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엽거나 먹히거나…그 사이에서 지워지는 동물들 [.txt]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건 옳은 일일까, 길고양이 티엔알(TNR, 포획-중성화-방사 정책)은 안락사보다 윤리적일까,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동물보호에 도움이 되는 일일까.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는 위의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한다. 일견 불편한 대답이다. 최 대표는 ‘도시의 동물들’에서 인간의 생활 속으로 들어온 동물들, 인간이 진화에 개입해 변화시킨 생태계, 단순한 이분법이나 정책으로는 뒤틀어지는 자연을 보여준다. 최 대표를 14일 서울 구로구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사무실에서 만났다.
먼저 첫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 동물원에는 ‘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라고 적혀 있다. 유람선의 갈매기에게나 길거리의 비둘기에게나 전문가들은 ‘먹이를 주지 말 것’을 권한다. 길고양이에게도 마찬가지다. 눈앞의 굶주린 고양이를 구제하려다 생태계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면 주변의 고양이들이 몰려오게 되고, 고양이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계기가 된다. “눈앞의 동물에게 이타적이고 싶은 인간의 마음은 이상할 정도로 강력”(23쪽)하고 “돌봄과 폭력은 배타적이지 않다”(26쪽). 두번째, 한국은 길고양이에 관여하는 정책으로 티엔알만 배타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입양도 안락사도 없다. 전국 어느 보호소든 ‘보호’하는 단계의 고양이가 너무 많은데, 결국 비좁은 공간에 버려두고 동물은 고통 속에서 수명을 연장하게 된다. 한국에서 ‘안락사’라는 정의는 이미 오염돼 있다. 그는 “고통을 겪는 동물에게 평화로움을 선사하거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죽이는 것”을 안락사로 정의한다. 논쟁 속의 안락사는 ‘킬링’이거나 ‘고통사’에 가깝다. 세번째는 먹지 않는다고 ‘고기’가 되는 존재가 사라지지 않는다. 만약 동물이 죽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거니즘을 실천한다면 ‘게으른’ 생각이다. 하지만 대답에는 단서가 있다. 길고양이의 살 공간이 충분히 확보되고 그런 환경을 지속할 수 있다면, 먹이 주는 건 옳고, 그런 환경에서는 티엔알이 답이다. 환경과 미래를 생각하는 태도와 실천으로서의 비거니즘 역시 존경할 만하다.
세가지 답의 공통점은 ‘단순’하다. 동물의 문제가 ‘복잡’하다는 것이다. 동물을 생각한다면 생각이 게을러지면 안 된다. “마음이 복잡해지는 것을 의도했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싶었다. 복잡하다면 복잡하게 해야 하니까.”
최 대표는 동물의 정체성 또한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정체성을 더 복잡하게 세분하는 것이 고양이에게 이롭고 정책 효과도 높을 것”(31쪽)이어서다. 21세기 들어 외국의 연구에서는 길고양이를 ‘경계 동물’로 본다. 가축화되었으나 인간의 돌봄이 미치지 못하거나, 도시에 깃들어 사는 야생 동물을 부르는 카테고리다. 집고양이, 야생화된 고양이만이 아니라 경계에 걸쳐진 길고양이가 있고 그 경계를 오가는 고양이까지, 고양이라는 존재 자체가 복잡하다.
단순함의 극대화에 ‘귀여움’의 세계가 있다. 반려동물 가구가 늘어나면서 한없이 ‘무해하고 귀여운’ 산업만이 팽창한다. 학대에 의한 개의 공포도 귀여움이 된다. “귀여움이 중요해질수록 개는 온전한 개로 인식되기 어렵”(75쪽)고 “동물의 역할이 귀여움이 되면 동물이 지닌 수많은 특성과 그에 따르는 필요가 삭제”(44쪽)되어 버린다. 삭제되는 것이 동물의 죽음이다. 거대한 생산 시스템에 의해서 동물은 죽임을 당하고 고기가 된다. 심지어 고기는 귀여운 이미지의 간판 아래서 팔린다. 그렇게 “‘귀여운 동물 친구’와 ‘멍청하게 고기가 되는 동물’을 나누어 후자에 혐오의 감정이 더해”(304쪽)진다.
그의 박사과정(서울대 수의학과) 주제가 ‘동물 복지’다. 한국에서는 생소한 분야다. 사실 한국에는 동물과 관련해서라면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많다. “남의 나라 동물을 데려다가 시작되긴 했지만 서양은 17~18세기부터 동물을 연구해 왔다. 한국에는 ‘동물학’도 없다. ‘동물자원학과’가 있을 뿐이다.” 자원 관점 동물은 ‘귀여움 산업’과 연결된다. “동물을 사고팔고 이미지를 만들어 상품화하는 것은 광속이에요. 세계적인 아기 상어도 캐릭터로 만들고, 푸바오의 팬덤도 만들어지지만 팔아먹을 수 없는 보통 동물의 삶은 드러나지 않아요.”
동물에 대한 연구가 일천하듯, 동물에 대한 정부 정책 역시 갈지자 행보다. 동물의 생리나 생태계 속 위치를 이해하기보다는 포획, 박멸, 제거 정책으로 나간다. 책은 정부·지방정부의 동물 정책에 신랄하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하면서 2019년부터 4년간 멧돼지 약 35만마리가 죽임을 당했다. 이후 멧돼지는 서식밀도가 4분의 3 이상 줄어들 정도로 ‘박멸’되었다. 하지만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를 야생 멧돼지가 옮긴다는 증거는 충분하지 않다. 축산 농가를 오가는 사람 신발이나 자동차 바퀴가 더 가능성이 크다. 러브버그가 방제 대상이 되는 서울시 조례가 만들어진 것도 ‘무지’가 정책이 되는 무수한 사례 중에 하나다. “왜 멧돼지가 많아졌나를 고민하지 않고 그냥 숫자만을 줄이는 거죠.”
뿌리가 약하니 개인 입김으로 쉽게 바뀐다. 개 식용 문제가 그렇다. “개 식용 금지는 나가야 할 목표였고, 입법 예고하면서 유예 기간을 7년 하느냐 10년 하느냐는 것으로 토론 중이었는데, (김건희 전 대통령 부인이 공론화하면서) 갑자기 3년으로 바뀐 거죠.” 관련 산업 종사자가 연착륙할 기회를 빼앗게 된 것이다. “개 식용 종식을 시키긴 했으니 그것이 좋은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하죠. 개고기를 먹는 사람이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처럼 느꼈겠죠.” 이 또한 ‘이분화’가 일으키는 오류다. 그가 ‘곰보금자리프로젝트’를 위해 곰 사육장을 일일이 방문했을 때 ‘돈에 눈이 멀어 야생동물을 괴롭히는 괴물’(357쪽) 농장주는 없었다. 한때 국가 장려사업이었으므로 닭과 소 농장처럼 사업을 시작했던 70대 노인이 대다수였다.
‘반려동물 산업’은 인간의 욕심을 극대화한 인간 관점의 산업이다. “이제는 길고양이의 입장에서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고려할 시간”(46쪽)이다. 그는 자주 ‘동물의 입장이 되어 본다’. “완전히 되어볼 순 없지만, 동물복지학이라는 것은 동물이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경험할까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예뻐하는 것이나 맛있게 느껴지는 효용으로만 존재하는 동물에서 빠진 것을 생각하게 된다. 동물의 입장이 되어보면 생태적인 관점을 가지게 된다.”
글·사진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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