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예술, 사유의 순간

서정민 2025. 4. 19.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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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열리는 사진전
흔히 사진을 ‘찰나의 예술’이라고 부른다. 사진가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 정지해버린 장면의 명징하고도 아름다운 찰나가 한 편의 시(詩)처럼 수많은 감정과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4월의 봄날에 시작하는 두 개의 사진전이 우리를 그 신비한 찰나의 순간으로 초대한다.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풍경이지만 인간의 욕망 때문에 곧 사라질지 모르는 찬란하고 위대한 지구의 모습을 담은, ‘기억’과 ‘시간’을 주제로 인간을 둘러싼 모든 섬세한 관계와 조화를 이야기하는 사진들과 함께 봄날의 시 한 편을 떠올리길.

라그나르 악셀손의 북극 풍경. [사진 충무아트센터]
이달 22일부터 8월 24일까지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기후환경 사진전 ‘2025 CCPP-더 글로리어스 월드(The GLORIOUS World)’가 열린다. ‘CCPP (Climate Change Photo Project·기후환경 사진 프로젝트’는 세계적인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사진을 매개로 환경변화에 직면한 인류에게 공감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기획된 프로젝트다. 지난해 열렸던 ‘컨페션 투 디 어스’ 사진전에 이어 올해 두 번째 프로젝트 ‘2025 CCPP-더 글로리어스 월드’를 준비했다.
대자연과 문명의 대비, 극명한 지구의 오늘
‘고요한 찰라의 시인’이라 불리는 펜티 사말라티의 작품. [사진 공근혜갤러리]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예술감독으로 전시를 총괄한 석재현 예술감독은 “‘컨페션 투 디 어스’가 아름답지만 위태로운 지구의 모습을 보여주며 환경문제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면, ‘더 글로리어스 월드’는 사진의 예술성과 감성적 터치를 통해 삶의 실천을 독려하는 데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국제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아이슬란드, 이탈리아, 벨기에, 미국 출신의 작가 4명이 참여했다. 이들의 사진은 접근하기 어려운 지구의 극한 지역과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대자연, 그리고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현대인의 모습을 함께 담아내면서 지구가 맞닥뜨린 기후환경 위기를 함께 고민하기를 제안한다.

전시 면면을 보면 우선 아이슬란드 사진기자협회에서 20회 이상 수상하고 ‘올해의 사진가’로 네 차례 선정된 라그나르 악셀손의 작품 46점이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그는 지난 40여 년간 아이슬란드, 시베리아, 그린란드 등 북극의 외딴 지역에서 사람, 동물, 자연을 기록해 온 동시대 최고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그의 흑백 사진은 북극의 척박한 환경에서 인간이 겪는 본질적인 경험을 생생하게 포착하면서 극지방 주민들과 그들이 직면한 전례 없는 급격한 기후 변화를 조명한다.

닉 하네스는 두바이 풍경으로 현대 문명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사진 충무아트센터]
매년 지구에서 가장 오염되지 않은 자연 서식지를 탐험하며 촬영을 이어가고 있는 이탈리아 작가 마르코 가이오티의 작품 24점도 국내 최초로 소개된다. 그는 서식지 파괴로 인해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을 기록하고 있는데, 동물들의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 아름다우면서도 충격적인 감정을 안긴다. 사진 속 야생동물들은 마치 가이오티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한 듯 관람객과 눈을 마주치는데, 그 모습이 사랑스러우면서도 애잔하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이 야생동물들의 평안한 일상과 안식처는 하루하루 망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벨기에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자 겐트 왕립예술학교 교수인 닉 하네스는 시각적 은유와 유머를 빌려 현대 사회의 정치적·사회적 이슈를 다룬다. 특히 1960년대 먼지만 날리던 무역지대에서 최첨단 도시로 변모한 두바이의 모습을 조명했는데 사막에서 스키를 타고, 고드름이 매달린 얼음카페를 즐기는 아이러니한 풍경들이 현대 문명의 극단적 양면성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2019년 서울 전시에서 플라스틱을 가득 물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새의 모습을 포착해 큰 반향을 남겼던 미국 작가 크리스 조던의 작품이 소개된다. 그는 지난 4년간 남아메리카 최남단 지역인 파타고니아에서 지내며 해안가의 미묘한 아름다움을 담는 ‘황홀한 폐허’ 시리즈를 작업하고 있는데 이번 전시에서 그의 최신작들을 볼 수 있다.

