기관에 통보 ②영사접견 신청 4일 이내 접견 보장 ③상대국민 사형 선고,집행,변경시 즉시 통보 등 3개 항이 핵심내용입니다. 중국이 영사협정을 준수한다고 전제한다면, 김영환씨 사건처럼 대한민국 국민을 장기간 불법 구금하며 고문할 가능성을 배제한 겁니다.

우리 국민이 불법 체포된 상태에서 50㎝의 전기봉으로 ‘살이 타는 냄새’를 맡을 정도의 전기 고문을 받은 사건은 아무런 사과도 받지 못한 채 2년 후에야 영사협정 체결로 이어졌습니다. 이 사건은 지금도 외교부에서 언급을 꺼려하는 ‘외교 흑역사’ 사례 중의 하나로 기록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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