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숨통, 지금 끊어내지 않으면 나라 곳간 무너진다 [쓴소리 곧은소리]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 2025. 4. 19. 13: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청년수당부터 공항 유치까지, 선심성 공약이 재정 건전성 흔들어
표심만 좇는 정치권의 말잔치에 국가 신용 추락 경고 현실화된다

(시사저널=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

이제 또 하나의 드라마가 시작됐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눈 뜨고 코 베이는 세상 아닌가. 재주 좋은 정치인들이 국민연금을 상대로 보기 좋게 '포장 갈이'를 했다. 개악을 개혁이라며 어쩌면 그렇게 그럴듯하게 포장을 잘했는지, 고작 수급 시점을 8년 늦추는 걸 두고 '개혁의 성과'라고 자화자찬한다. 돈을 더 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국민 모두가 더 받을 수 있다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 내놨다는 묘수가 고작 이거다. 결국 내 지갑에서 나가는 돈이 아니니, 누가 억울하든 말든 신경 쓸 필요 없다는 식이다.

안 하느니만 못한 포장 갈이는 과연 이번 대선에서 끝날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이제야말로 진짜 '질러보기 전쟁'이 시작됐다.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준다는 식의 공약 릴레이가 국민의 눈과 귀를 홀리고 있다. 그런데, 그 돈은 다 어디서 나오는가? 에라 모르겠다. '내 돈 내 산'도 아니고, '국민 돈 국민 산' 아닌가. "세금이 알아서 해결해 주겠지" "일단 당선부터 되고 보자"…. 정치권은 그렇게 신나게, 손쉽게 질러댄다.

ⓒ챗GPT 생성 이미지

포퓰리즘, 그 화려한 사기극

청년기본소득, 노인수당 확대, 육아지원금, 그리고 온갖 명목의 현금 살포. 이건 유권자를 위한 경쟁이 아니다. 국가 재정을 담보로 한 인기투표에 불과하다. 포퓰리즘 경쟁이 만들어내는 가장 큰 위험은 바로 국가 신뢰의 추락이다. 무디스, S&P, 피치 같은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벌써 몇 차례 경고장을 날렸다. 한국의 재정 건전성과 지속 가능성에 구멍이 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치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돈은 돌고 도니까 괜찮다"는 식의 안일한 자기암시가 판을 치고 있다. 그 결과가 어떤 파국을 불러올지, 알고도 외면하는 태도다.

이대로 가면, 한국도 언젠가는 그리스처럼 국가 신용 위기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IMF 악몽의 재현은 더 이상 가정이 아니다. 특히 조기 대선처럼 정국이 혼란스러울수록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정책의 일관성과 책임감은 실종되고, 정치권은 오로지 표심을 자극하기 위한 현금성 공약을 쏟아낸다. 국민의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은 넘치지만, 그 공약이 어떻게 실행될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포퓰리즘은 정권을 잡기 위한 수단일 뿐이고, 국가의 지속 가능성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이미 재정의 균형추는 무너졌다. 2025년 현재 대한민국의 국가채무는 1200조원을 넘어섰고, GDP 대비 채무비율은 55%를 초과했다. 고령화와 저출산은 복지 지출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고 있고, 동시에 조세 기반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무분별한 현금성 지출은 미래세대에게 고스란히 짐으로 전가된다.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 유럽의 그리스는 포퓰리즘이 불러온 재정 파탄의 교과서적 사례다. 막대한 보조금과 무상복지를 남발하던 이들 국가는 결국 고물가, 대량 실업, 국가 신뢰 추락이라는 파국을 맞았다. 모두가 가난해지는 길을, 아주 쉽게, 다 같이 손잡고 걸어간 것이다.

포퓰리즘이 무서운 이유는 단순한 재정 악화 때문만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품격과 이성을 갉아먹는 데 그 본질적 위협이 있다. 국민의 판단력은 공짜에 길들여지고, 정치인은 표를 얻기 위해 장기 전략 대신 즉흥적인 인기몰이에 몰두한다. 이 구조는 결국 국가 경쟁력을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무너뜨린다.

진짜 지도자는 '줄일 줄 아는' 사람 

국가 운영은 인기 경연대회가 아니다. "누가 더 많이 줄 수 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멀리 보고 미래를 지킬 수 있느냐"를 따져야 할 때다. 재정 건전성은 단순한 경제지표를 위한 조건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 삶의 안전망이며, 미래세대의 기회이고, 국가 신뢰의 기반이다. 한번 무너진 재정 신뢰는 회복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린다. 재정은 단순한 회계 수치가 아니다. 국가의 신뢰, 국민의 복지, 미래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 핵심 자원이다. 재정은 곧 국가 운영의 뼈대다. 이 뼈대를 함부로 흔드는 정치 세력은 단기적 유혹에 눈이 멀어, 나라를 서서히 병들게 할 뿐이다.

정치권과 유권자 모두 각성해야 한다. 선심성 공약이 국가 신뢰를 얼마나 위협하는지 직시해야 하며, 무책임한 돈 풀기 경쟁에 더 이상 박수를 보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줄이겠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정치인이 필요한 때다.

이번 조기 대선 국면에서도 돈 풀기 공약(公約)에 쉽게 현혹되는 심리를 악용한 각종 공약(空約)이 난무할 것이다. 국민 모두에게 현금을 주겠다는 복지 경쟁, 전국 각지에 수많은 공항과 고속도로 신설, 지역 부동산 개발, 관광단지 조성, 산업단지 설립, 국가 기술지원 프로젝트 등. 수백조원이 들어가는 공약들이 순식간에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문제는, 돈을 조달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말잔치로 끝나겠지만, 그럴듯한 백일몽 드라마는 꽤 멋지게 연출될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가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그 돈, 도대체 어디서 나옵니까?" 이 질문이 나올 때, 포퓰리즘은 멈추고 책임정치가 시작된다. 빚의 축제는 언제나 고통의 청구서로 돌아온다. 지금도 누군가는 당신의 자녀에게 그 청구서를 넘기고 있다.

이제 재정 문제를 '국가의 명예'와 연결된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국제사회는 우리를 '조용히 부상한 선진국'이 아니라, '재정 기강이 흔들리는 불안한 경제 체제'로 다시 평가할 수 있다. 그런 변화는 자본 유출과 금리 상승, 취약계층에 대한 직격탄으로 이어진다.

정치권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재정은 언젠가 감당할 수 있다"는 막연한 낙관은 허상이다. 감당할 수 없을 때까지 방치된 부채는 결국 폭탄처럼 한순간에 터진다. 지금은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에게 불편한 진실을 말하고, 구조조정과 선택적 복지를 꺼낼 수 있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진짜 지도자는 '줄이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포퓰리즘의 대가들은 "돈 구하는 방법"을 너무 쉽게 말한다. 하긴, 한국은행에서 돈 찍어서 나눠주면 된다고 믿는 이들도 있다. 결과는 자명하다. 물건 하나 사려고 지폐를 수레에 실어 나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눈을 감고 있다. 눈 뜨는 자 없는 세상은, 결국 아이들에게 지옥문을 열어줄 뿐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