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①-괌 마라톤] "더 도전적인 환경에 나를 놓다" 21km 뛰려고 수천km에서 날아온 러너들

괌=김고금평 에디터 2025. 4. 18.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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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로드레이스] 새벽-무더위-난코스 '3가지 악재'에도 "저스트 러닝"
13일(현지시간) 오전 5시 하프마라톤이 시작되기 전, 출발선에 선 세계 각국에서 온 러너들. /괌=김고금평 기자


1년 6개월 전부터 21.0975km 하프마라톤에 중독된 나는 시시각각 전국 대회를 눈여겨 보고 있었다. 매달 마지막 주 내게 주는 선물 또는 숙제처럼 한강변을 따라 21km를 연습하듯 달리면서 첫 공식 마라톤 대회에 나간 건 작년 11월9일 상암 평화의공원에서 열린 레이스(굿펀 마라톤대회)였다.

2시간 20분대 평균 기록을 이 공식 대회를 통해 1시간 58분대로 앞당긴 건 쾌거 중 쾌거였다. 기록이 좋아지고 달리는 재미와 고통(?)도 남달라 '중독'의 문턱 앞에 다다르니, 일과가 끝나고 습관적으로 하는 취미가 각종 레이스 일정을 챙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봄부터 본격적으로 이어지는 각종 대회들은 내게 쉽게 참가권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국의 마라톤 인기를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아이돌 공연 티켓권을 확보할 만큼 이렇게 어려울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대회가 괌 코코 로드 레이스였다. 아니 해외? 잠시 남의 얘기인 듯 무시하려다 '언제든 신청 가능'한 여유 있는 일정, 낯선 곳으로의 신기한 경험, 여행 반 운동 반의 독특한 콘셉트가 눈길을 끌었다. 무엇보다 30도를 웃도는 습한 날씨에서 달리는 나의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어쩌면 작년 여름, 가장 습한 날씨를 이겨보겠다고 시작한 한강 도전 레이스에서 10km 즈음 도달하고 포기했던 쓰라린 경험을 만회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참가를 결정하기까지 어려웠지, 한번 결심하니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2월 초에 신청한 뒤 4월 13일 하프마라톤까지 두 달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하프마라톤이 열리기 1시간 전인 새벽 4시 러너들이 하나 둘씩 현장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새벽이지만, 30도에 이르는 무더운 날씨와 습도가 이어졌다. /괌=김고금평 기자


2월 15일 하프마라톤 연습은 생애 최초 30km 달리는 기염을 토했다. 해외에서 혹시 못 달릴까 일부러 조바심 내며 악착같이 뛴 결과였다. 마치 "이 기록도 세웠는데, 설마 하프 정도 못 뛰겠어?" 같은 자신감을 주입하려는 몸부림처럼. 3월 마지막 연습은 평소대로 21km를 달리며 페이스(pace)를 체크했다. 이후 연습들은 3일에 한 번씩 3km와 8km를 번갈아 가며 감각만 익혔다.

괌 마라톤이 열리기 이틀 전, 마지막 현지 도로 연습에 나섰다. 햇빛이 가장 강한 시간대인 11시 대를 골라 4km 정도 워밍업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1km당 6분 10초대를 유지하며 4km를 달렸는데도 크게 힘들지 않았다. 이 정도라면 당일 경기에서 좋은 기록도 낼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도 생겼다.

13일 하프마라톤 출발 시간은 새벽 5시였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달려본 적이 없었기에 전날부터 부담이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슴에 부착하는 배번호가 전날 밤 10시에 도착해 새벽 3시에 일어나기 위해 일찍 잠들어야 하는 기회를 일찌감치 잃어 수면의 균형이 깨졌다. 그래도 마라톤 전날엔 으레 '잠 못 드는 시간'이라는 점을 디폴트로 두었기에 수면 시간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고작 2시간 정도 수면을 취한 뒤 새벽 4시 현장에 도착했다.

명색이 취재 기자이니, 남은 1시간 동안 각국에서 온 러너들을 인터뷰해 보기로 했다. 가장 눈에 띄는 팀은 한국 전북에서 온 64년생 갑진년 친구 10명의 '괌 마라톤 참가 & 우정 여행'이었다. 이들은 환갑을 계기로 여행도 할 겸 마라톤 대회에 나섰다.

한국 전북에서 온 64년생 갑진년 친구 10명으로 구성된 동호회. 이들은 올해 환갑을 맞아 우정여행 겸 마라톤을 위해 괌을 찾았다. /괌=김고금평 기자


동호회 한 멤버인 정우성씨는 "여기는 덥고 습한 곳인데, 마라톤은 뜨겁고 힘들어야 제맛"이라며 "재밌게 즐기려고 왔기에 기록보다는 완주가 중요하다"고 했다. 지난 2019년 괌 마라톤을 처음 찾은 이들 동호회는 이곳 마라톤을 잊지 않고 다시 찾은 이유에 대해 "인생에는 수많은 굴곡이 있는데, 마라톤은 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여서 참고 인내하는 그 과정을 통해 굴곡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라며 "도전 의욕이 샘솟은 이곳에서 이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고 싶었다"고 했다.

미국 출신으로 괌에서 레오 팰리스 리조트 총괄 매니저를 맡고 있는 샤크 폰 루모(Schack. von Rumohr·63)씨는 하프, 풀 등 모든 마라톤을 두루 경험한 러닝 마니아다. 하프 마라톤의 종전 기록은 1시간 45분대다. 샤크 매니저는 "일을 완성하는 것과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은 목표 달성과 성취감을 느낀다는 점에서 유사하다"며 "마라톤을 앞두고 수많은 훈련 과정을 반복한 뒤 대회에 나서면 내 자신의 정신적 인내력을 시험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그의 기록은 1시간 52분대로, 60대 참가자 중 1위였다.

미국 오리건주에서 온 여성 해군 에이미(38)씨는 "괌 마라톤은 첫 경험"이라며 "여기서 뛰는 건 미친 짓일지 모른다"고 크게 웃었다. 그는 2번의 풀 마라톤과 27번의 하프 마라톤을 완주했지만, 앞으로 오로지 하프 마라톤에만 매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마라톤은 나를 늘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며 "마라톤의 목표가 있다면 그건 '저스트 러닝'"이라고 했다.

괌 하프마라톤은 해변길을 따라 이어지는 코스로 구성됐다.


미국 애리조나에서 온 21세 앤드류는 "제대로 도전하기 위해 뜨거운 섬나라에 일부러 왔다"며 "먼 거리지만, 정신적 강화에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재미있는 경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날 레이스에서 그는 2시간 42초 기록으로 피니시 라인을 밟았다. 괌에서 온 46세 주디(가명)는 "가장 많이 달린 거리가 34km인데, 뛰고 나서 느끼는 그 성취감은 정말 마약처럼 중독성이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여기까지 인터뷰를 마치니, 시간은 4시 50분을 향해가고 있었다. 출발선으로 서둘러 가야 했다. 이미 수많은 러너들이 괌의 상징인 코코새 인형을 쓴 퍼포머 뒤에서 카운트 다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매달 한 번씩 1년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21km를 달렸는데도, 낯선 곳에서의 긴장감은 여느 때와 사뭇 달랐다. 남은 5분 동안, 안경을 다시 고쳐 쓰고 핸드폰과 이어폰, 스마트워치를 점검한 뒤 다리 스트레칭을 마지막으로 뛸 준비를 마쳤다.

모두 카운트 다운을 외쳤다. 5→4→3→2→1. 출발!!!!

-------②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괌=김고금평 에디터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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