동갑내기 거장, 기억·시간을 이야기하다
자이언트 판다 서식지대를 촬영한 마르코 가이오티. [사진 충무아트센터]
공근혜갤러리에선 4월 25일부터 5월 31일까지 개관 20주년 기념 전시 ‘우리 둘(The Two of Us)’이 열린다. 현대 사진 예술을 대표하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포콩과 핀란드 작가 펜티 사말라티의 대표작들을 한자리에서 조명할 수 있는 자리다. 1950년생 동갑내기인 두 작가는 각기 다른 시선과 표현 방식으로 세상을 기록해온 사진계의 거장들이다. 이번 전시에선 ‘기억’과 ‘시간’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통해, 아날로그 방식의 컬러와 흑백 사진으로 깊이 있는 예술적 대화를 나눈다.

회화나 조각보다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사진 장르를 적극적으로 조명하며 현대미술의 중요한 한 장르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힘써온 공근혜갤러리의 공근혜 대표는 지난 20년간의 여정을 기념하는 전시에 두 작가를 초대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1996년 파리의 이봉 랑베르 갤러리에서 인턴을 할 때 포콩의 작품을 처음 보고 너무 감동 받았다. 서울로 돌아가면 꼭 전시를 열어 국내에도 알려야겠다 결심했고, 2003년에 포콩의 한국 에이전시를 맡으면서 2005년 공근혜갤러리도 문을 열었다. 펜티 사말라티는 인간적으로 너무 존경하는 작가다. 따뜻한 사진만큼이나 성품이 너무 따뜻하다. 늘 야외에서 혹은 암실에서 작업 중이라 이메일이나 전화를 해도 답을 받기까지 한참 걸리지만 일단 인연을 맺으면 무한한 신뢰를 보내준다.”

파타고니아 지역 해안가 풍경을 담은 크리스 조던. [사진 충무아트센터]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미장센 포토의 거장’이라 불리는 베르나르 포콩은 사진사에 연출(Mise-en-scene·미장센) 개념을 도입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1970년대부터 유년기의 기억과 낭만적인 판타지를 주제로 인형과 소년들을 등장시켜 영화적 장면을 연출하는 시리즈를 작업했다. 강렬한 색감과 자연의 빛을 활용해 현실과 꿈의 경계를 허물고 감성적인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그의 작품은 회화적 구도와 연출 사진 기법 때문에 회화·영상·뮤직비디오 분야에 이르기까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선 포콩의 작품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온 ‘여름방학’ 시리즈와 ‘사랑의 방’ 시리즈의 오리지널 빈티지 작품 총 20여 점이 전시·판매될 예정이다. 모로코 국왕이 소장한 1985년 작 ‘12번째 사랑의 방’도 전시된다.

베르나르 포콩의 ‘12번째 사랑의 방’. [사진 공근혜갤러리]
‘고요한 찰라의 시인’ 펜티 사말라티는 흑백 아날로그 사진을 통해 인간·자연·동물이 조화를 이루는 시적인 순간을 포착하는 작가다. 그의 사진은 북유럽과 몽골, 러시아 등을 여행하며 발견한 고독하고도 평온한 풍경을 담고 있다. 빛과 그림자의 섬세한 조화, 절제된 구도를 통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을 선사하는데 프랑스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사말라티의 사진은 하나의 시(詩)와 같다” 극찬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핀란드 국립미술관을 비롯해 여러 국제 미술관에 영구 소장돼 있다.

이번에 사말라티는 1m가 넘는 대형 사이즈로 직접 인화한 대표작들을 보내왔다. 유럽에서도 미술관이 아닌 일반 화랑에서는 보기 힘든 대형작들인데, 2016년 공근혜갤러리에서 전시를 열며 방한해 좋은 인상을 받았던 한국 관람객과 공근혜갤러리 20주년 기념을 위해 선뜻 자신의 대표작을 보내줬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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