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탄핵의 개운치 않은 뒷맛[전성인의 난세직필](37)
대통령 윤석열이 드디어 탄핵당했다. 그러나 작년 12월 3일 비상계엄부터 올해 4월 4일 탄핵 인용까지 약 4개월의 기간은 불필요하게 지연된 정의였고, 윤석열의 파면이라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이런 뒷맛을 깔끔하게 ‘설거지’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언제 또다시 위협받을지 모른다. 이하에서는 그 찝찝한 뒷맛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첫 번째 뒷맛은 ‘국회 봉쇄의 가공할 위험성’이다. 이번 비상계엄은 비록 ‘3시간 천하’로 막을 내렸지만, 돌이켜보면 그리 만만한 사건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적에 가까웠다. 국회의장 등 의장단이 검거되지 않은 채 본회의를 주재할 수 있었고, 190여명의 국회의원이 신속하게 본회의장으로 집결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만일 국회가 실제로 봉쇄돼 계엄이 해제되지 못했다면 친위 쿠데타 세력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획득했을 수 있다.
두 번째 뒷맛은 ‘헌법재판소 체제의 결함’이다. 윤석열에 대한 탄핵안이 의결되던 당시 헌재는 3인의 결원이 방치된 6인체제였다. 헌법재판관 한 명만 돌아서도 탄핵은 불발되는 상황이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2인의 헌법재판관을 선택적으로 임명한 후에도 아슬아슬한 상황은 계속됐다. 8인 중 3인만 반대하면 불발이고, 더구나 2명의 헌법재판관 퇴임이 예정된 상황에서는 1인의 반대만으로도 사태를 뒤엎기에 충분했다. 물론 결과는 사필귀정이었다. 그러나 결과와 무관하게 지난 4개월의 시간은 헌법재판소 체제가 그 맡은 바 소임에 비해 얼마나 취약하기 짝이 없는 조직인가를 잘 드러냈다.
공무원들의 교묘한 윤리의식 실종
세 번째 뒷맛은 ‘공무원의 윤리의식 실종’이다. 이번 비상계엄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군인들은 전체적으로 민주적 통제를 준수했다. 물론 몇몇 지휘관이 계엄을 주동하고 몇몇 부대가 현장에 출동하기는 했지만, 출동했던 병력이 실제로 실탄을 장전하고 대검을 착검한 채 민간인들을 적극적으로 장악해간 것은 아니었다. 이에 비해 공무원의 윤리의식 실종은 훨씬 교묘하게 진행됐고, 결정적으로 사태 해결에 악영향을 끼쳤다.
특히 한덕수와 최상목 두 대통령 권한대행은 헌법재판관 임명권을 정략적으로 행사하고, 윤 대통령의 내란죄 수사를 사보타지함으로써 사회 안정을 적극적으로 도모하기는커녕 오히려 불안정의 확산에 기여했다. 물론 헌재는 이들의 비상식적인 행위를 명확한 목소리로 질타했다. 최상목이 국회 몫 헌법재판관 1인을 선택적으로 임명 보류한 것은 명백한 위헌이고, 한덕수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 인정되는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한 행위에 대해서는 그 효력을 정지시켰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국회 몫 헌법재판관의 임명을 보류한 행위가 위헌이라고 헌재가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상목은 그 위헌 상태를 시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관 지명이 가로막히자 “지명이 아니라 발표”라고 둘러댄 한덕수도 다를 바 없다. 아무리 정무직이라고 하지만 한덕수와 최상목은 관료체제에서 잔뼈가 굵은 ‘늘공’들이다. 그런데 늘공들이 헌재의 위헌 판단을 대놓고 깔고 뭉개는 사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일까. 확실히 한국의 공직사회는 몰라보게 변했다.
네 번째 뒷맛은 ‘법원에 대한 물리적 압박 증가’ 현상이다. 판사가 발부한 체포영장이 경호처의 물리력 앞에서 휴지 조각이 되고, 폭도로 돌변한 시위대는 법원을 습격해 난장판을 만들었다. 물론 법원에 대한 어느 정도의 사회적 견제는 필요하다. 법관은 대표적인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견제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 견제가 물리력을 동반한 깡패의 패악질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법관은 판결로써 말하고 사회는 그 판결을 법률에 비추어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방식으로 견제를 하면 된다. 법관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비판의 차원을 넘어 린치의 수준으로 비화하는 순간 민주사회의 토대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
다섯째 뒷맛은 ‘진실 보도를 외면한 언론매체의 횡행’이다. 비상계엄의 빌미 중 하나인 ‘부정선거 의혹’부터 ‘국민을 계몽하기 위한 계엄’의 불가피성에 이르기까지 보수 유튜버를 중심으로 한 일부 언론매체의 진실 왜곡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은 것이었다. 이들은 진실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클릭 수와 그로부터 연유하는 대중에 대한 영향력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런 왜곡 보도가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또 다른 유사한 왜곡 보도와 접목되면서 진실의 왜곡은 가짜 팩트에 대한 확증 편향으로 증폭됐다.
물론 헌법은 우리 사회에 언론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허용했다. 그리고 그동안 언론은 자칫 폭주하기 십상인 국가의 공권력을 견제하는 민주사회의 보루로 간주됐다. 그러나 현재 일부 보수 유튜버가 보이는 정보 제공 행태가 과연 무절제한 국가 공권력의 견제 장치인지, 아니면 폭주 기관차에 땔감을 공급하는 기관사인지 곰곰이 고민해볼 때가 됐다.
한국 민주주의 복원력은 국민이 있었기 때문
마지막 뒷맛은 ‘이런 개운치 않은 뒷맛이 실제로 사회의 행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다. 지난 12월 14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만 해도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과 윤 대통령 파면을 의심하는 국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민주적 기본 질서의 보루라고 믿었던 시스템이 곳곳에서 균열을 보이고, 그 균열이 시간이 흐를수록 봉합되기는커녕 그 범위를 확장해 나가는 현실에 국민은 불안해했다.
그 불안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논리적 고리를 가지고 있었다. 국회를 통제할 수 있는 대통령은 거의 언제든지 비상계엄을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획득할 수 있고, 국회를 통제하지 못해도 헌법재판소만 통제할 수 있다면 탄핵을 통해 파면당할 위험성은 방비할 수 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를 통제하는 것은 너무나 쉬워 보인다. 위헌 시비를 무릅쓰고 국회 몫이나 대법원장 몫의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고 버티거나, 대통령 몫인 헌법재판관을 골수 친위대 중에서 임명하면 되기 때문이다. 헌재를 결원 체제로 만들거나 자신의 이해를 대변할 3명의 재판관만 확보하면 ‘만사 걱정 끝’인 것이다. 골수 지지층을 대변하는 유튜버 몇 명만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금상첨화고.
뒷맛의 결론은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어떤 폭풍도 이겨내는 탄탄한 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결국 폭풍을 이겨내는 것은 제도가 아니라 그 제도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국민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복원력을 보이는 이유는 민주적 질서가 잘 구비돼 있기 때문이 아니라 질서의 모순과 결함을 적극적으로 봉합하려는 국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전성인 전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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