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그는 흥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시사저널=전영기 편집인)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직간접적으로 지켜보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파면 사태를 되짚으며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다. 아쉬움이라면 그가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 전, 선제적으로 "직무 복귀 시 6개월 안에 개헌을 완수하고 자진 퇴임하겠다"는 발언을 하지 않은 점이다. 실제 윤 전 대통령에겐 이런 구체적인 개헌 및 퇴임 일정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게 좋겠다는 간곡한 제언이 수차례 전달됐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헌재 변론에서 "잔여 임기에 연연하지 않고 개헌에 집중하겠다"고 모호하게 말했다. 복귀할 경우 자퇴 시점을 특정하지 않았다. 발언의 진정성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문수·한덕수에도 도움 안 되는 '윤석열 배후론'
만일 그가 헌법재판관들 앞에서 '6개월 내 자진 사퇴'를 확실하게 언명했다면 일부 재판관은 '곧 관둘 대통령인데 굳이 부담과 무리를 감수하면서까지 파면시킬 필요가 있겠느냐'며 직무복귀 쪽에 섰을 것이라는 얘기다. 최종 판결을 며칠 앞두고 8명의 재판관 중 3~4명이 기각 쪽이었다는 꽤나 구체적인 정보가 있었던 만큼 '증명 가능한 임기 포기' 선언이 나왔다면 상황이 달라졌으리라는 추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안타까움이라면 내란죄 재판을 받고 있는 윤 전 대통령이 사가(私家)로 이동한 뒤 정치 개입의 욕구를 더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점이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아쉬움이 과거형이라면 안타까움은 현재형이다. 현실적으로 더 위험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변에선 걱정만 한다. 파면 전과 마찬가지로 쓴소리를 못 하는 분위기는 여전한 듯하다. 직언하면 면박을 주는 윤석열 스타일 때문이다.
윤 전 대통령의 정치 의지는 사저로 귀환하면서 했던 "다 이기고 돌아온 거니까" "어차피 뭐, (대통령) 5년 하나 3년 하나…"라는 소감에 묻어있다. 그는 누구한테 이긴 걸까, 대통령직을 5년간 유지하지 못해 발생한 전 국민적 고통에 자책감은 없는 걸까 하는 의문이 저절로 생겼다.
탄핵 정국에서 광장의 스타가 된 전한길씨는 "(윤 전 대통령은) '다 이기고 돌아왔다'고 했는데 약간 예수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했다. 파면당해서 임기는 끝났지만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고 보수우파의 결집을 만들어냈다"며 윤석열을 신성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여론조사 결과나 보수 세력의 결집 정도, 또 국민의힘 경선 과정이 윤석열의 자의식과 사뭇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점이다.
'전직 대통령'이 메시아처럼 행동하면 곤란
국민의힘 예비후보자들의 지지율을 다 합쳐도 민주당 이재명 대표 한 명에 못 미치는 여론조사가 이어지고 있고, 보수 세력은 윤석열에 대한 견해차로 사분오열됐으며, 김문수·한덕수 등의 윤심 배후론이 설왕설래하면서 해당 주자들의 운신 폭만 그만큼 좁아지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윤석열의 정치 의욕이 적극적으로 표현될수록 국민의힘과 예비후보들이 표적이 되어 어려움을 겪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김진홍 목사가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라"라고 써서 선물한 성경책을 서울구치소 시절부터 읽고 있다고 한다. 윤 전 대통령에게 이 성구는 위로와 예언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성경의 또 다른 곳엔 세례 요한이 메시아 예수님의 등장을 기다리며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라는 구절도 있다. 성경의 말씀을 현실에 적용할 때는 조심조심 살펴가며 해야 한다. 윤 전 대통령이 헌재 판결 이전이라면 넘어져도 아주 엎드러지지 않을 기대를 할 수 있겠지만 '전직 대통령'이 된 다음에 정치적 욕망을 드러낸다면 과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시점에 윤 전 대통령이 메시아처럼 행동하는 건 곤란하다. 자기의 희생으로 새로운 정치를 움트게 하겠다는 쪽으로 자세 전환을 해야 할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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