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의 경쟁력은 교감 능력
(34) 소통 단절 시대
“소통의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을 했다는 착각이다.”
-조지 버나드 쇼(1856 -1950)
최근 ‘사흘간의 황금연휴’라는 발표에 대해, 3일을 4일로 잘못 표기했다는 항의가 접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3일은 셋/사흘이고, 4일은 넷/나흘이기에 올바른 표현을 오해한 것이다. ‘금일 제출’이라는 과제 안내를 금요일 마감으로 착각한 대학생의 사연은 이제 흔한 이야기다. ‘심심한 사과’, ‘모집인원 0명’, ‘유선 문의’, ‘십분 이해’, ‘사서 반납’ 등등. 소통 오류를 일으키는 표현의 목록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이에 대한 원인으로 어휘력 부족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어휘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변한다. 한자와 영어에 익숙한 세대의 우열을 나누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소통은 상호작용이기 때문에 소통오류는 쌍방 문제다. 소통오류 중 가장 위험한 것은 소통했다는 착각이다. 정확한 정보가 아닌 오해를 기반으로 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창피를 당하는 정도는 가장 가벼운 부작용이다. 소통했다는 착각은 비행기 추락, 우주선 폭발, 원전 누출 같은 치명적 사고까지도 일으킨다. 소통하지 않았는데 소통했다고 착각하는 상황이 빈번해지는 것은 첨단 정보화 시대의 부작용이다.
지난 세기 말부터 시작된 정보 통신의 폭발적 발전은, 한 세대만에 우리 삶의 모습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불과 삼십년 전만 해도 정보는 낯선 단어였고, 통신은 접하기 어려운 기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구석구석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지구촌의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잠자리에 누워 손가락 하나로 정보를 확인하고 지구 반대편 주식 시장에 투자한다.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고, 배달을 시키고, 택시를 부른다. 이제 정보 통신망에서 단절된 삶은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런데 정보 통신이 발전할수록 소통 단절의 균열이 커지고 있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다양한 층위의 연결에서 벌어지는 소통 단절은 수많은 갈등과 충돌을 유발하고 있다. 우리는 정보화 시대와 소통 단절의 시대를 동시에 살아가고 있다.
소통 오류가 빈번해지는 근본적 원인은 정보 과잉과 소통 단절이라는 환경 변화다. 두 원인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밀접하게 연관되어 소통했다는 착각을 만들어낸다. 최근 급속히 발전하는 인공지능에서 정보 과잉과 소통 단절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우리 두뇌는 뉴런의 신호 연결망이다. 뉴런은 내외부의 이온 농도 차이를 이용해 신호를 전달한다. 이 농도 차이를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단백질 펌프가 쉬지 않고 작동한다. 간단히 말해 두뇌의 작동에는 한계가 있다. 정보처리 속도가 올라가면 실수가 많아지고, 정확하면 속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컴퓨터의 정보 처리는 빠르고 정확하다. 인공지능이 동작하는 고밀도 집적 회로의 전자 신호는 뉴런 신호보다 수백만배 빠르고, 디지털 기반의 정보처리는 실수도 없다. 거기에 전기만 공급해주면 일년 365일 쉬지도 않고 작동한다. 하지만 생성형 인공지능과 대화하면서 소통했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인공지능은 정보를 전달하지 소통하지 않는다. 내가 정보를 올바르게 이해를 했는지도 관심이 없다.
정보를 나누는 통신, 감정을 나누는 교감
인공지능은 집단 지성에서 일어난 지식 정보 진화의 결과다. 집단 지성이 다루는 정보는 전달이 전제다. 우주 삼라만상의 원리를 통찰해도, 혼자 아는 것은 비밀이지 정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보 전달에 성공하는 것과 소통에 성공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통신이 일방적 정보 전달이라면, 소통은 ‘뜻이 통하여 서로 오해가 없음’을 의미한다. 정보를 보낸 사람과 받은 사람의 생각이 동기화가 되어야 소통이 완료되는 것이다. 강의를 마치면 학생과 소통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시험을 채점하면서 혼자만의 착각이라는 것을 매번 확인한다.
