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한 정신 없이 독립은 없다”…의열투쟁 선봉 ‘송촌 한훈’

성용희 2025. 4. 18.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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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전] [앵커]

광복 80주년을 맞아 잊혀지거나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독립지사들의 삶을 조명하는 기획보도 순서입니다.

오늘은 청양에서 태어나 열일곱 어린 나이에 독립운동에 투신해 20년 가까이 옥고를 치르며 일생을 대한 독립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 송촌 한훈 선생의 삶을 취재했습니다.

성용희 기자입니다.

[리포트]

"일본 경찰을 만나면 태연하게 거짓말을 한다.".

"옥중에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총을 겨눠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독립 투사들에게 거짓말 대장, 감옥 대장, 배포 대장으로 불렸던 남성.

송촌 한훈 선생입니다.

1889년 청양에서 태어난 한훈 선생은 17살에 홍주의병에 가담해 항일 운동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이후 신도안, 지금의 계룡시에서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한 비밀 결사를 조직했고, 전북 순창 헌병분대를 습격하는 등 무장 투쟁에 앞장섰습니다.

1920년에는 광복단결사대를 조직, 조선총독 처단 계획을 세웠습니다.

광복 직후 쓴 자필 이력서에서 선생은 민족의 진의를 전 세계에 표명하려 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일본 경찰의 사전 단속에 거사는 무산됐고, 길고도 처절한 옥중투쟁이 시작됐습니다.

[김혜진/한훈기념관 학예사 : "옥중에서도 절대로 동지들의 이름을 발설하지 않으시고 계속 단식투쟁을 하시면서 옥중투쟁을 (이어갔습니다.)"]

건강 악화로 9년 만에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났지만, 곧바로 군자금 모집에 나섰다가 다시 10년 형을 선고받습니다.

긴 옥고를 치른 뒤에는 계룡시에 은거하다 광복을 맞았고 이후 대한광복단 재건을 추진하며 독립 국가 수립을 외쳤습니다.

그러다 6.25 전쟁 당시 북한군에 피살되면서 굴곡진 생을 마쳤습니다.

선생이 여생을 보냈던 계룡시 집터에는 4년 전 기념관이 건립됐습니다.

독립한 정신 없이 독립은 없다.

한훈 선생은 진정한 독립이 정신과 사상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후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찾는 이의 발길이 많지 않습니다.

[황영준/한훈기념관 해설사 : "(평일) 오후에 대여섯 분, 열 분 이내로 오시는데 설명을 듣고 난 뒤에는 정말 이런 분이 여기에 계셨다는 것을 몰랐는데 너무 훌륭하시다."]

선생의 굽히지 않는 항일 투쟁 의지 뒤에서 굴곡진 삶을 살아야 했던 후손의 바람은 크지 않습니다.

[한상빈/한훈 선생 손자 : "독립운동한 분들에 대해서 잊지나 않고 많은 생각을 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다른 것은 없어요."]

KBS 뉴스 성용희입니다.

촬영기자:강수헌

성용희 기자 (heestor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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