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전동휠체어 2㎞ 직접 타봤더니…2㎝ '턱'도 높았다
"가게 앞 턱 때문에 차 한잔, 물 한병 못 사 먹는 현실"
(전주=연합뉴스) 나보배 기자 = '2㎝의 턱이 이렇게나 높았단 말이야?'
평소 전동휠체어 진행을 막는 방해물이 많을 것이라 예상했는데도 막상 직접 타보니 인도에는 생각보다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훨씬 많았다.
오는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기자는 지난 17일,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유승권 공동대표와 홍성란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직접 전동휠체어를 몰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체험할 거리는 유 대표가 매일 오가는 전라북도중증장애인자립생활연대 건물에서 그의 집까지 왕복 약 2㎞의 거리.
차를 타면 5분도 채 안 걸리고, 걸어서도 30분이면 충분한데 처음이라 그런지 55분이나 소요됐다.
장애인들이 일상에서 마주해야 할 '녹록지 않은 이동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55분 내내 기자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인도 곳곳의 '턱'이었다.
보통 인도와 이면도로가 만나는 지점에는 턱이 있다. 인도 끝부분의 턱을 낮춰 단차를 완만하게 했는데, 그렇다고 해도 턱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두 발로 걸어 다닐 때는 몰랐던 1∼2㎝ 높이의 턱이 휠체어를 탄 뒤에야 눈에 들어왔다. 단차를 낮추느라 만들어진 급경사로도 마찬가지였다.
"기자님. 속도를 조금 내야 해요. 겁 내면 턱을 넘질 못해요."
옆에서 길을 안내하던 유 대표의 말에 기자는 용기를 내 휠체어를 뒤로 뺀 뒤 앞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무사히 턱은 넘었지만, 충격이 온몸으로 전해지면서 엉덩이가 들썩였고 약간의 통증도 전달됐다. 무심코 '앗!' 하는 소리가 나왔다.
유 대표는 "자동차와 달리 휠체어 바퀴는 충격 흡수 장치가 전혀 없어 충격이 몸으로 그대로 전해진다"며 "이 정도 턱은 높은 것도 아니다"며 짐짓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장애인을 특히 괴롭히는 건 식당이나 편의점 문 앞에 있는 높은 턱"이라며 "길을 가면서 커피 한 잔, 물을 한 잔 사 먹고 싶어도 돈이 없는 게 아니라 가게 앞에 설치된 높은 턱을 넘을 방법이 없어 사 먹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난관은 화장실이었다. 유 대표의 집 앞까지 도착한 뒤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다행히 200m 거리에 인후3동행정복지센터가 있었다. 공공기관이니 장애인 화장실이 잘 갖춰졌을 거란 생각에 주저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지하에서 1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부터 쉽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입구가 좁아 조금만 바퀴를 옆으로 돌려도 문에 걸리기 일쑤였다.
바퀴를 미세하게 조정하는데 이번에는 문이 자꾸 닫히는 바람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기자를 바라보던 홍 활동지원사는 "위험할 수 있으니 문을 잡아주겠다"며 열림 버튼을 눌렀다.
기자가 "(제) 성격이 급해서 화가 나려고 한다"며 멋쩍어하자 홍 활동지원사는 "장애를 가지고 살기 위해서는 인내심도 길러야 한다"며 말을 보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 드디어 화장실을 갈 수 있겠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좁디좁은 화장실에 남은 인내심도 바닥이 날 지경이었다.
이곳 장애인 화장실은 설치 기준에 맞게 자동문과 대변기, 거울 등이 설치돼있었지만 휠체어를 한 바퀴 돌릴 수 없을 정도로 공간이 좁았다.
안전 손잡이에 기대 이리저리 전동휠체어 조이스틱을 움직여봤지만 가로 폭이 너무 좁아 움직이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유 대표는 세면대 옆에 놓인 청소도구를 바라보며 "아마 최소 규격에 맞춰 화장실을 조성한 것 같다"며 "그렇지 않아도 좁은 공간에 이런 도구까지 놓여있어 더 비좁아졌다"고 아쉬워했다.
체험은 전라북도중증장애인자립생활연대 5층 강당에서 종료됐다.
출발 전 전동휠체어 작동 방법을 배웠던 곳인데, 아무런 방해물도 없는 평평한 땅이 이렇게나 반가울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택배 트럭이 인도를 막아 5분 가까이 짐을 내리는 것을 기다려야 했고, 쌩쌩 달리는 오토바이 소리에 흠칫 놀라 자꾸만 멈칫하며 주변을 살피기도 했다.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을 피하느라 앞의 횡단보도를 보지 못해 자칫 신호를 어길 뻔하거나 횡단보도 정지선을 넘은 차를 피하느라 빨간불이 돼서야 겨우 횡단보도를 건넌 순간도 있었다.
유 대표는 "인도를 점령한 불법 입간판이나 아무렇게나 쓰러져있는 전동퀵보드 등 때문에 전동휠체어를 타기가 힘들다"며 "이런 방해물들을 피하느라 전동휠체어 방향 조정에만 신경 쓰다 보면 넘어지는 등 사고가 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동휠체어가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인도를 정비한다면 노인 등 교통약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장애인의 이동권을 위해 다양한 제도를 갖추고 서로 많이 배려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war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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