정보는 미디어라는 매개체에 담겨 전달된다. 가장 대표적 미디어로 언어가 있고, 이외에 몸짓, 울음, 페로몬, 배설물 등 다양한 비언어적 미디어도 존재한다. 자연에 존재하는 미디어는 같은 시공간에 있는 대상에게만 전달 가능한 한계를 지닌다. 하지만 문명에서 이루어지는 정보 전달은 문자의 발명으로 시공간의 한계를 초월하게 되었다. 문자의 가장 큰 특징은 서열 미디어라는 것이다. 서열이란 순서대로 기호를 연결해서 정보를 담는 미디어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한글은 자모 24개, 영어는 알파벳 26개 기호를 연결하여,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고, 글이 되어 정보가 담긴다.
정보화 시대의 대표 미디어는 디지털이다. 전보의 발명으로 시작된 초기 정보 통신에서는 모르스 부호가 사용되었다. 전송 환경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서열을 구성하는 기호가 많으면 오류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0과 1로만 구성되는 서열을 디지털 정보라고 한다. 디지털 서열은 정보 보관 측면의 안정성도 높다. 따라서 문자, 음성, 영상 등 다양한 정보가 디지털 서열로 전환되어 기록되고 전파된다. 저렴하고 빠르고 정확한 디지털 통신 기술의 발전은 빅데이터(big data)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빅데이터는 인공지능의 탄생으로 연결된다. 디지털 회로에서 동작하는 인공지능은 디지털 정보로만 학습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정보에는 치명적 약점도 있다. 첫째는 모든 정보 미디어의 디지털 변환은 불가능하다. 특히 비언어 미디어는 대부분 디지털 변환이 불가능하다. 둘째는 디지털화가 가능한 정보라도 예외적 다양성은 변환 과정에서 모두 버려진다. 감정에 관련된 정보는 이렇게 걸러지고 버려진다. 정보의 동기화가 통신이라면 감정의 동기화는 교감이다. 통신이 언어나 문자 등의 서열 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진다면, 교감은 비언어적 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인공지능의 정보 전달에서 소통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인공지능은 소통을 학습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교감에 관련된 정보가 소거된 디지털 정보로 학습된 인공지능은 정보 과잉과 교감 단절의 표상이다.
인공지능과 교감이 되지 않는 이유
인공지능과 반대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 반려견이다. 개는 정보단절과 교감과잉의 표상이다. 개는 언어를 통한 정보 전달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주인의 감정에 항상 동기화 되어 있다. 개의 뛰어난 교감능력은 감정을 처리하는 변연계의 비정상적인 발달 덕분이다. 그리고 이것은 교감에는 비언어적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개는 주인의 표정, 목소리의 톤, 숨소리, 행동, 땀과 숨결의 냄새를 통해 교감한다. 교감을 통해 형성된 공감은 소통에 영향을 미친다. 나의 공감대가 형성된 반려견과는 말이 통하지도 않음에도 소통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이다. 반대로 교감이 불가능한 인공지능과는 소통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소통은 통신과 교감의 상호작용으로 일어난다. 통신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고, 교감을 통해 정보의 동기화를 확인하는 것이다.
개는 인공지능처럼 엄청난 학습을 하지 않아도 교감능력이 뛰어나다. 태어나면서부터 두뇌에 각인이 되어 있다. 인공지능은 지능을 모방하는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데이터로는 인공지능을 아무리 많이 훈련시켜도 교감 능력의 모방이 어렵다. 대신 감정을 모방하여 인격을 모방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시도가 이루어지나 대화를 해보면 묘한 이질감이 든다. 심한 경우 불쾌한 골짜기를 경험하기도 한다. 인공지능에는 자발적인 감정을 발현시키는 자아가 없다. 자아가 없는 상대와는 교감이 불가능하다.
