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진열대 먼지만 가득···발길 닿지 않는 ‘마을박물관’

윤병집 기자 2025. 4. 1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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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북구 제전·달곡마을박물관
지역 전통 민속문화 보존 취지 불구
생업 전선 일부 주민 관리까지 맡아
전시물 유지 고충···훼손도 잇따라
2~3년 전부터 마을 회의실로 사용

전문기관 지원 등 전무···발전 한계
울산박물관 "대처방안 마련할 것"
울산 북구의 '제전마을박물관' 내부에 전시물 하나 없이 진열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마을의 역사와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울산지역 '마을박물관'이 관리 부실과 무관심 속에 사라지고 있다. 주민 자율에만 맡긴 채 전문적인 관리나 홍보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효용성을 잃은 탓인데, 마을 넘어 지역의 전통적인 민속문화를 남기는 장소인 만큼 보존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단 지적이다.

17일 찾은 울산 북구 제전마을. 드넓은 바다와 맞닿은 이 마을 중심부의 한 식당 2층은 마을의 역사와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제전마을박물관'이 지난 2017년 조성됐다. 하지만 취재진이 들러본 본 박물관 내부에는 전시물 대신 커다란 화이트보드와 나무탁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나마 남아 있는 텅 빈 진열대와 벽지에 발라진 마을 역사 소개문 등이 이곳이 박물관이었음을 짐작케 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본래 진열대에 있어야 할 전시물과 온갖 기자재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건물 외벽에 붙어 있어야 할 '마을박물관'이란 현판도 보이지 않았다.

북구 달곡마을 복지회관 2층에 위치한 또 다른 '달곡마을박물관'도 먼지만 가득 쌓인 채 관리되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김명찬 제전어촌계장은 "국립민속박물관 측의 권유로 원래 마을 회의실로 쓰던 공간을 개조해서 마을박물관으로 만들었는데, 마을 주민들이 직접 관리하다 보니 제대로 유지가 안 됐다"며 "한 2~3년 전에 전시물을 치워버리고 다시 회의실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전마을 소개문구가 화이트보드에 가려져 있다.

달곡·제전마을박물관은 '2017년 울산 민속문화의 해' 사업의 하나로 국립민속박물관이 울산박물관과 협업을 통해 마련한 것으로, 각각 농촌과 어촌이라는 '생업'에 방점을 두고 마을의 역사와 주민의 이야기를 담은 마을박물관이자 마을공동체 공간이다.

당시 국립민속박물관의 학예사들이 6개월~1년간 두 마을에서 생활하면서 마을의 역사와 주민들의 이야기를 조사·연구하고, 이를 기록하는 차원에서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 마을박물관을 만들었다.

전시 공간을 한정된 공간에 국한하지 않고 마을로 확장했고, 전시 자료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전시기획자와 주민 그리고 주민 간의 합의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한계점도 명확했다. 외부로부터 별도의 인적·금전적 지원이 전무하고, 명예관장과 객원큐레이터 등 일부 주민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크다 보니 장기적으로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21년 울산박물관협회의가 주관한 '제7회 공동 학술토론회'에서 이 같은 문제점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주제발표에 나섰던 우승하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사는 "마을박물관을 개관한 후 전시물과 전시장 관리, 관람객의 안내 등 운영 측면에서 명예관장과 객원큐레이터 등 일부 주민에 대한 의존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한데 이어 "전시물에 대한 훈증뿐만 아니라 재질별 특성에 따른 조도 및 항온항습 등이 구비되지 않았다. 마을박물관 내 전시물 훼손이 진행돼 시급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토론회에서는 국립민속박물관, 울산박물관, 울산시, 북구청 등 여러 유관기관의 지원이 전무하며, 마을박물관의 유지를 위해서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단 주장도 나왔다.

조규성 울산박물관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마을의 전통과 역사를 기록하고 남기는 것은 지역 전체의 민속문화를 파악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가치"라며 "빠른 시간 내로 마을박물관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적절한 대처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윤병집 기자 sini20000kr@ius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