사람 사이에는 교감이 필요하다.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겪었던 사회적 거리두기는 교감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비대면 시대에 정보 전달은 온라인 미디어로 전환이 가능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정보 통신 측면에서는 정확하고 빠른 디지털 서열 정보가 적합하다. 하지만 사람의 상호작용에는 몸짓, 눈빛, 체온, 냄새 등의 비언어 정보 역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고유의 자아를 지닌다. 동일한 유전자의 일란성 쌍둥이도 각자 자아를 가지게 된다. 자아를 만들어내는 신경망의 연결 구조는 우주 원자 개수보다 많다. 개인의 자아는 그만큼 고유하고, 개인의 생각은 그만큼 특별하다. 소통과 교감은 이처럼 고유한 자아들의 공명 현상이다. 소통 단절은 교감 단절을 의미한다.
인공지능 시대의 바람직한 인재상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 살았던 거문고 명인 백아에게는 종자기라는 친구가 있었다. 백아가 험준한 산을 생각하며 연주하면, 종자기는 그 경치를 본 듯 감탄했고, 강을 생각하며 연주하면 강물의 도도한 흐름을 이야기했다. 그런 종자기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백아는 거문고의 줄을 끊어버리고 죽을 때까지 연주하지 않았다. 이 고사는 교감에 의한 두 자아의 공명을 이야기한다. 이 친구들에게 거문고 소리는 소통과 교감의 미디어다. 악보에 있는 음정과 박자의 정보는 디지털 서열로 변환할 수 있다. 하지만 동일한 정보를 연주해도, 연주하는 사람과 감상하는 사람의 교감이 없으면 감정의 공명은 일어나지 않는다. 연주곡보다 가요가 쉬운 이유는 가사라는 서열 정보가 추가되면 교감과 소통이 더 원활해지기 때문이다. 만약 뮤지컬처럼 춤이나 영상까지 추가되면 교감의 장벽은 더 낮아진다. 이처럼 소통에는 언어정보와 비언어정보가 모두 필요하다. 우리 두뇌의 여러 부위가 연합해서 소통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적자생존의 원리가 지배하는 자연 생태계에서 상대가 나를 공격할지 말지 빠르게 판단해야 한다. 지속적 교감으로 공감이 형성된 상대에게는 익숙하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상대의 행동이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교감이 되지 않는 상대에 대해서는 불안감이 커진다. 상대 행동이 예측되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에 대한 불확실성은 불안과 공포로 이어지고, 최악의 경우에는 폭력이 투사된다. 이는 불확실성을 제거하려는 본능이다. 문명의 요람에서 집단을 이루고 살아야 하는 인류에게 소통과 교감은 숙명이다. 그래서 집단의 교감 장벽을 낮추기 위한 다양한 사회적 장치가 발명되었다. 어울려 살기 위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공감 장치들이다. 윤리, 도덕, 상식 같은 불문율은 암묵적 공감을 형성한다. 하지만 사회의 발전으로 집단구조가 복잡해지자 규칙, 계약, 법 같은 명문화된 장치들이 등장하였다.
사회적 공감 장치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배워야 한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간다면 공감장치의 학습은 필요 없다. 교감을 할 상대도 없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교감은 사회적 긴장을 낮추는 소통의 전제조건이며, 개인의 자아를 지속시켜주는 자극이다. 하지만 작금의 경쟁 일변도 교육은 소통과 교감은 뒷전이고, 지식 정보 수준으로 학생을 줄 세우고 평가한다. 급속도로 인공 지능이 발전하는 지금, 우리 교육이 목표하는 인재상이 인공지능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앞으로 펼쳐질 인공지능 시대에 차별화되는 인재는 지식이 아니라 교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될 것이다.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의사나 피해자의 고통에 교감하지 못하는 판사는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다. 타인과 교감하지 못하는 인재는, 소통 데이터를 학습하지 못한 인공지능과 다를 바 없다.
주철현 | 울산의대 미생물학·의학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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